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부모라면, 자녀를 사랑하며 자녀가 마음과 몸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나아가 자녀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대인관계가 원만한 성인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부모가 자녀에게 ‘해로운 교육’을 하여 수치심을 느끼게 함으로써 주체성과 관계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것이 ‘해로운 교육’일까요?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끄러움
이번 21대 총선에서 망언을 한 후보들은 대부분 낙선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낙선자는 자신의 언행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고 부끄러운 것인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보니 화나면서도 안타깝고 부끄러워지더군요.
박완서 소설가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4)라는 소설을 통해 인간 속에 들어있는 속물성을 그렸습니다.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아를 철저히 분화시켜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얼굴을 변화시키는 연극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줄 느끼지 못하고 즐겁게(그러나 공허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장자(莊子)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으니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 건강한 사람은 부끄러운 행동은 부끄럽게 느끼고 자랑스러운 행동은 뿌듯하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수치심은 영혼의 병
당신은 수치심(부끄러움)을 많이 느끼는 편인가요? 당신의 아이는 어떤가요?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거나 자랑스러움을 너무 느끼면 오만하게 되어 관계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반면에 부끄러움을 너무 느끼거나 자랑스러움을 전혀 못 느끼면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은 때와 장소, 상황에 알맞게 느끼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동양이든 서양이든 전통적인 양육 규칙들은 아이들을 야단치고 창피를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양육은 아이들이 잘못하지 않은 행동에도 기가 죽게 하고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자존감을 파괴하고 수치심을 심어주게 됩니다.
게센 카우프만(Gershen Kaufman)은 『수치심(Shame: The Power of Caring)』이라는 책에서 “수치심은 영혼의 병이다. … 수치심은 내면에서 느끼는 상처로서 우리를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서 분리시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수치심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은 자아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인관계도 원만하게 할 수 없게 됨으로써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카우프만에 따르면, 수치심은 대부분의 심리적 문제의 원인으로서 삶 전체를 부인하게 합니다. 우울, 소외, 자기 의심, 외로움, 편집증, 정신분열증, 강박증, 충동 장애, 열등감 등이 모두 수치심에서 비롯됩니다. 수치심은 일종의 자기 살해입니다. 죄책감은 ‘내가 실수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수치심은 ‘나 자신이 실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죄책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하지만 수치심은 자기 ‘존재’에 대해 비판합니다.
수치심의 원인
전통적인 양육 규칙들은 주로 여러 가지 형태로 자녀를 버림(방기放棄, 유기遺棄)으로써 자녀에게 수치심을 심어줍니다. 이를테면, ①실제로 자녀를 버리고 떠나거나 ②부모가 자녀에게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지 못하여 자녀의 감정 표현을 지지해 주지 못하거나 ③자녀의 발달 과정상의 의존 욕구를 지지해 주지 못하거나 ④신체적, 성적, 정서적, 영적으로 학대하거나 ⑤부모 자신의 채우지 못한 의존 욕구를 자녀를 이용하여 채우려 하거나 ⑥자녀를 이용하여 부모의 결혼을 돌보게 하거나 ⑦부모의 수치스러운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숨기고 부인하며 자녀에게 비밀을 지키도록 강요하거나 ⑧자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주며 관심을 갖고 지도해 주지 않거나 ⑨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등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아동기 내내 끊임없이 부모를 필요로 합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아이들이 집과 부모를 떠나고 싶어질 때까지는 15년이 걸립니다. 부모는 어린아이들 곁에 있으면서 잘 돌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녀를 버리면 아이의 소중함과 독특함이 파괴되고, 이 버림받음은 수치심을 내면 깊이 심어줍니다.
해로운 교육
스위스 심리학자인 앨리스 밀러(Alice Miller)는 자신의 책 『당신 자신을 위하여(For Your Own Good) -자녀 양육에 숨겨진 잔인성과 폭력의 뿌리들』에서 ‘해로운 교육(harmful education)’이라는 소제목 아래 그러한 규칙들을 모아놓았습니다. 해로운 교육이란 자녀의 권리를 침해하는 형태의 양육입니다. 이러한 교육은 자녀들이 자라서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자녀들에게 재연하게 됩니다.
해로운 교육은 순종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받듭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리정돈, 청결, 감정과 욕구의 절제입니다. 해로운 교육을 하는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만 ‘좋은 아이’로 여깁니다. 아이는 ‘가만히 있고 말을 하지 않을수록’, ‘말을 시킬 때만 말할수록’ 더욱 착한 아이가 됩니다. 만약 어떤 어른이 분명히 잘못하여 내 아이가 피해를 당했는데도 가해자가 ‘어른이라서’ 아이가 아무런 항의도 못하고 피해를 감수했다면 내 아이는 ‘착한’ 아이일까요? 내 아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할까요? 어떤 부모든 자기 아이가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랄 겁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해로운 교육을 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밀러가 요약한 해로운 교육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어른은 어린아이의 주인이다. ②어른은 하나님처럼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 ③어른을 화나게 하는 것은 아이의 책임이다. ④부모는 항상 보호되어야 한다. ⑤아이들이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갖는 것은 전제군주인 부모에게 위협적인 일이다. ⑥아이의 의지는 가능한 한 빨리 ‘깨트려져야’ 한다. ⑦이상의 모든 일들은 아이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어른들의 의도를 폭로하지 못하도록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행해져야 한다.
극심한 정서적 학대, 무시 또는 밀착도 폭력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학대를 적발하는 법이나 기관은 아직 없습니다. 사실상 종교기관이나 학교는 이러한 신념에 권위와 지지를 부여해 주며, 우리의 법제도는 오히려 그 신념을 강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해로운 교육은 어린아이에게 처음부터 거짓된 정보와 신념을 심어 주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해로운 교육의 나쁜 영향
성장한다는 것은 인간이 본래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부모에 대한 환상과 이상화를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정서적으로 박탈감을 느낄수록 ‘연결의 환상’이 강렬해집니다. 버림받을수록 부모를 이상화하고 집착하게 됩니다. 사랑을 적게 받은 자녀가 사랑을 듬뿍 받은 자녀보다 어른이 된 뒤에 부모를 더 많이 챙기며 효도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부모로부터 들었던 수치심을 심어주던 대화를 자신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적 불화는 ‘거짓 자기’를 발달시킵니다. 아이가 오랫동안 거짓 자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다 보면 자신의 진정한 감정, 필요, 욕구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즉 수치심이 내면화되는 것입니다. 수치심은 더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부모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믿던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아냐,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라며 부모의 의견을 부정하며 선생님의 말을 더 신뢰한다면 섭섭해 할 게 아니라 기뻐하고 안심해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선생님이 이상하다, 엄마 아빠 말과 다르게 한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라고 한다면 이게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지요.
해로운 교육을 극복하는 법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긴 하지만 감정에 큰 영향을 받으며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진정 이성적 존재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감정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감정을 잘 이해하고 다루려면 감수성훈련(sensitivity training)을 받아야 합니다. 나의 감정, 욕구, 의도, 숨은 의도, 성격 등을 파악하여 자기공감과 자기칭찬 및 자기인정을 하고 상대의 감정, 욕구, 의도, 숨은 의도, 성격 등을 파악하여 공감과 칭찬 및 인정을 하는 감수성훈련을 통해 공감 능력을 기르고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 주체성을 확립하고 관계성을 확장하면 진정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가족(The Family)』(존 브래드쇼)에 크게 도움 받았습니다.
<상담심리학 박사, 한마음상담센터 대표, 인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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