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지은이 : 김두식
서평자_ 임신원 (법률사무소 혜원 대표변호사, 경기도 고문변호사)[shinwon386@gmail.com]
“판검사가 되려면 단순한 법률지식뿐만 아니라 일제통치에 대한 충성심도 보여줘야 했다.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의 삶이 해방이후 다양하게 갈린 것도 흥미롭다. 거칠게 평가하자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보았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 전반적으로 그런 시대였고 어느 누구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p. 38)
재판의 과잉시대,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본다.
요즘처럼 법원의 재판이 세간의 중심에 자리 잡은 적이 있었던가? 특히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 이후부터 김경수 경남도시자의 구속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적인 쟁점들이 블랙홀처럼 법정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고, 세간의 눈과 귀는 검찰과 법원만을 바라보고 있는 형세다. 대통령을 탄핵하여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세상, 2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중형이 선고되는 세상, 가히 재판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이들 재판관들의 얘기다. 물론 지금의 재판관이 아닌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정국을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법조 3륜이라 부르는 대한민국의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의 이야기이다.
통상 일제 강점기 판사, 검사라 하면 다 아는 것처럼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순응하여, 식민체제를 옹호하였던 사람들이다. 그 협력의 과정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친일 경찰들이 독립운동가를 잡아오면 그들을 재판하여 형량을 정하는 소위 ‘재판’ 업무를 하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런 친일 판검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아끼지 않았던 변호사들도 존재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허헌, 김병로, 이인 같은 분들이다.
이 책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당시 법조인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배출되었고, 그들의 성장과정과 인맥관계, 출세를 위한 그들만의 몸부림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뇌, 한국전쟁 전후 오도 가도 못했던 그들의 신세, 마지막으로 그들의 인생 부침(浮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어린 시절 성장기부터 법률가 하나하나를 고찰하고 있다.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조선인들을 해방 이후 대한민국 법조계의 ‘제1법률가군’이라 칭한다. 이 시험은 1923-1943년까지 시행되었고, 조선인은 매해 평균 14명 내외로 합격하였다고 하니 정말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당시 인구수를 고려하더라도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는 지금과 비교하면 이 숫자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인지 알 수 있다.
‘제2법률가군’이라고 칭하는 그룹은 1922-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1군과 달리 판검사 임용은 할 수 없었고 오로지 변호사 업무만 종사할 수 있었던 이들이지만 매해 평균 7명 내외의 합격자만 나왔다고 하니 이 시험 역시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지 말해준다(고등시험 사법과 시험과 달리 법전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계속하여 일제 강점기 법원이나 검찰의 서기 경력을 바탕으로 해방 후 판검사에 임용된 그룹이 ‘제3법률가군’, 미군정시기 잠깐 시행된 사법요원양성소 출신을 ‘제4법률가군’이라 칭하며, 이들 중에서 법률가자격 취득 근거가 가장 빈약한 제3법률가군에 속해 있던 오제도 검사가 위 1, 2, 4법률가군 출신들을 일망타진한 점에 주목한다.
이들 법률가들의 흥망성쇠, 부침의 역사를 보려면 해방정국 한 복판에서 벌어졌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국회프락치 사건, 제1, 2차 법조프락치 사건, 한국전쟁 중에 일어났던 보도연맹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해방정국에서 변호사로 사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호사가 피고인의 무죄석방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데, 그게 범죄가 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저자는 이들 재판기록과 관련 신문기사 등을 샅샅이 뒤지며 이들 재판이 온갖 고문으로 점철된 조작이었으며, 소위 ‘관제 빨갱이’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의 최고 엘리트로서 해방 이후 새로 만들어질 나라의 모습을 고민하고, 새로운 국가를 향한 희망으로 들떠 있었던 시기, 그들의 소박했던 꿈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우리들의 의식에서조차 그렇게 빨리 사라져갔는지 그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법 과잉의 시대이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법률가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 마련이다. 이 책은 법률가들의 과거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겪은 고뇌와 번민을 오롯이 떠안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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