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44) 에필로그

나의 교단일기 / 이미선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이미선 승인 2022.09.25 16:59 | 최종 수정 2022.09.28 11:35 의견 0

 

부산시교육연수원 연못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가을, ‘인생이 내게 준 선물’ 마무리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마무리 글이라 생각하니 선듯 글이 써지질 않는다. 무슨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야 하나?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뭔가 부담이 되고 잘 풀리지를 않는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무심이 바라보니 길을 걷던 중년의 한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선다. 한참 그대로 서 있더니 다시 돌아간다. 무엇을 두고 온 것일까? 

“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

- 반칠환, 나를 멈추게 한 것들 중에서 -

살아오면서 나를 멈추게 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별 비판적 고민 없이 당연히 학교에 다녔던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최초로 진지하게 멈추어 선 거 같다. 선비같이 강직하고 꼿꼿하였으나 생활력은 부족했던 아버지와 살면서 우리 어머니는 온갖 장사를 하며 억척같이 우리 7남매를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하셨다. 회비도 제때 낼 수 없던 집안 형편을 보며 고민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헌신과 가족의 사랑과 지지, 나의 꿈이 더해져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

고등학교 2학년 윤리 시간, 윤리 교과를 담당하셨던 신부님은 삶의 본질과 사회문제에 대해 책을 읽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여 비판적 안목을 길러 주셨다. 생생하게 현실과 교감하는 살아있는 신부님의 수업을 받으면서 난 처음으로 삶의 본질, 철학,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가 사는 세상, 사회의 제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공을 택한 것 역시 그 신부님의 영향이 매우 컸다. 

꿈꾸던 국립 사범대학을 들어가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았던 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는 2% 부족했으나, 최루탄 날리는 대학 캠퍼스는 내가 사는 시대와 사회, 삶의 지향점과 방향성을 고민하게 했다. ‘삶은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찾기 위해 다양한 책, 사람, 종교와 만나 보았다. 그러던 중 “진리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나 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라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 “빛을 찾으러 다니지 마라. 너 자신이 빛이 되어라.” 는 석가모니의 글을 읽고 문득 깨우쳤다. 무엇이 진리인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국립사대만 졸업하면 당연히 교사가 되던 시절이었기에, 4학년이 되면서 배부른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나 역시 우연히 방송 리포터 활동을 한 경험으로 방송국으로 갈까, 유학 갈까. 대학원에 진학할까.......이런저런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영화를 보러 갔는데, 본영화 시작 전 보여준 국가 홍보 영상에서 한 섬마을 여교사의 모습을 보고 일종의 ‘부름’(calling)을 경험했다. 그 영상은 평생 이 땅의 교사로 서게 한 계기가 되었다. 

결혼은 아직 먼 이야기였던 초임 교사 시절, 테리우스 같이 나타난 스마트하고 멋진 매력남과 사랑에 빠져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결혼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너무 중요했던 그 시절 나에게 결혼이란 그 자체로 무척 힘든 생활이었는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비로소 나를 내려놓고 엄마로서의 무겁고도 중요한 책임감도 갖게 되었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고단하고 힘든 일이었지만, 다행히 나는 취미가 곧 직업인 사람이라 즐겁고 행복한 교사였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 개학을 기다리고 새 학년을 만날 때면 설렘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교직 20년 정도 되니 학교 가는 일이 나른하고 재미없어질 무렵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건 도종환 시인의 ‘우리가 다음에 선생님이 되면’이란 시였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은 파도를 가르며 이 땅의 가장 궁벽진 섬으로 갑시다...... 가서 티끌만한 거짓도 걷어내고 진실만 이야기하는 선생님이 됩시다.” 

22년간 오직 아이들과 수업하고 생활하는 것 말고는 별 다른 관심이 없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도 않았던 교육전문직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학생과 수업을 떠나 행정업무 중심의 교육청 생활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힘들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가치와 의미, 보람도 매우 컸다. 장학사, 교감, 장학관, 교장을 거치면서 참으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나이가 들고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면서, 나는 누구와도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고 어떤 문제라도 진심과 정성을 담아 협력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일종의 교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능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언제나 겸손하게 공부하며 최선을 다하여 살되 때로 포기와 체념도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거의 40년 가까이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고 부끄러워 숨고 싶은 날들도 없지 않았지만, 가슴 벅차고 즐거운 날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많이 받았고 가는 길목마다 이끌어주고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인생길이었다. 내 삶에는 무엇보다 사람이 남았다. 나를 설레게 했고 살 맛나게 했고 깨달음을 준 사람들은 물론, 원망과 한탄스럽게 만들었던 사람들 역시 나를 성장시킨 인생의 선물이 되었다. 

이 글을 연재해온 웹진 인저리타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선물이 되었다. 작년 4월 회의에서 만나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이야기 나누다가 조송현 대표의 제의로 인저리타임에 ‘인생이 내게 준 선물’이라는 나의 교단일기는 시작되었다. 퇴임 후 한가해지면 제자들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은 소망은 갖고 있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저리타임을 만나게 되어 꿈이 앞당겨지게 되었다. 교단일기 43편을 쓰는 내내 나는 행복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소중한 제자들과의 추억, 교단에서 경험한 귀한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어 글로 옮기고 탑재하는 일은 가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인저리타임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한 글쓰기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소중한 교단 이야기는 나와 제자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친구가 된 제자들, 그중에서도 ‘인생이 내게 준 선물’ 이란 교단 일기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고, 다소는 불편할 수 있는 개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넉넉하게 마음을 내어준 스물한 명의 제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형제들은 특히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귀하디귀한 선물이란 걸 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일들로 다시 힘을 내고 또 길을 걷는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또 시작될 것이기에, 
인생 1막을 정리하는 듯한 ‘인생이 내게 준 선물’ 교단일기를 일단 마무리하려 한다. 

이미선 원장의 인생 2막에 행운이 깃들 것임을 암시하는 듯 구름낀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내 인생 1막은 바쁘게 재촉하며 걸어온 것 같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2막은 넉넉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천천히 걸어가리라.
힘들면 쉬었다 가고, 막히면 돌아서 가고, 오늘 못 가면 내일 가고, 
혼자 못 가면 손잡고 같이 가리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의 길동무들과.

 

이미선 원장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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