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38) 주옥 같은 철호 아내

나의 교단일기 /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이미선 승인 2022.05.16 09:59 | 최종 수정 2022.05.18 08:43 의견 0

‘스승의 날’ 즈음하여 택배가 왔다. 책으로 보였는데 보낸 사람 이름이 낯설었다. 이쁜 그림책을 펼쳐보니 그 안에 곱게 쓴 세 장의 고운 손 편지, 읽어 내려가다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약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제자......가 아니라 그의 아내가 쓴 편지였다.

“선생님, 저 철호씨 아내 이주옥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남편을 통해 선생님 말씀을 많이 들어서 저도 마치 직접 배운 제자인 거 같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는지요? 사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 남편을 저는 정말 존경합니다. 남편은 사춘기 시절, 선생님을 만나 힘을 얻고 사랑을 많이 받아 오늘의 내가 있다고 자주 말합니다. 이렇게 멋지게 성장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철호 아내가 보내온 책

아, 제자의 아내에게서 이런 고맙고 귀한 손 편지를 받다니, 감동이었다.

지난 어린이날, 부산 친가에 오는 길에 선생님도 만나고 싶다며 철호에게 연락이 왔다. 철호네 가족이 우리 집으로 왔다. 첫아들 민채를 데리고 인사하러 온 날이 2013년이었는데, 이제 민아라는 이쁘고 총명한 딸을 더해 네 명이 찾아왔다. 민채는 어느새 중3이 되어 아빠만큼 키가 더 커졌다. 중학교 남자 아이치고는 아주 성숙하고 차분한 모습이다. 누가 봐도 모범생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부족한 부분을 말하며 걱정을 한다. 다 욕심이다. 물론 어느 부모가 이런 욕심이 없을까? 적절한 욕망은 성장과 발전의 촉매도 되니 이 정도는 나쁘지 않다. 아빠 중학생일 때와 많이 닮았다며 걱정은 내려놓으라고 말해주었다. 내 오랜 교직 경험으로 보면, 부모가 반듯하고 성실하면 아이들은 다소 돌아서라도 제 자리를 찾는다. 자식은 부모의 살아가는 뒷모습이다.

철호 가족 사진

사춘기 시절, 철호는 보통의 남자 아이들과 사뭇 달랐다. 정직하고 성실한데다 총명하기까지 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으나 성실하고 의지가 강해 날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참 뿌듯하고 대견했다. 소위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고 키우는 재미가 있는 제자였다. 반에서는 늘 우수한 성적이었으나 전교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던 중2 때, “ 이번에는 전교 1등에도 한번 도전해봐. 내 생각에 철호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거뜬히 해낼 거 같은데, 한 번 도전해보지 않을래?” 라는 나의 말에 결심하고 공부해 전교 1등을 거짓말처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후 공부에 자신감이 생겨 어려운 환경에도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도 오게 되었다는 흐뭇하고 즐거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교사, 어른의 말은 이렇게 위력이 있다. 

철호는 졸업 후에도 간혹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통을 이어온 제자다. 학부에서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약학대학원으로 진학해 약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호멜 연구소에서 post-doc을 마친 후 현재 약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종양약물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생명과학자의 서재 책 표지
생명과학자의 서재 책 표지

교수가 된 이후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2011년 이공계 생명과학자들로 구성된 ‘탐독사행’ 이라는 독서모임을 통해 꾸준히 책 읽기를 하고 있으며, 최근 ‘생명과학자의 서재’라는 책도 공동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마치 내가 쓴 책처럼 가슴 벅찼다.

책 내용 일부를 소개하자면, 

“생명현상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신비롭다. 우리의 몸은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세포들은 우리의 몸 속에서 전문적인 세포로 각기 분화하여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다른 세포들과 긴밀히 관계하고 소통함으로써 다양한 생명현상들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 세포 내 하나의 단백질 분자를 지령하는 DNA염기서열 하나만 바뀌어도 우리는 쉽게 늙어버릴 수도,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현미경을 매일 들여다보는 학자로서 현미경 속에 형성되어 있는 사회 역시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우리 인생은 젊었던 시절보다 젊지 않은 시간이 훨씬 더 길다.  ...... 나이가 들면서 농익은 완숙함으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해나가기를 바란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살다 가면 되리라. 지금 사는 세상에서 나와 같지 않은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좋은 삶을 나누고 충분히 연대하면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웃으면서 세상을 마무리해가기를. ...... 마스크 너머로 ‘안녕하세요?’라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필요한 오늘이다.”

책을 읽으면서 철호가 학자로도 시민으로도 정말 멋지게 성장했구나 싶었다.

모처럼 만난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 백신의 효과성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아이들 교육 문제, 부모와 자식의 관계 등 다양한 생각도 나누었다. 이제 선생과 학생이 아니라 서로 묻고 배우고 감탄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산다는 건 이렇듯 매력 있다.

이어령 선생님 말씀처럼,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다.”

 

 

 

 

 

 

 

 

 

<교육학 박사,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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