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7)차 만드는 계절
조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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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15:23 | 최종 수정 2019.05.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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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까지 필자가 사는 화개골 목압마을의 마을회관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해 나눠 드시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런데 요즘은 마을 분들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이유는 다들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드느라 바쁘시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필자는 올해 첫 찻잎을 지난 4월 17일에 처음 땄다. 대개 곡우인 4월 20일을 전후해 차를 따고 만든다. 필자의 차는 집 뒤 목압산의 맨 위쪽 해발 500m가량에 위치한 산차여서 평지나 낮은 지대에 있는 차나무에 비해 찻잎이 올라오는 시기가 늦다. 아래쪽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찻잎을 따 제다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기도 후 첫 찻잎 채취
해마다 첫 찻잎을 딸 때는 마음이 설레기도 하지만 아주 조심스럽다. 지난 1년간 낫 한 자루만으로 억새와 가시, 잡풀 등을 제거하면서 온갖 정성을 쏟기 때문에 평상시의 마음으로는 새 잎을 만질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킨 후 잠시 기도를 한다. 마음이 순수해지고 영혼이 맑아졌다는 생각이 들면 찻잎을 딴다.
그렇게 해도 찻잎에 손을 대면 마음이 떨린다. 연록색의 여리고 순한 잎, 천천히 채취하다 보면 행복해질 뿐더러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찻잎이 아직 몇 나무에서만 조금 올라온 탓에 첫날 딴 게 200g정도이다. 사흘간 꼬박 따 모아 1kg이 되자 차솥에 불을 올려 덖었다. 차통으로 두 통이 나왔다.
지금도 하루 종일 따도 300g 정도밖에 따지 못한다. 손동작이 느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빨리 따면 차나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보다 못한 인근의 지인이 찻잎을 구해주었다. 그걸로 ‘함조차’(咸趙茶)와 발효차를 만들고 있다.
찻잎을 덖고 비빌 때도 그렇지만 다 만들어 거실에서 말릴 때도 잘 덖어지지 않는 찻잎이나 못 난 것을 수십 번도 더 가려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년 내내 차밭을 관리하여 완성된 차 한 통이 나올 때까지 적어도 100번은 손길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러하다.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데다 성격이 약간 꼼꼼한 때문인지, 깔끔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또한 나와 내 가족들, 그리고 나의 지인들이 마실 것을 생각하니 대충 만들 수 없어 그런 것이다.
사람마다 차에 대한 미각 달라
차를 만드는 사람들마다 방법이 달라 차맛이 집집마다 다르다. 차 만드는 사람들 모두 자기가 만든 차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그건 그만큼 고생을 해 만들기 때문일 게다. 또한 차를 만들지는 않지만 차를 오랫동안 많이 마신 분들도 각자의 미각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차인들도 각자 선호하는 차맛이 다르다.
그런데 가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차맛을 보는 사람 중에 무안할 만큼 혹평을 하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정작 자신은 차를 만들지 않는 사람 가운데 그런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럴 경우 차를 만든 사람이 “참고하겠다”며 넘어갈 때도 있지만 크게 말다툼을 할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볼 경우 필자의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다. 물론 대충 만들어 판매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다부(茶夫)들은 정성을 다해 만들어 자신만의 맛을 낸다. 차를 만들거나 마시는 이의 마음은 넓고 깊어야 할 것이다.
차를 덖을 때 불조절이 중요
여하튼 차를 덖을 때 불조절이 중요하다. 처음 덖을 때와 두 번, 세 번 덖는 횟수를 더하면 불의 온도도 달리한다. 불조절에 대해선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다. 차의 성질이나 솥에 들어 있는 차의 양 등에 따라 온도를 다르게 하는 것이다. 찻잎을 비비기 위해 덕석 위에 올려서도 빠르게 펴 엉키지 않도록 해야 빨리 식는다. 그건 찻잎의 연록 성분을 보존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엉켜 있거나 쌓여 있으면 자체 발효가 돼 녹차의 순수한 맛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려 탓에 요즘은 많은 제다인들이 유념기를 사용한다. 유념기에 찻잎을 비볐을 경우는 엉킨 찻잎을 풀어주는 일명 털이기계를 사용한다. 특히 발효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유념기에서 많이 비빈다.
오늘도 오전에 차산에 올라가 차를 땄지만 100g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양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1년간 내 집에 100명이 넘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방문했다. 그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돌아갈 때는 맛을 보시라며 조금씩 싸준다. 그렇게 들어가는 차의 양을 어느 정도 짐작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찻잎을 따 만들어야 한다.
<역사한문학자·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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