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공감’ 대화법 (14)경청과 재진술

배정우 승인 2020.05.08 14:15 | 최종 수정 2020.05.08 14:39 의견 0
공감대화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상대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채 말하기 때문입니다. 상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상대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사오정과 꼰대

오래 전에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오정’이라 부르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본디 사오정은 중국 명나라 때 오승은(1500~1582)이 지은 장편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입니다. <서유기>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삼장법사와 함께 천축(天竺)에 가서 불경을 가지고 돌아오기까지 있었던 일을 그린 작품이죠. 그러나 1990년 만화가 허영만 씨가 지은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뿅망치를 휘두르며, 가는귀가 먹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캐릭터로 나온 뒤로부터 ‘사오정 시리즈’가 유행하면서 하나의 단어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경우에 쓰입니다.

A : 밥 먹었니?
B : 잘 지냈냐고?
A : (내가 한 말을 잘못 듣는 걸 보니) 너 사오정이구나!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대화의 맥락과 무관하게 자기가 판단한 대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사오정’이 유행어가 되었을까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한편 ‘꼰대’라는 말은 매우 널리 알려지고 아직 쓰이고 있는 유행어입니다. 어떤 사람을 꼰대라고 할까요? ‘꼰대’는 학생들이 교사나 늙은이를 가리키는 은어였는데 교사나 어른들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어떤 생각이나 행동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며 젊은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가르치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폭을 넓히자면,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거나 경청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이 꼰대인 것이지요.

‘사오정’과 ‘꼰대’는 의사소통을 절대로 원만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경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경청 능력은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경청 태도 및 방법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경청을 잘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경청하는 태도가 좋아야 합니다. 좋은 경청 태도란 말하는 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말의 내용이 무엇이든 판단/평가하지 않고 사진을 촬영하듯이 사실대로 듣는 것입니다.

만약 말하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깔보는 마음이 생겨 아무리 좋은 말, 내게 도움이 되는 내용일지라도 흘려듣게 됩니다. 어떤 부모가 아이의 말을 흘려듣는다면, 그 까닭은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적 존재로 여기지 않고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사실대로 듣지 않고 옳음/그름, 좋음/나쁨을 판단하고 평가하며 듣는다면 내 감정이 올라와서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듣지 못하고 왜곡해서 듣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소통이 막히고 끊깁니다.

이건(Egan)은 대화할 때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다섯 가지 제시하면서 첫 글자를 따서 ‘SOLER’라고 불렀습니다.

첫째, 자세를 똑바르게(squarely) 한다.
둘째, 열린 마음(open mind)을 갖는다.
셋째, 상대방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인다(lean).
넷째, 상대방에게 눈을 맞춘다(eye contact).
다섯째, 몸의 긴장을 풀고(relaxed)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경청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건성으로 듣지 않고 이야기의 본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초점 맞춰 적극적으로 듣는다.
둘째, 상대방의 말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듣는다.
셋째, 세세한 부분에 얽매이지 말고 핵심적인 메시지와 감정을 확인하고 의미를 듣는다.
넷째, 상대방이 맥락상 중요한 내용을 빠뜨리고 말하지는 않는지 주목하며 듣는다.
다섯째, 듣는 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행동과 정서에 대해서도 자각하며 듣는다.

내용 확인 - 재진술

사람들은 대화할 때 상대방의 이야기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도를 넘겨짚어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이번 주말을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의 의도를 짐작하고 “시간 있어요” 또는 “시간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이 그냥 인사치레로 물어본 것일 수 있는데 주말에 만나길 원하는 것으로 짐작하고 그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상대방은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바람직한 반응은 내 생각을 즉각적으로 대답하기보다 “이번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궁금하신가 보군요”라고 상대방의 말을 확인하는 재진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재진술(재언급, restatement)이란,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 중 상황, 사건, 대상(사람, 동물, 사물), 생각 등에 대한 핵심 내용을 나의 말로 바꾸어 되돌려주는 대화기술입니다. 재진술은 이야기의 인지적인 부분을 함축적으로 정리하여 되돌려 준다는 점에서 ‘내용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진술의 목적은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원활하도록 돕고, 상대방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내가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려 주고, 상대방이 자기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게 하고, 상대방이 핵심 내용을 더 상세하게 말하도록 격려하고, 상대방이 의사결정을 잘 하도록 도와주고, 공감이나 반영을 하기엔 이르다고 판단될 때 핵심내용만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재진술을 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의 핵심 내용을 떠올린다.
둘째, 어떤 상황, 사건, 대상, 생각을 말하고 있는지 반문해 봄으로써 핵심내용과 욕구를 파악한다.
셋째, 핵심내용을 문장으로 만들어 전달한다(1인칭 의문문으로 말한다).
넷째, 상대방의 반응을 관찰하여 재진술의 효과를 평가한다.

