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77) - 이를 어쩌나! 많이 가진 자의 걱정과 높은 자리에 앉은 자의 근심을 …

허섭 승인 2021.10.03 19:36 | 최종 수정 2021.10.05 12:13 의견 0
277 오진(吳鎭 1280~1354) 어부도(漁父圖) 84.7+29.7 북경 고궁박물원
오진(吳鎭, 1280~1354) - 어부도(漁父圖)

277 - 이를 어쩌나! 많이 가진 자의 걱정과 높은 자리에 앉은 자의 근심을 …

많이 지닌 사람은 많이 잃거니와 
그러므로 부유함이 가난하되 걱정 없음만 같지 못함을 알게 되고

높은 데를 걷는 사람은 빨리 넘어지니
그러므로 귀한 신분이 천한 사람의 늘 편안함만 같지 못함을 알 것이다.

  • 多藏者(다장자) : 많이 지닌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  藏은 ‘감추다, 갈무리하다’.
  • 厚亡(후망) : 많이 잃어버림. 
  • 無慮(무려) : 근심이 없음.  慮는 원래 ‘생각하다’ 의 뜻이지만 전(轉하)여 ‘근심하다, 걱정하다’ 의 뜻으로도 쓰임.   배려(配慮), 숙려(熟廬)
  • 高步者(고보자) : 높이 걷는 사람, 즉 신분이 높은 고위고관(高位高官).
  • 疾顚(질전) : 빨리 넘어짐. 높은 자리에서 있으면 상대적으로 추락(墜落)의 속도감도 더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疾은 원래 ‘병(病)’ 과 같은 뜻이지만 ‘빠르다’ 의 뜻도 있다. 
  • 질주(疾走).  顚은 원래 ‘꼭대기, 정상’ 의 뜻이나, ‘넘어지다, 떨어지다’ 의 뜻도 있다.   전말(顚末) / 전도(顚倒) 전패(顚沛)
  • 常安(상안) : 늘 편안함.

◈ 『노자(老子)』에

名與身孰親(명여신숙친), 身與貨孰多(신여화숙다), 得與亡孰病(득여망숙병). 是故甚愛必大費(시고심애필대비), 多藏必厚亡(다장필후망).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可以長久(가이장구).  - 제44장

- 명예와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절실하고, 생명과 재물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하고, 얻음과 잃음은 어느 것이 더 괴로운가? 그러므로 심히 애착하면 반드시 크게 그 대과를 치르며, 너무 많이 지니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가히 오래갈 수 있다. 

天下有道(천하유도) 却走馬以糞(각주마이분), 天下無道(천하무도) 戎馬生於郊(융마생어교).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 咎莫大於欲得(구막대어욕득), 故知足之足(고지족지족) 常足矣(상족의).  - 제46장

- 천하에 도(道)가 있어 태평성대일 때에는 병마(兵馬)도 전선에서 물러나 밭에서 거름을 주게 되고, 천하에 도가 없어 전쟁 중일 때에는 임신한 말도 병마가 되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게 된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고, 욕심 부리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그러므로 넉넉함을 넉넉함으로 알면 언제나 넉넉하다. 

◈ 팔여거사(八餘居士) 김정국(金正國 1485~1541)

조선 중종 때의 대학자 김굉필(金宏弼)의 제자인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은 벼슬이 황해도관찰사까지 올랐다. 그러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쫓겨나 고향으로 낙향을 해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 라 부르며 은거(隱居)하였다.

녹봉(祿俸)도 없던 그에게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팔여(八餘)’ 의 아호를 지은 연유를 친구가 물었더니,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하였네. 이 모두가 자연이 주는 넉넉함이 아닌가!” 

김정국의 말을 들은 친구는 ‘팔부족(八不足)’ 으로 화답하였다고 하니,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방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다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매일 맡고도 부족하고,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늘 걱정한다네. 이 모두가 인간이 갖는 욕심이 아니던가!” 

또한 탐욕스럽게 재물을 모으는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 으로 열 가지를 꼽았으니,

"그대는 살림살이가 나보다 백 배나 넉넉한데 어째서 그칠 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는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야 있기야 하지.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 통하는 창문 하나, 햇볕 쬘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 가 그것이라네. 이 열 가지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네. 늙은 날을 보내는 데 이 외에 필요한 게 뭐가 있겠나."

◉ 김정국 시 - 「진락재한거(眞樂在閑居)」

我田雖不饒 (아전수불요)  나의 밭이 비록 넓지 않아도
一飽則有餘 (일포즉유여)  내 한 배 채우기에 넉넉하고
我廬雖阨陋 (아려수액루)  나의 집이 비록 좁고 누추(陋醜)하여도
一身常晏餘 (일신상안려)  이 한 몸은 항상 편안하다네     
晴窓朝日昇 (청창조일승)  밝은 창에 아침햇살 떠오르면
依枕看古書 (의침간고서)  베개에 기대어 고서(古書)를 읽는다네
有酒吾自斟 (유주오자짐)  술이 있어 스스로 따라 마시니
榮瘁不關予 (영췌불관여)  궁달(窮達)은 정녕 나와 무관하다네
勿謂我無聊 (물위아무료)  내가 무료(無聊)하리라 생각지 말게
眞樂在閑居 (진락재한거)  진정한 즐거움은 한가한 삶에 있다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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