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43)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한껏 높이 보라

허섭 승인 2021.02.11 21:08 | 최종 수정 2021.02.13 14:43 의견 0
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79.2×138.2), 리움미술관

043 -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한껏 높이 보라

몸을 세우되 한 걸음 높이 세우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먼지 속에 옷을 털고 흙탕물 속에 발을 씻는 것과 같으니
어찌 달관할 수 있으리오.

세상을 살아감에 한 걸음 물러서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나방이 촛불로 날아들고 뿔난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 것과 같으니
어찌 안락할 수 있으리오.

  • 高一步立(고일보립) : 한 걸음 위에. 여기서는 ‘한 차원 더 높이 생각하라’ 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즉, 항상 자신의 목표를 세우되 속인들보다 한 차원을 높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 塵裡振衣(진리진의),  ̖泥中濯足(니중탁족) : 보람도 효과도 없는 일을 한다는 뜻임.  * 굴원( 屈原)의「어부사(漁父辭)」에서 따온 문구이다.
  • 超達(초달) : 초탈(超脫)과 달관(達觀)
  • 飛蛾投燭(비아투촉) : 부나비가 촛불로 날아듦.
  • 羝羊觸藩(저양촉번) : 뿔난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을 비유한 말이다.
  • 羝(저) : 뿔이 있는 수컷 양
  • 藩(번) : 바자울, 나무를 엮어 세운 울타리. 
이선(李鱓, 청, 1686~1761) - 웅계도(雄鷄圖)

◆출전 관련 글

▶『역경(易經)』 <雷天大壯(뇌천대장)> 괘(卦)에 

羝羊觸藩(저양촉번) 不能退(불능퇴) 不能遂(불능수).
숫양이 마구 내달려 울타리에 처박혀 물러날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다.

▶굴원(屈原)의「어부사(漁父辭)」에

新沐者(신목자) 必彈冠(필탄관) 新浴者(신욕자) 必振衣(필진의) 
이제 막 목욕을 한 사람은 갓을 털어 쓰고 옷을 털어 입는다.

滄浪之水(창랑지수) 淸兮(청혜)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 滄浪之水(창랑지수) 濁兮(탁혜)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굴원(屈原)의 「어부사(漁夫辭)」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라는 구절로 우리에게 친숙한 屈原의「漁夫辭」이다.

<굴원(屈原 BC339-278?)>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楚)나라 사람으로 王의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三閭大夫)라는 높은 벼슬에 올라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애썼으나 간신배(奸臣輩)들의 모함(謀陷)으로 조정(朝廷)에서 쫓겨나 실의(失意)의 나날을 장강(長江) 주변을 방황하면서 지냈는데 이 때 유명한「어부사(漁夫辭」를 남겼다. 그 후 초나라의 앞날에 희망이 없어지고 망할 지경에 이르자 5월5일 돌을 품고 호남성 상수(湘江)의 지류인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는데 5월5일은 그를 추모하는 제일(祭日)이 되고 단오절(端午節)의 유래(由來)가 되었다. 문학적으로는‘사(辭)’라고하는 산문 형식의 장르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굴원의 문학은 중국문학에 있어서 남방의 전통을 대표하게 되었으며 훗날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屈原旣放(굴원기방)에 遊於江潭(유어강담)하고 行吟澤畔(행음택반)할새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가나 못가에서 노닐고 호반에서 시를 읊조릴 때 

* : 소, 못   澤 : 연못   畔 : 물가 

顔色(안색)이 憔悴(초췌)하고 形容(형용)이 枯槁(고고)하니    
안색이 초췌하고 모습이 수척해 있었다. 

*憔 : 수척하다.    悴 : 파리하다,시들다.    槁 : 마르다. 

漁夫(어부)가 見而問之曰(견이문지왈), 子非三閭大夫與(자비삼려대부여)아   
어부가 그를 보고는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신가?” 

*與 : 무리, 동아리, 긍정의 어조사로 歟와 같음.   子 : 당신 

何故(하고)로 至於斯(지어사)오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 

*斯 : 이,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 

屈原曰(굴원왈), 擧世皆濁(거세개탁)이어늘 我獨淸(아독청)하고 
굴원이 말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衆人皆醉(중인개취)어늘 我獨醒(아독성)이라 是以(시이)로 見放(견방)이로다.    
뭇사람이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당했소이다.”

*見 : 당하다, 만나다.

漁夫曰(어부왈), 聖人不凝滯於物(성인불응체어물)하고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하나니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凝 ;엉기다    滯 ; 막히다 

世人皆濁(세인개탁)이어든 何不淈其泥而揚其波(하불굴기니이양기파)하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어찌 그 진흙을(그들과 같이) 휘젖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淈 : 흐리다, 어지럽다, 흐리게 하다.   泥 : 진흙.   淈도 ‘진흙’ 이라는 뜻이 있다.

衆人皆醉(중인개취)어든 何不餔其糟而歠其醨(하불포기조이철기리)하고   
뭇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왜 그 술지게미를 먹고 그 지게미 국물(薄酒)을 마시지 않고서는 

*餔 : 먹다. 食과 같은 뜻이다.   糟 : 술지게미.   歠  : 마시다. 飮과 같은 뜻이다. 
*醨 :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 술.  판본에 따라 釃(싱거운 술, 리 / 술 거를 시)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

何故(하고)로 深思高擧(심사고거)하여 自令放爲(자령방위)오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爲 : 의문조사 乎와 같은 뜻으로 쓰인 경우이다.

