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행복감을 느끼려면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데 배려를 잘못하면 실컷 배려하고도 싫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배려해야 상대방이 편안하고 고맙게 받아들일까요?
배려란?
코로나19가 확산되어 불안한 시기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마스크를 하라고 요구를 하면 적반하장 격으로 화를 내고 폭행까지 하는 무뢰한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배려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행동입니다.
배려(配慮, care)란 짝(配)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慮)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데만 머무르지 않고, 나의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배려하는 나의 마음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전해지려면 계산적인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계산적인 생각이란 ‘내가 배려해주면 상대방은 나를 좋아하겠지’, ‘내가 배려해준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배려해주겠지’라는 대가를 기대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배려가 진정한 배려이며, 이런 순수한 배려만이 상대방을 감동시키며 상대방이 고마움을 느낍니다.
눈치 없는 배려는 무례
배려를 잘 하려면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쌍방향 소통입니다. 눈치를 보며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눈치를 보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상대방의 욕구를 분명히 알아챘을 때는 잘 배려할 수 있습니다만 욕구를 분명히 알지 못할 때는 잘못 배려하여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욕구를 정확히 모르면서 눈치 없이 배려하여 상대방이 불편하게 된다면, 그 배려는 무례가 되고 폭력적인 것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어릴 때 겪은 일이 생각납니다. 고등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몸이 자라고 많이 먹을 시기라 밥을 맛있게 빠른 속도로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밥그릇이 커서(당시의 밥그릇 크기는 요즘 밥그릇 크기의 2배는 될 겁니다^^) 한 그릇만으로 충분했기에 더 먹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밥그릇이 비어갈 때 친구 어머니께서 방에 들어오시더니 “밥 많으니 더 먹어라”고 하시며 제가 응답하기도 전에 제 밥그릇에 밥을 한 주걱 퍼주시더군요. 순간 매우 당황스럽고 부담되었지만 더 이상 못 먹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억지로 그 밥을 다 먹었습니다. 다 먹은 뒤에 배가 불러 매우 힘들었습니다(참 미련하죠?^^;;). 흰쌀밥이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자식의 친구를 배려하는 친구 어머니의 마음은 참 따뜻했지만 배려 방식이 잘못된 것이지요. 배려가 무례와 폭력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배려 잘 하는 법
상대방의 욕구를 잘 모를 때는 상대방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친구 어머니께서 저에게 “정우야, 밥 더 먹을래? 밥 많으니 얼마든지 더 먹어.”라고 물어보셨다면 제가 정말 고마움을 느꼈겠지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밥이 맛있지만 한 그릇으로 충분합니다.”라고 편안하게 거절할 수 있었겠지요.
가까운 사람이 나를 배려하기 위해 나의 욕구를 물어볼 때 기분이 어떠했는지요? 기쁘고 고마웠지요? 그러나 만약 평소에 잘 알지 못하거나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사이라면 상대방이 욕구를 물을 때는 의아하면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앞의 실례에서 친구 어머니께서 “밥 더 먹을래?”라고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친구 어머니의 말씀이 그냥 하는 인사치레인지 진심으로 밥을 더 먹길 바라시는 말인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친밀하지 않은 사이일 때는 먼저 나의 욕구를 말하는 게 좋습니다. “정우야, 밥 많이 먹기 바란다. 밥 많으니 걱정 말고 먹고 싶은 만큼 먹어. 더 줄까?”라고 한다면, 저는 ‘아, 나를 배려하시는구나’하고 알아채고 ‘밥이 넉넉하니 더 먹어도 되겠네’라고 안심되면서 경계심을 갖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편안하게 “어머니, 고맙습니다. 밥은 충분합니다.” 또는 “어머니, 고맙습니다. 더 주세요.”라고 응답할 수 있게 됩니다.
