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내는 사람 이야기 (14)『훈민정음』 소장자 두 사람, 간송 전형필과 배모 씨

조해훈 승인 2018.07.20 10:44 | 최종 수정 2019.08.12 16:15 의견 0

『훈민정음』 소장자 두 사람, 간송 전형필과 배익기 씨

최근에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한 자료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 해설서인 이 책을 펴낸 이유 등을 알 수 있었다.

근래 몇 년간 이 책에 대한 뉴스가 자주 보도된 기억이 떠올랐다. 무슨 이유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까? 그 내용을 대강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2008년 경북 상주에 사는 고서적 수집가인 배익기(55) 씨가 집수리 중 이 책을 발견했다고 한 방송을 통해 밝히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글자의 창제 방식과 음가, 그리고 운용방식 등을 자세히 풀이한 책이다. 한 마디로 말해 한글사용설명서인 것이다. 그동안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의 간송본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동일 판본으로 추정되는 상주본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상주본은 얼마 후 소유권 분쟁에 휘말렸다. 골동품 판매업자인 조모(2012년 사망)씨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기나긴 공방이 시작됐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 씨에게 있다고 판결했지만 배 씨는 상주본 인도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배 씨는 상주본을 헌책방에서 훔친 혐의로 기소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2014년 대법원 무혐의 판결)되기도 했다.

②배모 씨가 2017년 4‧12 국회의원 재선에 출마하면서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으로 불에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배익기 씨가 2017년 4‧12 국회의원 재선에 출마하면서 공개한 『훈민정음』 상주본. 일부가 불에 타고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배 씨가 찍어 공개한 사진이다. 

소유자인 조 씨는 사망 직전 그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국가는 실물 없이 소유권만 기증받은 것이었다. 보관자 배 씨는 국가에 내지 않았고,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훼손과 분실 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긴 침묵을 깨고 배 씨가 9년 만인 2017년에 상주본을 촬영한 것이라며 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4‧12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시 재선거를 며칠 앞두고 훈민정음 상주본을 공개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선거에서 배 씨는 당선 되지 못하였다. 그는 상주본의 가치가 1조 원이라고 주장했다. 배 씨는 언론을 통해 “10분의 1정도인 1000억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면 헌납을 하겠다”는 의중을 밝혔다.

하지만 공개된 상주본은 2015년 배 씨의 주택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탄 모습이었다. 책 하단 부분이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지만, 본문 부분은 다행히 불길을 피해 온전한 상태였다.

간송본은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이 한국어 말살 정책을 펼치던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일념에 거액으로 사들여 목숨 걸고 숨긴 것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오직 그 해례본만을 가슴속에 챙겨 부산으로 피란했다. 그 뒤 해례본을 세상에 공개해 국보가 되도록 했으며, 국어학자들에게 연구의 손길이 닿게 해 훈민정음의 문자 가치를 세상에 떨칠 수 있도록 했다. 해례본의 언어학적 가치가 치솟자 1997년에 유네스코는 간송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간송 선생은 인사동의 고서적 책방인 한남서림을 인수하면서 주인인 백두용으로부터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드시 찾아 보존해달라”는 부탁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김태준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 전신) 교수를 통해 1940년 안동의 진성 이씨 이한걸 가문으로부터 간송본을 구입한 것이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본이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본이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자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위창 오세창 선생으로부터 서화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민족문화의 중요성을 배운 간송 선생이 일제시기에 전 재산을 틀어 수집하고 보존한 우리 문화재는 국보 제73호인 금동삼존불감을 비롯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이 많다.

특히 <월하정인>‧<상춘야흥> 등 『혜원전신첩』은 간송이 일본에까지 건너가 요즘 가치로 치면 100억 원 상당의 돈을 지불하고 구입해온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변호사인 캐스비가 소장하고 있던 고려청자 등을 당시 기와집 400채 값으로 구입하였다. 해방이 되자 간송 선생은 더 이상 우리의 미술품들을 수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나라가 독립했으니 이제부터는 우리나라 사람 누가 모아도 우리 것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고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점차 엷어져가는 요즈음에 쓸데없이 간송 선생과 배 씨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한 생각이 자꾸 든다.

그렇다면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혼자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민족 최고의 정신 문화재이자, 우리민족의 자존심이다.

<시인ㆍ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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