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개방(self-disclosure)이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솔직하지 않으면 상대도 솔직하지 않게 되므로 원만한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좋은 자기 개방일까요? ‘솔직한 게 다가 아니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가면과 민낯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 감정,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 대화의 내용과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자기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드러내게 됩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행위는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화를 한 뒤에 자기 개방을 잘 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은 천 년 된 여우같다”거나 “저 사람은 크렘린 같다”라며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까닭은 자기 개방을 한 자신만 손해 본 것 같아 억울하고 참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고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 개방은 대화와 만남에 있어 필수 요소입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모습의 자기를 가지고 있는데 주로 세 개의 자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즉 자신만의 고유한 성격이나 가치관이 들어있는 개인적 자기(personal self), 사회적 역할이나 신분을 드러내는 사회적 자기(social self), 과거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문화적 자기(cultural self)입니다. 시드니 주러드(Sidney M. Jourard)는 “인간은 두 개의 자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는 내면 안에 있는 ‘진정한 자기’(real self)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적인 자기’(public self)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적인 자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자기에 대해서는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부끄럽거나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개방하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짓되고 공적인 자기의 가면을 벗고 내면에 있는 진정한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서로가 자기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진정한 만남을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개방은 진실하고 정직한 행동입니다.
자기 개방의 필요성
자기 개방은 상대방이 나를 오해하는 것을 예방하고 나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상대방이 나를 오해하거나 신뢰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에게 섭섭해 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자기 개방을 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해리의 창(The Johari’s Window)’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기 개방 정도를 평가하는 모델인데, 조해리(Johari)라는 이름은 이 모델을 공동으로 개발한 조셉 루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검(Harry Ingham)의 이름 첫 자를 따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창은 아래와 같이 네 개의 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개 영역(open window)은 자기 개방을 솔직하게 하여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이 잘 알고 객관적 사고를 하므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열린 나’를 말하고, 눈먼 영역(blind window)은 자기 개방을 솔직하게 하여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은 아는데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 사고가 부족하여 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눈먼 나’를 말하고, 비밀 영역(hidden window)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 사고는 하여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알지만 자기 개방을 솔직하게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은 나에 대해서 모르는 ‘감춰진 나’를 말하고, 미지 영역(unknown window)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 사고를 하지 않아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를 뿐 아니라 자기 개방을 솔직하게 하지 않아 다른 사람도 나에 대해서 모르는 ‘미지의 나’를 말합니다. 이 네 개의 창은 사람마다 크기가 각각 다릅니다.
‘열린 나’는 생각, 감정, 행동 등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모두 잘 알려진 당당한 모습의 나입니다. 이 창이 큰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말과 행동이 같습니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므로 즉각적인 피드백을 할 수 있고 타인의 피드백을 잘 수용합니다. 그래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잘 됩니다. 그러나 이런 ‘개방형’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의 모든 면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인간관계가 어색해지거나 손상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눈먼 나’는 타인은 알고 있으나 자신은 모르는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나입니다. 이 창이 큰 사람은 눈치가 없고 아둔해서 타인이 보기에 개선할 점이 많지만 정작 자신은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도취적이거나, 반대로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장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타인의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자기주장형’ 사람은 창의 크기를 줄이려면 타인의 피드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춰진 나’는 나는 알면서도 맹목적으로 억제하며 타인에게 숨기는 부정적인 나입니다. 이 창이 큰 사람은 신중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자기표현을 잘하지 않는,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타인이 쉽게 다가가기 힘듭니다. 이런 사람은 가정과 직장에서의 언행이 상반될 것입니다. 대체로 가정에서는 당당하지만 직장과 사회에서는 위축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가족의 피드백을 잘 수용하지 않으면서 직장과 사회에서 타인의 피드백은 잘 수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신중형’ 사람이 대인관계를 개선하려면 적극적으로 자기 개방을 해야 합니다.
‘미지의 나’는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나로서 무의식의 나입니다. 이 창이 큰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이 창이 큰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약하고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많고 타인에 대한 의심도 많아 고립되어 부적응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자기 개방도 하지 않고 타인의 피드백도 수용하지 않고 무조건 부정합니다. 이런 ‘고립형’ 사람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타인과 지속적으로 대화함으로써 통찰을 해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까닭은 내가 모르는 나의 부분과 남이 모르는 나의 부분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자기 개방을 하고 타인의 피드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열린 창의 영역을 넓힌다면, 대인관계 능력이 향상되어 대인 갈등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자기 개방 정도 진단하기
‘조해리의 창’ 속에는 자신의 생각, 가정, 경험, 소망, 기대, 가족사항, 취미, 종교, 교우관계, 장단점 등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해리의 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정확하게 진단하려고 해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절반 밖에는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절반만 안다고 하더라도 대인관계를 개선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고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개방에 대한 자가진단(self test)을 해보실까요?
각 문항의 점수(0점 또는 10점)로 X축과 Y축의 점수를 계산하여 표를 그립니다. 구분된 영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이 자신의 자기 개방 형태입니다. 예를 들어 X축이 8점, Y축이 8점이라면 아래 그림과 같이 영역이 구분되어 개방형으로 진단됩니다.
자기 개방의 주의점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 가운데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것이 있지요. 세상의 모든 존재는 변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절대진리입니다. 우리 사람도 변화의 크기가 크든 작든 일생을 살면서 변합니다. 변화는 무조건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대상에 따라 때와 장소에 따라 변화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좋은 습관과 태도는 평생 유지해야 하고 나쁜 습관과 태도는 빨리 많이 바꿔야 합니다.
한편, 똑같은 말과 행동일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옳고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고 그르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무조건) 솔직한 게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상대가 불쾌해지거나 상처받을 것이 예상되는 말을 하는 것은 솔직한 게 아니라 폭력과 같습니다. 어느 이슬람 철학자가 “말해야 할 때 하지 않는 자는 비겁하고, 말하지 않아야 할 때 하는 자는 어리석다”라고 했는데 우리는 비겁과 어리석음을 자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상황에서 말해야 하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가늠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늘 자기반성을 하면서 대화할 때 자신의 감정과 욕구,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살펴야 합니다.
<상담심리학 박사, 한마음상담센터 대표, 인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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