배려를 잘 하려면 상대방의 성격을 고려해야 합니다. 성격유형검사(MBTI)의 네 가지 기준(외향형-내향형, 감각형-직관형, 사고형-감정형, 판단형-인식형) 중 외향형-내향형 및 사고형-감정형은,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일상생활을 알고 있거나 대화방식을 안다면 비교적 쉽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향형-내향형은, 상대방이 대인관계의 폭이 어떠한지(넓은지 좁은지), 휴일을 어떻게 보내는지(사람을 만나거나 활동을 하는지, 조용히 휴식하는지), 대화의 순서(먼저 말하는지, 나중에 말하는지)와 발화의 양(말을 장황하게 많이 하는지, 간명하게 적게 하는지) 등을 살펴보면 판별할 수 있습니다. 한편 사고형-감정형은, 대화할 때 무엇을 중심으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사실 중심으로 육하원칙에 따라 명확하게 말하는지, 감정 중심으로 장황하게 감정형용사를 많이 표현하는지), 공감 표현을 해주면 어떤 반응인지(반가워하며 좋아하는지, 무덤덤하거나 어색해하는지)를 보고 판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판단한 성격유형을 고려하여 배려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외향형이고 상대방이 내향형이라면, 소통의 방식에서 외향형은 말하기(전화로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내향형은 글쓰기(문자 메시지 주고받기)를 좋아하므로, 상대방에게 연락할 경우에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게 좋습니다. 상대방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을 경우에도 문자 메시지로 응답하는 게 좋습니다. 꼭 통화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전화하기 전에 ‘통화 가능할 때 전화주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게 좋습니다. 반대로 내가 내향형이고 상대가 외향형이라면, 상대방에게 연락할 경우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보다는 전화를 거는 게 좋습니다. 만약 외향형인 상대방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을 경우에는 상대방이 전화하기 곤란한 상황일 수도 있고, 나의 내향적 성격을 배려하여 그런 것일 수 있으므로 일단 문자로 응답하면서 ‘통화 가능하니 전화할 수 있을 때 하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좋아할 것입니다. 만약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소통하려 한다면 반대 성향의 사람은 당황하고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은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육식을 권하거나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채식을 권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격을 고려하여 소통 방식을 배려하는 것은, 식당을 갈 때 상대방에게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어떤 식당으로 가고 싶은지 묻는 게 예의고 상식인 것과 같습니다.
배려해야 할 때
배려를 해야 할 때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대방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때
둘째,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 혼란스러운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
셋째, 상대방이 표현을 솔직하게 하지 않는데 속마음은 도움을 바란다고 판단될 때
‘배려가 잦으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려를 많이 한다고 해서 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경고입니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원하지 않으면 배려를 해줘도 효과가 적습니다. 위의 세 가지 경우에도 반드시 ‘도와줄까요?’라고 물어보고 나서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도와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영어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May I help You?’라는. 또한 나를 희생해서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희생하는 사람에겐 보상심리가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배려의 절차
배려의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대방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살핀다.
둘째, 내가 희생 없이 기꺼이 배려할 수 있는지 판단한다.
셋째, 상대방에게 나의 배려(도움)가 필요한 게 있다고 판단되면 나의 배려(도움)가 필요한지 직접 묻는다.
넷째, 상대방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기꺼이 배려한다.
다섯째, 상대방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하는지 표정과 태도를 살핀다(혹시 상대방이 긍정적인 표정과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기분이 어떤지 물어본다).
여섯째, 나의 배려(도움)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요청해도 된다고 말한다. 단, 내가 배려해줄 수 없는 상황일 때는 거절할 수도 있으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고 미리 알려준다.
영화를 통해 배우는 배려
영화 「날아라 펭귄(2009, 한국)」을 통해 효과적으로 배려하는 방법을 익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주제(‘다름’을 배척하지 말고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아래 네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인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에피소드 1] 9살 아들 승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승윤엄마, 또래의 다른 아이들을 보면 어쩌면 승윤을 지금보다 더 많은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된다. 아직 어린 아들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아내가 못마땅한 승윤아빠도 가끔씩 승윤과 놀아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 현실이 갑갑하다.
[에피소드 2] 채식주의자인데다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는 신입사원 주훈에게 자신을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선배들이 대부분인 회사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다. 화끈한 성격으로 선배들과 잘 어울리던 주훈의 입사동기인 미선도 회사복도에서 흡연하다 들킨 이후 선배들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에피소드 3] 미국에 유학을 보낸 아이들과 아내 없는 일상이 서글프지만 그들을 위해 쓸쓸히 빈집을 지키는 ‘기러기 아빠’ 권 과장. 가끔은 너무 외롭기도 하지만 우연히 만난 딸의 친구로부터 부럽다는 말을 들으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힘을 낸다.
[에피소드 4] 늦은 나이에 큰 용기를 내어 운전면허를 따온 날, 차를 팔아버린 남편을 보며 더 이상 권위적인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심한 송 여사. 그녀의 이혼 요구에 당황스럽고 또 혼자 살아갈 일이 걱정도 되는 권 선생. 그렇다고 50년 넘게 지켜온 자존심을 쉽게 꺾을 수는 없다.
