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67) - 대나무 울타리 밑에서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 …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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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2 22:55 | 최종 수정 2021.09.2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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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 대나무 울타리 밑에서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 …
대나무 울타리 밑에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
황홀하여 구름 속의 세계에 있는 것 같고
서창(書窓) 안에서 매미 노래하고 까마귀 우짖는 소리를 들으면
바야흐로 고요 속의 별천지(別天地)를 알게 된다.
- 竹籬(죽리) : 대나무 울타리.
- 忽(홀) : 갑자기.
- 犬吠鷄鳴(견폐계명) : 개 짖고 닭 우는 소리. 출전은 도연명(陶淵明)의 「귀전원거(歸田園居)」이다. * 많은 번역자들이 ‘개와 닭’ 을 ‘선경(仙境)의 풍물(風物)’ 로 보았으나 나의 견해는 정반대이다. ‘개 짖고 닭 우는 소리’ 는 바로 속세를 나타낸 말이다. 개와 닭은 대표적인 가축(家畜)이 아닌가? 도연명의 「귀전원거(歸田園居)」에서도, 해당 구절은 ‘속세와 멀리 떨어진 이상향’ 을 말한 것이 아니라 ‘속세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속세와는 거리를 둔 자신의 거처’ 를 나타낸 말로 해석된다. * 후집 제 93장 참조
- 恍(황) : 황홀(恍惚)하다, 어슴프레하다, 미묘하여 알 수 없는 모양
- 雲中世界(운중세계) : 구름 속의 세계, 곧 선경(仙境)을 뜻함.
- 芸(운) : 향초(香草), 향기로운 풀. 藝(예)의 略字로도 씀
- 芸窓(운창) : 서재(書齋)에 대한 별칭(別稱)이다. * 芸운 향초의 일종으로 책갈피에 끼워 좀을 방지하였기에 芸窓은 책을 두는 장서(藏書)하는 곳, 곧 서재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외에도 운대(芸臺), 운각(芸閣)이라는 단어도 사용한다.
- 蟬吟(선음) : 매미의 울음소리.
- 鴉噪(아조) : 까마귀의 우짖는 소리. 鴉는 ‘까마귀, 검다’, 噪는 ‘시끄럽다, 떠들썩하다, 새가 지저귀다’
- 方(방) : 모, 모서리, 방향, 바야흐로, 마침내
- 靜裡乾坤(정리건곤) : 고요 속의 별천지(別天地). 裡는 裏와 동자(同字)이다.
◈ 도연명(陶淵明) 「귀전원거(歸田園居)」 제1수 (전체 5수 중)
少無適俗韻 (소무적속운) 어려서도 세상과는 어울리지 못하더니
性本愛丘山 (성본애구산) 천성이 본래 자연을 사랑하였다네
誤落塵網中 (오락진망중) 자칫 잘못하여 올가미에 매인 뒤로
一去三十年 (일거삼십년) 내처 삼십 년이 흘러버렸네
羈鳥戀舊林 (기조연구림) 새장 속의 새도 옛 숲을 그리워하고
池魚思故淵 (지어사고연) 연못의 고기도 옛 놀던 물을 잊지 못하지
開荒南野際 (개황남야제) 남쪽 들녘 한 귀퉁이 묵정밭 일구며
守拙歸園田 (수졸귀원전) 소박함을 지키려 전원에 돌아왔네
方宅十餘畝 (방택십여무) 집터는 둘러 사방 300여 평에
草屋八九間 (초옥팔구간) 초가집이 엳아홉 간일 뿐이지만
榆柳蔭後檐 (유유음후첨) 뒤뜰에는 느릅나무 버드나무가 처마를 덮고
桃李羅堂前 (도리나당전) 앞뜰에는 복숭아 오얏나무가 늘어서 있네
曖曖遠人村 (애애원인촌) 가물가물 멀기도 한 마을에서는
依依墟里煙 (의의허리연) 하늘하늘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네
狗吠深巷中 (구폐심항중) 골목 깊은 곳에서 개 짖는 소리 들리고
雞鳴桑樹顛 (계명상수전) 뽕나무 위에서는 닭 울음소리 들려오네
戶庭無塵雜 (호정무진잡) 집안에는 세상의 번잡한 일 전혀 없고
虛室有餘閒 (허실유여한) 빈 방에는 한가로움이 넘쳐나네
久在樊籠裡 (구재번롱리)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혀 살다가
復得返自然 (부득반자연) 마침내 뜻대로 자연으로 돌아왔다네
※ 「귀원전거(歸田園居」에서 밑줄 친 ‘개 짖고 닭 우는 소리’ 는 곧 속세, ‘인간의 마을’ 을 뜻한다. 도연명이 머무는 곳은 결코 ‘인간의 마을’ 을 등진 세계는 아닌 것이다. 다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일 뿐이다. 그는 또 다른 작품인 「음주(飮酒)」제3수에서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오두막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지만 /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마차와 가마의 시끄러움이 없으니 /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어찌하면 이렇게 될 수 있나요 / 深遠地自偏(심원지자편)-마음이 멀면 자연히 몸(땅)도 멀어지지요’ 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니, 이는 곧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겠다’ 는 도연명의 처세관을 피력(披瀝)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번역자들이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자체를 ‘선경(仙境)의 풍물(風物)’ 로 풀이하는 것은 맞지 않은 해석이다.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요(要)는 『채근담』의 저자인 홍자성도 도연명의 처세관을 철저히 따랐다는 사실이다. 『채근담』에 가장 많이 인용된 문인은 이백이나 두보가 아니라 도연명과 소동파이고 철학자로는 소강절(邵康節)이다.
옛날에 선약(仙藥)은 물론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이나 경옥고(瓊玉膏) 같은 귀한 약을 만들 때에도 반드시 ‘개 소리 닭 소리 들리지 않는’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들어가 온갖 정성을 들여 약재를 고아서 환(丸)을 지었던 것이다. 이는 신비한 약효를 위해 신령한 기운을 담고자 함이었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자체가 곧 속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노자가 『노자(老子)』 제80장에서 이상국(理想國)으로 비정(比定)한 것이 ‘이웃 마을의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가 들리는 - 鷄犬之聲相聞’ 작은 고을이었기에 후대의 사람들이 이상향을 이야기하면서 ‘닭 울고 개 짖는 소리’ 를 으레 이샹향의 상징으로 표현한 듯하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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