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37) 제비꽃 이야기 수업

나의 교단일기 /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이미선 승인 2022.05.03 21:54 | 최종 수정 2022.05.06 15:10 의견 0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 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송이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 안도현의 〈제비꽃〉

제비꽃
제비꽃

제비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해마다 봄에게 제비꽃 선물을 받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서른 해가 넘도록 무심히 지나쳤던 꽃. 
안도현님의 〈제비꽃〉 이란 시(詩)를 만나 비로소 알게 된 꽃.
정채봉님의 〈제비꽃〉 이야기를 읽으면서 들여다보고 사랑하게 된 꽃.
봄마다 제비꽃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찾아와 들판 곳곳을 자줏빛으로 수놓았으나, 
내 삶이 너무 중요했던 젊은 날에는 이렇게 작은 꽃들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나 보다.
아니 그보다 허리를 낮출 줄 몰랐던 게지. 
알고 나니 괜히 미안해지는 제비꽃.

이후 제비꽃은 내 수업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새 학년 다시 마음을 다잡고 각오도 새롭게 하여 열심히 노력했지만 중간고사 결과를 받은 이즈음의 교실에는 기가 꺾이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공부에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힘도 약한 아이들, 어디 뭐 하나 내놓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얼굴에 그늘이 짙어진다. 

이럴 때 정채봉님의 동화 「제비꽃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정확한 책 내용은 다소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 수업 시간에 내가 들려준 제비꽃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자면,

'봄이 되어 팬지꽃 화분에 실려 기훈이네 집으로 온 제비꽃(오래 되어 주인공 남자아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기훈이라고 하고). 팬지 화분 속에 묻혀 온 제비꽃 떡잎이 얼굴을 내밀자 기훈이 엄마는 잡초인 줄 알고 뽑아 버리려 했지만, 기훈이가 엄마에게 나처럼 조그만 생명인데 그냥 두라고 말해 겨우 살아남는다. 제비꽃은 옆의 선인장 할아버지에게 왜 자신은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태어났냐며 하소연을 한다. 선인장은 제비꽃에게 작지만 이쁜 보라색 꽃이고, 소중하고 특별한 꽃이 필 거라며 용기를 준다. 주인공 기훈이가 아파 학교를 며칠간 결석하는 일이 생기면서, 작지만 이쁘게 피어난 제비꽃을 보고 잘 이겨내어 온 가족의 사랑을 받게 된 이야기이다.'
 

지면으로는 간단하게 소개했지만, 필자는 이 이야기를 내 경험까지 더하고 애정을 듬뿍 담아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제비꽃 이야기 수업은 생각보다 힘이 있었다. 아이들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작고 힘없던 시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에, 제비꽃 수업을 통해 자신도 언젠가 꽃피울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제비꽃 이야기가 필요한 때이다.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날이 늘면서 잃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흔히 학력저하, 학력격차를 논하지만 그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상처, 우울, 불안, 스트레스 같은 ‘코로나블루’다. 

학교를 가지 못하면서 가정폭력이 늘고, 식사도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증가하는 등 부정 지표가 상승했다. 어제 만난 후배 교감선생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 무겁다. 학교에 집단 상담을 하러 온 상담사가 상담을 마치고 하는 말이,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의 우울감, 스트레스가 훨씬 심각하다며 더 심층적인 프로그램으로 보충해 오겠다고 하더란다.

개나리꽃은 개나리꽃대로 모여서 피어 아름답고 산유화는 산유화대로 저만큼 떨어져 피어 있어 아름답다. 이른 봄, 남 먼저 우리 곁을 찾아오는 매화도 아름답고 늦은 겨울, 대부분의 꽃들이 지고 난 후 오히려 붉게 물드는 동백도 아름답다. 산유화는 산유화대로 동백꽃은 동백꽃대로 인정하고각자의 모양과 향기로 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자신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를 모르는 아이들, 자신의 역량과 가치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생명의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따뜻한 사랑의 눈길, 마음을 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다.

다시 학교 문이 활짝 열린 지금이 진짜 교육을 하기에 참 좋은 때이다. 

이미선 원장 

<교육학 박사,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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