●장면 1. 아빠가 밤늦게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 아들이 엄마에게 붙잡혀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다.
엄마: (잠이 와서 집중하지 못하고 눈을 비비는 아들에게) 승윤아, 잠깨! 오늘 40페이지까지 하기로 했잖아! 어서 풀어!
아빠: (거실로 들어오며) 어이구! 우리 아들 아직 안 잤어? 뭐 하느라고?
아들: ……
엄마: (눈을 부릅뜨고 위협적인 말투로) 빨리 풀어! 40페이지까지 못 풀면 잠 못 자는 거야!
아빠: 잠을 못 자기 뭘 못 자? (책상으로 다가와 앉으며) 아빠가 풀어줄게. 이거 어렵다... (문제를 풀려고 하다가 이상한지 표지를 살펴본다. 문제집이 3학년용이다. 황당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말한다.) 여보, 승윤이 2학년 아니야?
엄마: 지금 선행학습 하잖아! 학년을 미리 당겨서 공부해 놓아야 상급 학년에 가면 유리하다구요.
아빠: 당길 게 따로 있지.
◆바람직한 반응 및 해설(※밑줄 친 대화문은 바람직한 반응이고 괄호 안은 해설임)
엄마: (잠이 와서 집중하지 못하고 눈을 비비는 아들에게) 승윤아, 잠 오니? 피곤하지? 어려운 문제 풀려니 힘들고 더 졸리나 보네. 몇 페이지까지 할래? (해설: 억지로 시키는 공부일수록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공감해 줘야 한다. 그렇다고 버릇이 나빠지거나 게을러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 더 열심히 공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부는 하라고 윽박지른다고 열심히 하지도 않지만 만약 윽박질러서 공부하여 성적이 올라간다면 효과는 단기적이고 지속력이 없으며 모자관계는 나빠진다.)
아빠: (거실로 들어오며) 어이구! 우리 아들 아직 안 잤어? 피곤하겠구나. 당신도 피곤하겠네! (해설: 어쨌든 아내의 노고를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아들: ……
엄마: (다정한 표정과 말투로) 승윤아, 피곤하지만 조금만 더 풀어볼래? (해설: 위협은 관계에도 성과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유형으로 말하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아빠: 당신은 승윤이가 인내심과 목표의식을 갖길 바라는구나. (해설: 아내의 아들에 대한 기대와 욕구를 파악하여 표현해 준다) 승윤아, 피곤하고 힘들지? (문제를 풀려고 하다가 이상한지 표지를 살펴본다. 문제집이 3학년용이다.) 여보, 승윤이 2학년인데 3학년 문제집이네? 선행학습이 효과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네. (해설: 아내의 판단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보다는 일단 존중하는 게 좋다.) 내 생각에는 자기 학년 수업과정에 충실하면 충분할 것 같아요. (해설: 자기 주장을 할 때도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개인 의견임을 강조하는 게 좋다.)
엄마: 나는 선행학습이 효과적이고 상급 학년에 가면 공부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그렇지 않은가 보네요. 승윤이 교육은 나한테 맡기고 내 의견을 존중해주면 좋겠어요. (해설: 남편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다름’을 말한다. 누구의 의견이 절대 옳거나 틀린 게 아님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남편에게 바라는 바를 솔직하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장면 2. 회사에 처음 출근한 신입사원 이주훈 씨. 모든 부서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기존 사원들은 신입사원에게 물어보지 않고 메뉴를 일방적으로 고르고 주문한 뒤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
과장: (이주훈이 밥과 기본 반찬만 먹는 걸 발견하고) 이주훈 씨, 왜 불고기 안 먹어? 첫 날이라 일부러 시킨 건데.
이주훈: (당황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요새 제가 한약을 좀 먹어서…
계장: 한약하고 돼지고기가 상극이지 소고기는 괜찮은데? 먹어! 아이, 까다롭다, 성격이. (국자로 생태탕을 퍼면서) 생태탕 줄 테니 이것 먹어요!
이주훈: 아뇨, 괜찮습니다.
계장: (주훈의 말을 무시하고 “맛있어요”하며 생태탕을 퍼준다. 주훈은 할 수 없이 받는다. 식사가 끝나고 난 뒤 주훈에게 준 생태탕 그릇을 바라보고 나서) 이주훈 씨, 왜 생태탕에 손도 안 댔어? 아유, 한약하고 생선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니까 그런다! 내 말 좀 듣지.
이주훈: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
과장: 혹시 뭐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이주훈: 아니, 그게 아니고요... 실은... 제가 채식주의자입니다.
