아차, 행인임발우개봉! 농협 ATM 기기에 통장을 넣고 계좌이체를 하려는데, 막상 수신 계좌번호를 잊고 왔다. 소소한 기쁨 중에서도 가장 큰 게, 어쩌다 돈이 생겨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그 책값을 입금할 때인데, 너무 기뻐서 그랬을까, <주문>에만 클릭하고, 계좌번호 적는 것을 깜빡했던 탓이다.

<춘향전>을 현대적 시각에서 찬찬히 뜯어보면, 모순투성이다. 그러나 사실주의(realism)는 근대문학의 특성이다. ‘전’(傳)은 이야기일 뿐, 사실성의 잣대를 들이댈 일은 아니다. 더욱이 사실처럼 ‘보여야’ 한다는 제약이 없기에, 독자의 바람이나 상상에 기대어 ‘문학적 진실’을 창조할 수 있고,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춘향전>에서 ‘어사출두요!’ 하는 장면보다 별스럽다면 별스럽게 ‘행인임발우개봉’과 ‘몰골은 흉악해도 문자속은 기특하오’ 부분의 감동이 읽은 지, 공부한 지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생생하다.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오는데, 주령막대 끌면서 시조 절반 사설 절반 섞어하되, ‘오늘이 며칠인고. 천리 길 한양성을 며칠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의 월강(越江)하던 청총마(靑驄馬)가 있었다면 금일로 가련마는, 불쌍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서 명재경각(命在頃刻) 불쌍하다. 몹쓸 양반 이서방은 일거소식(一去消息) 돈절(頓絶)하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

어사또 그 말 듣고, ‘이애, 어디 있니?’ ‘남원읍에 사오’ ‘어디를 가나?’ ‘서울 가오’ ‘무슨 일로 가니?’ ‘춘향의 편지 갖고 구관댁(舊官宅)에 가오.’ ‘이애, 그 편지 좀 보자구나’ ‘그 양반 철모르는 양반이네’ ‘웬 소린고?’ ‘글쎄, 들어보오. 남아(男兒) 편지 보기도 어렵거든 황차 남의 내간(內簡)을 보잔단 말이요.’

‘이애, 들어라. 행인(行人)이 임발(臨發) 우개봉(又開封)이란 말이 있느니라. 좀 보면 관계하랴’ ‘그 양반 몰골은 흉악하구만 문자(文字)속은 기특하오.’

‘호노자식(胡奴子息)이로고.’ 편지를 받아 떼어 보니 사연에 하였으되, (…) 혈서로 하였는데 평사낙안(平沙落雁) 기러기 격으로 그저 툭툭 찍은 것이 모두 다 애고로다. 어사 보더니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방울방울 떨어지니 (…)」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중에서-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은 ‘길 떠나는 사람(行人)이, 출발에 임하여(출발할 때, 臨發), 또 편지를 열어본다(又開封)’로 풀이된다.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 768~830)의 ‘추사’(秋思, 가을날의 상념)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고향이 그리운 타관생활을 하고, 더러는 소중한 인연과 헤어져 산다. 인정(人情), 사람의 정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아니, 그리움은 더욱 더 절절해지지 않았을까.

洛陽城裏見秋風(낙양성리견추풍) 낙양성 성안에서 가을바람 맞으니

欲作家書意萬重(욕작가서의만중) 집에 편지 쓰고자 하나 생각이 만 겹이라

復恐匆匆說不盡(부공총총설부진) 황급히 쓰니 사연 다 쓰지 못했을까 또 걱정되어

行人臨發又開封(행인임발우개봉) 가는 이(편지 전해줄 사람) 떠날 때 다시 뜯어보네

글맛이 좋은, 곧 문학적 향기가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 필자의 글은 투박하다. 감동보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런 걸 의도해서라기보다는 ‘생긴 난 게’ 그렇다. 다만 문학의 냄새를 맡은 감각은 있다. 더구나 그 냄새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실용주의자로서는 탁월한 편이다.

하여 ‘행인임발우개봉’을 어떤 일에 대해 결론을 내릴 때, 거듭거듭 생각해야 한다는 경구로 사용한다.

이번 대선 결과를 예측할 때, 대부분은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설(甲論乙說)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얼마만큼의 차이’였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필자도 누구에게도 밝히지는 않았지만 내심 관심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첫째, 이재명 후보가 60% 이상을 득표하지 않을까?

둘째, 김문수 후보는 30% 미만의 득표를 하지 않을까?

셋째, 이준석 후보는 5% 이하의 득표를 하지 않을까?

세 가지 모두 빗나갔다. 크게 빗나갔다. ‘임발’에 재고하지 못해 예측이 크게 틀렸다면, 사후(事後)에는 재삼, 재사 되짚으며 성찰해야 ‘세상 경험’이 지혜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하여 찬찬히 시간들 두고, 관련 전문가의 서적을 읽고, 그 이론의 현실적합성을 따져 보며 나름의 통찰을 얻어 보고자 한다.

아마 큰 틀에서의 잘못은 ‘정치와 도덕’을 구분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리고 투표는 이성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감정이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일 것이다. 한마디로 ‘당위와 존재’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당위’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존재’(현실)는 비논리적이고 복잡하고, 복합적인 존재 이유를 가진다.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상찬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그들’의 프레임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여 ‘더불어 모두’를 이뤄내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계속>

*hindsight(사후 통찰) :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 그것이 왜 또는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능력

(the ability to understand, after something has happened, why or how it was done and how it might have been done better)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