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itas: Goddess of Truth”
전문성도 뛰어나고 감성도 말랑말랑한 우리 연수원 남지영 연구사님이 나에게 지어준 별칭이다.
어제 아침 남 연구사님이 자신이 교사에서 전직하여 연수원 발령을 받은 지 100일이 되었는데, 너무 행복하게 근무하고 있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부족함이 많은 저를 늘 이해해주고 부족한 부분 채워주는 원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부장님을 비롯해 곳곳에서 살펴주는 동료들 덕분에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게 출근하고 근무합니다.”라고 말하며 ‘Veritas: Goddess of Truth’가 적힌 쪽지를 건네어 준다. “원장님을 보면 진실한 빛으로서의 여신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Veritas로 지었어요.”
이 말을 듣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벅찬 감동을 주는 사람과 근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다. 더 바라면 욕심이다.
Veritas라! 과한 별칭이긴 하지만 교단에 서면서 아이들에게 그런 교사이고는 싶었다. 제자들을 기르다보면 ‘야, 얘는 정말 멋지구나. 우리 사위나 며느리로 삼으면 좋겠다.’ 싶은 아이도 있다. 병수가 그랬다. 그래도 난 한 번도 제자를 우리 집 아들, 딸과 연결해 주지는 않았다. 결혼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병수는 고등학교 시절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잇고 있는 제자이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 고등학교는 오직 대학 진학 성적에 주력하고 있었다. 질문과 토론도 없고 가만히 앉아서 교사의 설명을 듣고 교과서 진도 나가고 문제지 푸는 적막할 만큼 조용한 교실. 그러나 나의 고등학교 2학년 때 윤리 선생님이 그러셨듯이, 나 역시 윤리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숨통을 틔우고 질문과 토론이 살아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입시의 압박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고도 싶었다. 입시에 별 중요하지도 않은 윤리 수업을 위해 교과서 외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 조용한 수업 시간에 서태지같은 가수의 노래를 들려준다는 것, 윤리 과제수행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찍고 복도 곳곳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도 있었지만 나는 굳건하게 진행했다.
“선생님 수업에는 우리는 살아있는 거 같았어요.”
“왜 사는가? 같은 본질도 고민하고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 현실적 고민도 했어요.” “주제를 두고 심도 있게 토론하면서 새롭게 깨닫기도 했어요.”
“내 진로도 고민해보고, 대학이나 학과의 의미도 찾았어요.”
“멋지게 발표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자극도 받았어요.”
이러한 아이들의 반응 덕에 우리의 윤리 수업은 즐겁고 신이 났다.
지금도 제자들을 만나면 그 시절 수업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나는 교과서를 재구성해서 모둠별로 주제를 정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주로 했다. ‘환경과 윤리’라는 과제를 맡은 병수네 모둠은 환경오염이 심한 천(川)을 직접 찾아가 찍고 기자처럼 고발하는 형식으로 영상을 보여주며 발표를 했다. 아이들은 교사에게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또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수업을 통해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수업을 스스로 설계하고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더 크게 성장한다. 병수네 모둠은 교과서를 벗어나 실제 삶의 현장에서 조사하고 탐구하면서 살아있는 수업이 되었다. 준비를 한 병수 모둠도 그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도 함께 성장하는 수업으로 아이들은 기억하고 지금도 이야기를 한다. 단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살아있는 수업은 자신의 삶으로 연결된다.
병수는 국제고 시절을 매우 답답해했고 전학을 갈까 생각도 했었다. 중학교 때는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영어 말하기 대회에도 나갔던 경험이 있어 자신 있는 과목이었는데, 국제고로 오니 모국어처럼 영어를 워낙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 괜히 주눅이 들어 입이 잘 안 떨어지더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런 고등학교 시절 내 수업 시간이 위안이었고 힘이 되었단다. 특히 ‘환경과 윤리’ 프로젝트 수업 발표 이후 자신의 진로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길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병수는 서울로 진학하기가 부담스러워 고민이 많았는데, 마침 일본 오이타현 벳부에 새로 개교하는 아시아태평양(APU)대학 정보를 찾게 되었다.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으면서 국제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병수는 그 대학으로 진학했다. 국제 상호 이해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미래 형태를 꿈꾸며 설립된 학교라 우리나라 유학생이 제일 많고 인도네시아, 중국 학생들도 많은 학교다.
수업도 영어와 일본어로 진행되어 자연히 영어, 일어에 능통하게 되었고, 경영학을 전공하여 졸업 후 동경의 Citi 은행에 취업하게 되었다. 이후 미국 대표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동경지사를 거쳐 영국 대형은행인 바클레이스(Barclays) 동경지사에 근무하며, 결혼도 하고 터전도 잡아 누구보다 국제적 인재로 살게 되었다.
그러던 병수가 지난 5월 말,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둘도 없는 친구 성환이 덕분에. 서울에서 10여 년 전 부산으로 돌아와 먼저 자리를 잡은 성환이와 뜻이 맞아 고민 끝에 일본 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개천에서 난 용(龍)이 개천으로 돌아온 것 같아 뿌듯하다. 이런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병수는 일본에서 충분한 연봉을 받고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제나 부산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다. 간혹 일본에서 휴가 내어 부산에 오면 마땅한 일자리만 있으면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이 있는 부산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성환이와 병수가 마음 모아 사업을 잘해나가기를 응원하고 기도하는 일이다.
돌아와 주어서 고맙다, 병수야. 길을 열어준 성환이도 참 고맙다.
좋은 일, 고마운 사람만 떠올리며 나도 위로받고 싶은 시절이라.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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