모두: 뭐 대단한 커밍아웃이라고! 하하하...
◆바람직한 반응 및 해설(※밑줄 친 대화문은 바람직한 반응이고 괄호 안은 해설임)
과장: (이주훈이 밥과 기본 반찬만 먹는 걸 발견하고) 이주훈 씨, 혹시 고기 안 좋아 해요? 우리가 취향도 묻지 않고 시켜서 미안해요. (해설: 우리나라 직장에서는 왜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무조건 반말은 하는가? 일단 존댓말을 하고 관계가 친밀해진 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반말해도 된다, 반말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고 하면 그때 반말하는 게 예의고 배려가 아닐까? 회식이 신입사원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라면 신입사원의 음식 취향을 물어보는 게 배려이고, 뒤늦게라도 확인하고 사과하는 게 예의다.)
이주훈: (당황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요새 제가 한약을 좀 먹어서… (해설: 신입사원이 첫 날부터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밝히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며 둘러대는 게 이해된다.)
계장: 아, 한약 먹기 때문에 고기를 아예 안 먹는군요. 그러면 생태탕은 어때요? (해설: 이제라도 상대방에게 묻는 게 좋다.)
이주훈: 아뇨, 괜찮습니다.
계장: (식사가 끝나고 난 뒤 주훈에게 준 생태탕 그릇을 바라보고 나서) 이주훈 씨, 생태탕도 안 드셨네요. 억지로 퍼줘서 당황스럽고 부담됐겠네요. 미안해요. (해설: 자신의 친절이 지나쳤음을 인정하고 부담을 준 데 대해 사과하는 게 좋다.)
이주훈: 괜찮습니다.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해설: 관심 갖고 따뜻하게 챙겨준 계장의 배려심을 칭찬하는 게 좋다.)
과장: 혹시 음식을 가리는 게 한약 말고 어떤 다른 사정이 있어요? 말하기 어려우면 안 밝혀도 됩니다. (해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라는 질문은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을 것이고 없다면 황당하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음식을 가리는 이유를 ‘열린 질문’으로 확인하면서 대답의 선택권을 준다.)
이주훈: 실은... 제가 채식주의자입니다. (해석: 당당하게 말하는 게 좋다.)
모두: 아, 그러시군요. 미안합니다. 그런 줄 모르고 음식을 일반적으로 시키고 고기와 생선 안 먹는다고 타박했으니. (해설: 채식주의자임을 밝혔으면 상대방의 가치관과 취향을 존중하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을 사과해야 한다.)
●장면 3. 미국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한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기러기 아빠’(권 과장)가 떡볶이를 만들어 식탁에 둘러 앉아 먹는다.
아빠: (외출하려는 아들을 보며) 어디 가?
아들: 친구 만나러 가요.
아빠: 그래? 아빠가 만든 떡볶이 좀 맛보고 가!
아들: 죄송해요. 늦었어요. (아들이 그냥 외출한다.)
딸: (떡볶이를 한입 먹고) 아이, 매워!
아빠: (의아한 듯 한입 먹고 나서) 괜찮은데?
딸: too hot! 아빠! 아빠는... 아직 내가 어린애로 보이나 봐. 떡볶이 먹을 나이는 지났죠.
아빠: 으흠...
딸: 아빠, 그냥 피자 시켜 주세요!
아빠: 피자? (당황하며 아내를 쳐다본다.)
아내: 애들 매운 것 먹은 지 오래 됐잖아. 거의 미국 애들 입맛 다 됐는데 뭐...
아빠: 으흠... 그래? ...
◆바람직한 반응 및 해설(※밑줄 친 대화문은 바람직한 반응이고 괄호 안은 해설임)
아빠: (외출하려는 아들을 보며) 어디 가?
아들: 친구 만나러 가요.
아빠: 그래? 아빠가 만든 떡볶이 조금만 맛보고 가면 좋겠는데 어때? (해설: 명령형보다는 청유형으로 말하는 게 부드럽게 들린다.)
아들: 예, 좀 늦어서 조금만 맛보고 갈게요. 죄송해요. (해설: 아무리 늦어도 한 입 맛볼 시간이 없겠는가. 아빠의 정성을 무시하는 아들의 태도가 야속하고 아쉽다. 조금이라도 맛보는 게 예의고 배려다.)