屈原曰(굴원왈), 吾聞之(오문지)하건대 新沐者(신목자)는 必彈冠(필탄관)이오     
굴원이 말하기를“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을 퉁겨서 쓰고 

沐 : 머리감다. 

新浴者(신욕자)는 必振衣(필진의)라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고 하였소이다. 

*浴 : 몸을 씻다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로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아   
어찌 몸의 깨끗한 곳에 外物의 수치스러운 것을 받겠소. 

*安 : 어찌    察 : 깨끗하다    汶 : 수치, 부끄러움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영부상류) (장어강어지복중)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강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寧 : 차라리, 어찌    赴 : 달려가다.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으로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몽세속지진애호)아   
어찌 희디흰 순백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쓴단 말이오?” 

*安 : 어찌    皓 : 희다, 깨끗하다    蒙 : 입다, 어둡다    埃 : 먼지, 티끌 

漁夫(어부)가 莞爾而笑(완이이소)하고 鼓枻而去(고설이거)하며 歌曰(가왈),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莞 : 웃다, 왕골.   爾 : 어조사, 너    枻 : 노, 배의 키 

滄浪之水(창랑지수)가 淸兮(청혜)어든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이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兮 : 어조사    纓 : 갓끈. 

滄浪之水(창랑지수)가 濁兮(탁혜)어든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이로다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遂去(수거)하여 不復與言(불부여언)이더라.   
마침내 떠나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遂 : 이르다, 마치다, 마침내, 드디어. 

 

▶탁족 유감 (濯足有感) 

-굴원의「어부사」에 부쳐 / 도무지(道无知)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 굴원(屈原)의 「어부사(漁夫辭)」에서

창랑의 물은 누굴 위해 때론 맑고 때론 흐리단 말인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어떻고 또 흐리면 어떠하단 말인가
창랑의 물이 어느 땐들 한 번이라도 맑은 적이 있었던가
하물며 갓끈에 앉은 먼지와 발가락 사이의 때를 구태여 구별하리오

여기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옛 사람은 무릇 천하의 근심을 잊고자 하였으나 
지금의 나는 겨우 하루의 근심을 잊으려 하네

옛 사람 굴원(屈原)이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지며 
한 늙은 어부(漁父)의 입을 빌어 노래했던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일찍이 기산(箕山)의 영수(潁水)에서 
소를 몰고 귀를 씻었던 나는
오늘 여기 이렇게 노래하네

창랑의 물이 맑아도 좋고 흐려도 좋으이
하여 이제 나는 그 물에 내 마음을 씻으려 하네

아아!
창랑의 물이 맑고도 흐려
오직 그 물에 내 마음을 씻네

  • 5연 1~2 행은 허유(許由)와 소부(巢父)의 고사를 말함.

▶허유(許由)와 소부(巢父)의 고사

< 허유괘표(許由掛瓢)의 고사 >  

중국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동남쪽 기산(箕山)에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은둔하여 살고 있었다.

허유는 양성(陽城) 괴리(槐里) 사람으로 패택(沛澤)에서 살던 은자(隱者)로 사람됨이 의리를 지키고 행동이 바르며 옳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도 않고,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으며 살았다. 그는 욕심이란 티끌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진 것이라고는 입은 옷이 전부였다. 마침 요 임금이 다스리던 태평성세라 허유도 배를 주리는 일 없이 물을 마시고 싶으면 시냇가에 나가 손으로 떠 마시면 되었고, 자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나무 등걸을 베고 자면 되었다. 

하루는 허유가 시냇가에 나가 물을 손으로 떠 마시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아낙네가 딱하게 생각하여 그에게 쪽박 하나를 가져다가 주었다. 과연 물을 떠 마시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비록 작은 쪽박이기는 하나 그것도 하나의 재산이었다. 그래서 늘 빈손으로 홀가분하게 다니던 그에게는 짐이 되었다. 나무 그루터기를 베고 낮잠을 청할 때도 쪽박을 나무 가지에 걸어 두어야 하고 잠이 들었다가도 쪽박이 바람에 흔들려 달가닥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야 하니 예전처럼 단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쪽박 없이 살아온 지난날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는 쪽박을 미련없이 박살내 버렸다. 버리고 나니 얼마나 개운한지 몰랐다. 

< 허유세이(許由洗耳)의 고사 > 

그러던 어느 날 요 임금이 찾아와, “나는 이제 늙어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는데 다들 당신같이 어진 이가 없다고들 하니, 이제부터는 당신이 나를 대신하여 천하를 맡아주었으면 하오” 라고 간청하였다. 

요(堯) 임금으로부터 양위(讓位)를 하겠다는 말을 듣은 허유는 ‘월조대포(越俎代庖)-요리사가 요리를 잘못한다고 해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고사로 답하고, 기산의 영수(潁水) 근처에 은둔했다고 한다. 요 임금이 다시 그를 찾아가 천하가 아니면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하였지만, 거절하고 돌아와 자신의 귀를 영수에 씻었다.

이때, 그의 친구인 소부(巢父)가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려 왔다가 이를 보고 왜 귀를 씻느냐고 물었다. “요 임금으로부터 구주를 맡아 달라는 말을 들어 내 귀가 더러워졌기에 씻고 있는 중이요.” 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듣자 소부는 크게 웃으며 “그대가 깊은 계곡에 살아 사람 다니는 길과 통하지 않을 텐데 누가 자네를 볼 수 있단 말인가. 자네가 일부러 돌아다니며 알려지기를 바랐으니 일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오.” 그리고는 허유가 귀 씻은 더러운 물을 자기 송아지에게도 먹일 수 없다며 송아지를 몰고 강의 상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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