초점에 따른 재진술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황: ‘~상황(입장)이군요’ (예: "큰애와 작은애 사이에서 누구 편도 들기 곤란한 입장이군요.")
∙사건: ‘~일(사건)이 있었군요’ (예: "자녀 문제로 시작된 갈등이 부부간의 큰 다툼으로 번졌군요.")
∙대상: ‘~(사람, 사물, 동물)을 ~하게 여기는군요’ (예: "시어머님이 너무 아들만 챙기는 분으로 여기시는 것 같군요.")
∙생각: ‘~때문에 ~하게 생각하는군요’ (예: "남편이 결혼기념일을 기억 못하는 것 때문에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바람/욕구: ‘~하기를 원하는군요’ (예: "남편이 자녀들을 공평하게 대하길 원하는군요.")

재진술의 예시와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실내 공기가 많이 차네요." [소극적이고 불명확하게 표현]
B: "추워서 히터를 틀어 주길 바라나 보군요." [재진술]
A: "예, 히터 좀 틀어 주실래요?" [적극적으로 명확하게 표현]

A: "사람들은 발표할 때 많이 긴장하는 것 같아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
B: "막상 발표하려니까 느낌이 다른가 봐요." [재진술]
A: "발표하려니까 많이 긴장되네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냄]

효과적인 재진술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대방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이나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중하는 주제를 찾아야 합니다. 이때 탐색되지 않은 중심 주제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들: 제가 어렸을 때 기억 속에는 아버지는 늘 안 계셨어요. 항상 바쁘셨다는 기억만 있어요. 그런데 지금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야 하는 일주일은 너무 길다고 생각돼요. 아버지와 둘이서 시간을 보낼 생각만 해도 걱정되고 부담스러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해요.

아버지: 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인가 보구나.

2. 듣는 이는 상대방의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해야 합니다. 듣는 이는 상대방이 말하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친구 A: 내가 지금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인데 회사 측에서 직원들 개인 업적과 성과를 고려하고 있어.

친구 B: 현재 걱정하는 몇 가지 문제가 있구나.

3. 상대방의 이야기 내용에 담긴 주된 의미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합니다.

학생: 이번 주에 몇 번 지각한 일 외에, 오늘 저를 오라고 하신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교사: 지각이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구나.

4. 듣는 이는 상대방의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상대방의 진술보다 짧고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이러한 재진술은 무엇이 중요한지 집중하게 하고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한충 깊은 차원에서 탐색할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배정우 박사

친구 A: 중학생 딸이 주말마다 밤 12시가 지나서야 귀가해. 지난 토요일에 너무 화가 나서 딸을 때리려 했어. 그때 아내가 놀라서 소리쳤고, 순간 아내의 혈압이 걱정되더라고. 화내고 체벌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참 잘 안 되네.

친구 B: 그러니까 딸의 행동과 아내의 건강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은가 보구나.

5. 적절한 순간에 간결하고 정확하게 요약함을 통해 상대방의 문제를 정리하고 통합함으로써 특정 주제를 면밀히 살펴봅니다.

직장동료 A: 요즘 아내와 아들의 사이가 좋지 않아 우울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며칠 전에 저의 최고 고객이 다른 회사에 그 일을 의뢰했고 견적서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직장동료 B: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당신의 일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상담심리학 박사, 한마음상담센터 대표, 인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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