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74) - 세상에 잡초는 없다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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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1 22:46 | 최종 수정 2021.10.0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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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 세상에 잡초는 없다
인정은 꾀꼬리 소릴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소릴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가꾸고 싶고 풀을 보면 뽑고자 하니
이는 다만 형체와 기질로 사물을 (제 맘대로) 나누기(분별하기) 때문이다.
만일 타고난 본성으로 본다면
어느 것인들 천기를 울림이 아니며
스스로 살고자 하는 뜻을 펼침이 아니리오.
- 鶯啼(앵제) : 꾀꼬리가 우는 것. 鶯은 꾀꼬리, 鸚은 앵무새.
- 蛙鳴(와명) : 개구리가 우는 것. 蛙는 개구리, 蝸는 달팽이.
- 形氣(형기) : 형체(形體)와 기질(氣質).
- 性天(성천) : 천성(天性), 본성(本性).
- 用事(용사) : 일을 함. 여기서는 ‘나누다(구분하다)’ 의 뜻이다.
- 天機(천기) : 하늘의 기틀, 천지만물의 작용.
- 自暢(자창) : 스스로 펼쳐나감. 暢은 ‘펴다, 펼치다, 신장(伸張)하다’.
- 生意(생의) : 살고자 하는 뜻, 생생발육(生生發育)의 의지
◈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方生方死(방생방사) 方死方生(방사방생) 方可方不可(불가방불가) 方不可方可(방불가방가) 因是因非(인시인비) 因非因是(인비인시) 是以聖人不由(시이성인불유) 而照之於天(이조지어천) 亦因是也(역인시야).
- 삶이 있으니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삶이 있다. 가능이 있으니 불가능이 있고, 불가능이 있으니 가능이 있다. 옳음이 있으니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으니 옳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이런 상대적 입장에 서지 않고 하늘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이것이야말로 옳음에 기인한 것이다.
* 여기서 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方은 ‘마침내, 바야흐로’ 라는 시간부사로도 쓰이며 ‘모름지기’ 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由는 ‘말미암다’ 인데, ‘말미암다’라는 말은 ‘어떤 것의 원인이 된다’ 는 뜻이다. 그러하니 由와 因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方도 ‘말미암다’ 로 풀이해도 무방할 것이다.
◈ 철학자 윤구병의 『잡초는 없다』 중에서
지난 여름에 우리 변산 공동체 식구들은 여름 내내 아침을 걸렀다. 아침에 배를 비우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나마 시원해서 일하기 덜 힘드는 때가 아침 이른 시간이거나 해가 뉘엿뉘엿해지는 저녁 무렵인데, 아침 밥상머리에서 그 서늘한 때를 허송하는 게 영 아까웠기 때문이다. < 중략 > 올 여름에는 아마도 상황이 바뀔 듯싶다. 지난 여름에는 ‘잡초’ 들과 전쟁을 했는데 올해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잡초’ 들과 날마다 땡볕 속에서 싸워야 할 상황이 빚어졌던 것은 우리가 가꾸는 농작물들이 ‘잡초’ 와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에 ‘잡초’ 라고 여겼던 것이 농사의 훼방꾼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땅에 뿌려준 고마운 먹이라면 어떨까? 따로 가꾸지 않고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약초나 나물의 일종이라면? 올 이런 봄에 겪었던 ‘잡초’ 사건이 기억난다.
마늘밭을 온통 풀밭으로 바꾸어 놓은 그 괘씸한 ‘잡초’ 들을 죄다 뽑아 던져 썩혀 버린 뒤에야 그 풀들이 ‘잡초’ 가 아니라 별꽃나물과 광대나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정갈하게 거두어서 나물도 무쳐 먹고 효소 식품으로 바꾸어도 좋을 약이 되는 풀들을, 내 손으로 그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돋아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대시하여 죄다 수고롭게 땀 흘려 가며 뽑아 버렸으니 어리석기도 하지.
< 중략 >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있는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잡초가 아니다. 망초도 씀바귀도 쇠비름도 마디풀도 다 나물거리고 약초다. 마찬가지로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잡초 같은 인생’ 을 찾아보기 힘들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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