딸: (떡볶이를 한입 먹고) 아, 좀 매워요... (해설: 맵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애써 떡볶이를 만든 아빠를 배려하지 않은 실례되는 행동이다. 부정적인 표현을 할 때는 ‘좀’이라는 약한 정도부사를 붙이는 게 좋다. 긍정적인 표현을 할 때는 ‘매우’라는 강한 정도부사를 붙이는 게 좋다.)
아빠: 매운가 보구나. 나는 네 입맛에 맞게 한다고 했는데 당황스럽고 아쉽네... (해설: 미각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옳고 그름의 판단 대상이 아니므로 공감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면서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는 있다.)
딸: 아빠, 애써서 만들어 주셨는데 맵다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 미국생활하다 보니 입맛이 변했나 봐요. (해설: 아빠의 수고에 감사하는 게 예의고, 자신의 입맛이 변했음을 탓하는 게 배려다.)
아빠: 으흠...
딸: 아빠, 죄송하지만 떡볶이가 매워서 피자 먹고 싶은데 어때요? (해설: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피자 시켜 주세요!”라고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데 어때요?”라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의견제시를 하는 것이 좋다.)
아빠: 맵지 않은 피자를 먹고 싶구나. (해설: 딸의 욕구와 제안을 수용한다. ‘맵지 않은’이라는 말을 덧붙이면 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드러나므로 더 좋다.)
아내: 당신, 좀 당황스럽고 아쉽겠네. 정성껏 만든 떡볶이인데 딸이 매워서 안 먹겠다고 하니. (해설: 딸보다 남편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게 좋다. 딸은 입이 매울 뿐이지만 남편은 마음이 아프므로.)
아빠: 으흠... 그래, 내 마음 알아줘서 고마워. (해설: 공감 받았으면 그에 대해 감사 표현을 하는 것이 배려이고, 다음에 또 공감 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장면 4. 아내가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하려고 나가려 한다. 아내는 자신이 없는 동안 남편이 먹을 음식을 장만해 놓은 뒤 안방에 누워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서 다 준비해 놨으니 잘 챙겨 먹으라고 말한다.
아내: 여보, 곰국 끓여 놓았고 파도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 뒀으니 끼니때마다 한 움큼씩 넣어 드세요. 밥솥은 스위치만 누르면 돼요.
남편: 어딜 가는데?
아내: (황당하고 답답하고 섭섭한 표정으로) 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요~. 친구들 하고 제주도 간다고.
남편: 아니, 여편네들이 집을 며칠씩이나 비워놓고 어딜 그렇게 쏘다녀?!
아내: 순심이 남편 떠나보내고 울적해 하니까...
남편: 당신 남편 울적한 건 신경 안 쓰여?
◆바람직한 반응 및 해설(※밑줄 친 대화문은 바람직한 반응이고 괄호 안은 해설임)
아내: 여보, 잘 다녀올게요. 당신 두고 여행 가려니 신경이 쓰이네요. 미안해요. 곰국 끓여 놓았고 파도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 뒀으니 끼니때마다 한 움큼씩 넣어 드세요. 밥솥은 스위치만 누르면 돼요. (해설: ‘사실 지향 대화’를 하기 전에 ‘관계 지향 대화’를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상대방이 내 말에 경청하고 수용한다.)
남편: 잘 다녀 와. 조심하고. (해설: 가겠다고 미리 말했고 지금 가려는 사람에게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아무 효과도 없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가 최선의 표현이다.)
아내: 당신을 두고 놀러가니 섭섭하고 아쉬운가 보네요. (해설: 남편이 잊어버려서 어딜 가느냐고 묻는 게 아니다.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을 삐딱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감 표현을 해야 한다.)
남편: 그래, 평생 집안일 하느라 힘들었고 여행도 자주 못했으니 모처럼 친구들과 편안하고 즐겁게 놀다 오시오. (해설: 아내의 노고를 인정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좋다.)
아내: 당신 홀로 있으면 외롭고 식사 챙겨 먹으려면 귀찮겠어요. 그런데 그냥 놀러가는 게 아니에요. 순심이 남편 떠나보내고 울적해 하니까 좀 위로해 주려고 가는 거예요. (해설: 남편이 맞이할 상황과 마음을 공감해주고, 여행의 목적을 자세히 알려주는 게 좋다.)
남편: 그렇구나. 순심 씨 위로 잘 해줘요. 나도 울적하니까 나중에 위로 좀 해주면 좋겠소. (해설: 아내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고 나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게 좋다. 상대의 말을 반박하기만 하면 자신의 욕구를 수용 받기 어렵다.)
<상담심리학 박사, 한마음상담센터 대표, 인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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