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 결단코 화분 속의 꽃과 조롱 속의 새는 되지 말지어다
화분 속의 꽃은 끝내 생기를 잃고
조롱 속의 새는 이내 타고난 기질이 줄어드니
(이는) 산속의 꽃과 새가 한데 어울려 아름다움을 이루고 자유롭게 날아올라
스스로 한가로히 즐거워함만 같지 못하다.
- 花居盆內(화거분내) : 꽃이 화분 속에 있으면, 즉 화분 속의 꽃은.
- 終(종) : 끝내.
- 乏(핍) : 모자람, 결핍(缺乏)됨.
- 生機(생기) : 살고자 하는 기운, 곧 생기(生氣).
- 鳥入籠中(조입롱중) : 새가 새장 속에 들어가면, 곧 새장 속의 새는. 籠은 대로 만든 바구니(광주리)의 총칭이나 때론 ‘새장(鳥籠)’ 을 가리킨다. 농구(籠球 basketball).
- 便(변) : 이내, 즉시, 곧.
- 減(감) : 줄어듦, 감함.
- 天趣(천취) : 타고난 그대로의 맛과 멋, 타고난 기질(氣質).
- 不若(불약) : ~함만 같지 못하다, ~만 못하다. ‘不如(불여)’ 와 같은 뜻이다.
- 錯集(착집) : 뒤섞여 모임. 錯은 ‘뒤섞임, 잘못됨(錯誤착오)’ 의 뜻이나 여기서는 ‘뒤섞여 어우러짐’ 을 의미함.
- 成文(성문) : 아름다운 문채(紋彩)를 이룸.
* 文은 원래 ‘무늬’ 를 뜻하는 글자였으나,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게 되면서 ‘문자(文字, 글)’ 의 뜻으로 쓰이게 되어, 이후 무늬를 뜻하는 글자로 다시 ‘紋(무늬 문)’ 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일러 ‘천문(天文)’ 하고 땅의 물과 산, 즉 산하(山河)를 일러 ‘지문(地文)’ 이라 하고 사람의 생각을 나타낸 말과 글을 일컬어 ‘인문(人文)’ 이라 하는 것이다.
- 翶翔(고상) : 새가 날아다님. 翶는 새가 날개를 위 아래로 흔들며 나는 것이며, 翔은 새가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 빙빙 돌며 나는 것이다.
- 自若(자약) : 태연한 모양, 자유로운 모양. 태연자약(泰然自若).
- 自是(자시) : 스스로 ~이다, 스스로 ~하다.
- 悠然(유연) : 여유 있고 편안한 모양.
- 會心(회심) : 마음에 맞아 유쾌함. 會는 ‘일치하다, 하나가 되다’ 의 뜻이다. * 會心을 ‘마음에 깨달음, 즉 자연의 묘미를 깨닫는 것’ 으로 풀이한 이들도 있다.
* 이 장의 문장 구조는 이러하다.
전체 문장 구조는 <화분 속의 꽃이 ~하고 / 조롱 속의 새가 ~함은 // 不若(같지 못하다) // 산간화조가 ~하고 ~함만> 이 된다. 따라서 不若이 걸리는 부분은 불약 이후 부분 모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야생(野生)의 꽃이 한데 어울려 문채를 이루고 / 야생의 새가 자유롭게 날아올라 / (이러하여 야생의 꽃과 새가) 스스로 편안하고 즐거워함만 // 같지 못하다> 가 된다.
* 동양학자 박현(朴賢)은 이 장의 첫 구절을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과연 빼어난 번역이다.
화분에 심어진 꽃 / 생기가 모자라고 / 새장에 갇힌 새 / 나래짓 줄어든다
◈ 『학산당인보(學山堂印寶)』 중에서
此鳥安可籠哉 (차조안가롱재) - 이 새를 어찌 조롱 속에 가둘 수 있으리오 !
※ ‘새장 안에 가둘 수 없는 새, 그 어떤 틀 속에도 가둘 수 없는 사람’ - 이를 일러 우리는 <不覊人(불기인)> 이라 한다. 그는 그 어떤 굴레나 멍에는 물론 코뚜레와 고삐, 나아가 올가미조차 씌울 수 없는 사람이다. 장자(莊子)는 이를 일러 ‘대붕(大鵬)’ 이라 하였다.
◈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 선생의 인생삼락(人生三樂)
閉門閱會心書 (폐문열회심서)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開門迎會心客 (개문영회심객)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出門尋會心境 (출문심회심처)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此乃人間三樂 (차내인간삼락) 이것이 인간(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 위 시에서는 ‘회심(會心)’ 이란 말이 모두 세 번이나 나온다. 이것을 ‘내 마음에 맞는 책 / 친구 / 경치’ 로만 새긴다면 그 사람은 진정 인생의 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과연 우리가 살아온 인생길에서 내 마음에 흡족한 일이나 몇 번이나 있었으며, 내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던가? 세상에는 온통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맑은 날보다 궂은 날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놓치고 이 시를 읽는다면 정말 ‘수박 겉핥기’ 인 셈이다. ‘會心’ 이란 말의 會 자(字)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이러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會는 ‘모이다, 모으다 → 만나다’ 의 뜻으로 알고 있으며, 본문에서 말한 대로 ‘맞다, 일치하다, 하나가 되다’ 의 뜻으로 전이(轉移) 확장(擴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만으로는 상촌 선생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會 자에는 우리말 ‘맞닥뜨리다’ 에 해당하는 ‘때마침’ 이라는 ‘타이밍 timeing’ 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장 적확(的確)하게 나타낸 말이 경상도 방언의 ‘애댕기다’ 일 것이다.
위 시에서 ‘회심서 / 회심객 / 회심처’ 는 단순히 ‘내 마음에 맞는 책 / 벗 / 경치(경계境界)’ 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바쁜 중에도 문을 걸어 잠그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펼치고 / 문을 여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벗이 찾아오고 /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봤으면 했던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내 마음에 딱 맞는 책이 있던가? 있다고 하여도 그 책의 모든 구절이 내 마음에 흡족하겠는가? 내가 권좌(權座)에 있을 때에는 시정잡배(市井雜輩)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는데 이제 벼슬에서 물러난 낙백(落魄)한 처지이니 찾아오는 이 하나도 없는데 마침 문을 여니 반가운 벗이라도 찾아왔다는 것인가? 정말 오랜만에 집을 나서서 그간 벼르고 벼려왔던 명승지를 마침내 찾아간다는 것인가?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것이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책을 펼쳐 읽는데 어느 구절에 이르러 그 문장이 내 맘에 닿아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탄복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찾아왔는데 처음 보는 이여서 시큰둥하게 맞이하였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니 이 사람이야말로 평생의 지기(知己)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닌가! 별 생각 없이 들른 곳에서 정말 대단한 감흥에 젖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會 자에는 ‘그 때 그 곳’ 이라는 타이밍을 넘어 ‘지금 여기’ 라는 ‘깨달음’ 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일기일회(一機一會)> 라는 말이 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은 오직 한 번뿐이다’ 라는 뜻이다. 일본의 다도(茶道)는 이 깨달음을 근본정신으로 삼고 있다. 희랍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는 이러한 깨달음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here & now’ - ‘지금 여기’ 를 떠나 그 어떤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한다. ‘Just do it' - '지금 당장 하시오’ 라고 ……
* 기억하시라! - 찬스(chance 好機)는 다시 올 수 있지만 기회(機會)는 오직 한 번뿐이라고, 기회가 다시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찬스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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