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한국의 가요계는 부산여상에 재학 중이던 17세의 정훈희가 지금까지 들어오던 좀은 칙칙하고 청승스런 트로트와는 달리 맑고 상큼하면서도 호소력이 짙은 <안개>를 발표하며 국내는 물론 각종 국제가요제를 석권하면서 또 한 명의 걸출한 스타를 맞게 됩니다.
부산의 대표적 빈민가인 아미동언덕에서 날마다 소음이 가득한 인간시장 자갈치와 하루에 두 번씩 열리는 영도다리를 보며 자란 정훈희는 당대의 대(大)가수 이미자와 배호가 주름잡는 가요계의 가장 주목 받는 신성으로 떠오르면서 이듬해인 1968년 또 하나의 대표작 <강 건너 등불>을 발표합니다.
그 낮고 잔잔하다 갑자기 폭포처럼 분출하는 윤기 흐르는 목소리로 첫사랑과 그리움이란 가장 원초적 주제를 소화시켜 당시의 순진한 젊은이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불을 지피게 됩니다. 물론 동년배인 저도 그랬고요.
<강 건너 등불>의 가사는 무슨 줄거리나 주제랄 것도 없이 매우 간단합니다. 내게 참으로 다정했던 사람이 있어 언제다로 눈 감으면 떠오르는데 밤하늘에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나는 왜 그이만을 잊지 못 하는지, 오늘도 그리워서 강변에 서니 그 사람이 강 건너 등불이 되어 눈물처럼 떠오른다는 내용입니다.
비교적 짧고 단순한 노래임에도 이 노래가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은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가수의 청순한 외모와 신비한 목소리, 폭발적인 창법에 힘입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의 영원한 업보인 첫사랑과 그리움을 그 바탕에 깔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 건너 등불>을 이해함에 있어 우리는 그냥 아주 단순하게 그 제목의 구성 요소인 <강>과 <건너>와 <등불>을 떠올리고 연결하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와 울림이 가슴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 노래의 강(江)은 넓은 들과 도시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한편 여기와 저기를 가로지르는 단절(斷絶)을 뜻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차안(此岸)이니 피안(彼岸)이니 철학적으로 강변을 비교하지만 그냥 저 건너 마주 보이는 곳, 떨어진 곳, 머나먼 곳의 의미를 가집니다.
다음 <건너>는 그 단절을 뛰어넘어 평소 동경하던 화려한 도회 또는 애타게 그리워하는 소녀가 사는 읍내이든 그 아득히 떨어진 땅을 찾아가려는 의지, 즉 연결과 소통을 뜻합니다.
그리고 <등불>은 그 모든 그리움의 상징, 평소 동경하던 번화한 도회나 목덜미가 하얗고 눈빛이 깊숙한 소녀이거나 또 다른 희망과 바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세 단어를 연결 <강 건너 등불>이라고 하면 내가 그리워하던 도회나 정인을 찾아가려는 의지 그리워하는 마음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원한 숙제이자 화두가 되는 그 첫사랑과 그리움을 신비한 목소리의 앳된 소녀가 노래했으니 마치 봄비처럼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 노래의 아름다운 구절로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아아 당신만을 잊지 못 할까
를 꼽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 산골소년이나 뒷골목의 소녀가, 또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수인(囚人)의 사랑이라도 그 사랑은 밤하늘의 별처럼 참으로 수많은 사람 중에 단 한사람, 마치 단 한순간에 절명시키고 마는 화살처럼 제 가슴에 꽂힌 절대적이고 유일한 사람을 향한 것이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이며 그 사람이며 그 눈빛이 되는 것입니다.
한사람이 누군가 또 한사람을 연모하고 그리워함은 굳이 그 유래를 따질 수가 없는 절대가치이며 그렇게 애를 태우거나 비극에 빠지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며 인간의 숙명 같은 것이라 그리움은 분석할 수도 없고 분석해도 안 되는 우리네 삶의 원석(原石)인 것입니다. 아무리 무딘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도, 아무리 암담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이 <강 건너 등불>을 한번 흥얼거리면 그 옛날 아무 그늘도 없이 맑고 순진하던 가슴과 그 사랑이 뛰어놀던 그리운 가슴언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사를 붙입니다.
강 건너 등불 / 지웅 작사, 홍현걸 작곡, 정훈희 노래
그렇게도 다정하던
그 때 그 사람
언제라도 눈 감으면
보이는 얼굴
밤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아 당신 만을
잊지 못할까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강물처럼 오랜 세월
흐르고 흘렀건만
아 당신 만을 잊지 못할까
나도 몰래 발길 따라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강 건너 등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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