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옆 목압마을 뒷산 차밭을 돌보는 필자.
부엌바깥 창고에 녹차 덖는 솥을 걸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순천에 있는 대장간(?)에 주문을 해놓았다. 다 만들었느니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마을 ‘복오리 민박’의 김갑덕 사장님과 순천에 가서 차에 싣고 왔다.
대장간 사장님과 김 사장님은 예순 다섯 갑장으로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화개 녹차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대장간 사장님이 녹차 솥 주문을 받는다고 복오리 민박에서 며칠 살기도 했다고 했다. 김 사장님은 솥을 만든 재료는 비행기 만드는 재료와 같다고 했다.
김 사장님이 솥 놓는 작업을 혼자 하셨다. 시멘트 블록 등 필요한 재료를 사다 그렸다. 마침 부산에서 친구 부부가 놀러와 옆에서 많이 거들어드리지 못했다.
녹차 솥이 마침내 걸렸다. 솥을 받치는 시멘트가 다 마르려면 며칠 걸릴 것 같았다. 김 사장님은 “솥이 열을 고루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솥을 아무렇게나 걸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이곳에서는 시멘트 블록으로 받침을 만들어 그 위에 녹차 솥을 얹는 것을 ‘솥을 건다’라고 표현한다.
지난 해 3월 초에 이곳 목압마을에 들어와 4월 20일 곡우 전후부터 우전을 따 녹차를 만들었다. 녹차를 덖는 전문적인 솥이 없어 프라이팬에 덖었다. 낮 동안 딴 우전을 한 번 덖고 한 번 손바닥으로 비비는 것을 아홉 차례 반복한 후 말려 녹차를 만들었다. 그러한 과정을 이곳 사람들은 ‘구증구포’(九蒸九曝)'라고 한다. 구증구포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볕에 말린다'는 뜻인데, 여하튼 여기서는 그렇게 말을 한다.
녹차를 비빌 때 손바닥에서 나는 녹차향에 너무 감동을 받아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집안에 녹차향이 온통 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녹차 만드는 철에는 온 마을에 녹차향기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필자는 그 말에 공감을 한다. 필자가 사는 마을은 집집마다 녹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인지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맑고 마음은 여유롭다.
필자의 녹차 밭은 집 뒤 산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차산으로 부른다. 녹차를 심어놓고 관리를 않다가 지난 1년을 꼬박 차산에서 보냈다. 차나무는 산발해 있고 가시덤불과 억새 등이 우거져 있었다. 필자는 고집이 있어 예초기나 다른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낫과 손으로 정리를 다 했다. 다 했다고 하지만 지금도 낫을 들고 차산에 올라가면 하루 종일 또 일을 한다. 가시를 뿌리까지 모두 뽑았으나, 뿌리가 뻗어나가 미처 다 뽑히지 않은 가시들이 또 새로 돋아나기 때문이다.
손수 차를 덖으려고 걸어놓은 녹차솥. 사진=조해훈
무식하게(?) 일을 한 탓에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겼는지, 손가락이 늘 아리고 아파 다른 물건을 들지 못한다. 특히 아침에 눈을 뜨면 손가락이 펴지질 않아 한참 동안 아픈 걸 참고 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예초기를 사용하면 되지 왜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충고의 말씀을 해주신다. 필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낫과 손으로 직접 일을 한다.
첫째는 내가 키우는 차나무들을 직접 손으로 정성스럽게 다 만지며 웃자란 것들을 잘라주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내 가족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밭의 가시와 잡초 제거 역시 차밭 공간의 한 뼘도 놓치지 않고 뿌리째 뽑고 내 손의 온기를 전해주며, 녹차나무가 잘 자라도록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고자 하는 생각에서다.
둘째는 예초기 사용이 아직 능숙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농약을 치지 않을 뿐더러 비료도 주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녹차나무를 키우므로 가능하면 원시적으로 차밭을 관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이런 생각으로 차농사를 지으니 “너무 무식하다”, “너무 순진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어리석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내 성격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 너무 추운 탓에 평지에 있는 녹차밭들은 대부분 냉해를 입어 차나무가 벌겋게 얼어 상했다. 하지만 필자의 차밭은 산, 그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냉해를 입지 않았다. 그건 일조량 덕분일 것이다. 차밭은 비탈에 있어야 물 빠짐이 좋을뿐더러 햇살을 고루 받는다. 또한 일교차가 심할수록 차 맛이 더 좋다. 차산 아래의 화개동천 및 차밭 옆의 계곡물과 산의 운무가 찻잎으로 하여금 수분을 충분히 머금게 한다.
우전을 따는 시기인 곡우가 점점 다가오자 이곳 화개골 사람들은 “올해 우전은 다 글렀다.”며 우려를 하고 있다. 평지에서 다량으로 녹차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냉해를 입은 녹차나무의 붉은 부분을 다 걷어내고 있다.
젊어서부터 목압마을에 들어와 녹차농사를 짓고 말년을 보내는 게 꿈이었다. 요즘은 덤으로 아침마다 차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다. 차산을 방치한 사이 마을의 어느 분이 차밭의 차를 일부 자르고 고사리를 키우며 채취하였던 것이다. 필자는 차나무를 살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잘려나간 차나무 뿌리에서 찻잎이 하나라도 올라오면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다.
올해는 가능하면 녹차를 많이 만들어 주위의 여러 사람들과 나눠 먹을 생각이다.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즐거워진다.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없다지만, 소박한 필자의 소망만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