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3월이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아이들을 맞는 기대로 학교의 3월은 ‘설렘’이다.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올 한 해 잘 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기도 하다. 3월은 참 느리고 더디게 흐른다. 아이들도 교사도 학부모도 낯설고 업무처리도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같은 학교라도 3월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지나는데, 새로운 근무지로 이동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교사 시절은 대한민국 어딜 가나 눈을 반짝이고 진정성이 통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두려움보다 설렘이 컸다. 아이들은 여전히 순수하기에 교사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이내 찐팬들이 된다.
장학사를 거쳐 교감이 된 2012년 3월은,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자리가 아닌 학교경영자로서의 무게가 더 실리기 때문이다. 잘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가진, 매우 우수하고 똑똑한 교사 집단인 그들과 나는 잘 어울리며 좋은 선배, 교단의 모델링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니 정성을 다하면 통할 거야.’ 겸손한 마음으로 3월을 맞았다.
교감에게도 3월의 시계는 참 느리게 갔다. 3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교정 곳곳을 살펴보는 여유를 가졌는데, 식당 위쪽 건물 뜨락에 홍매화가 고고하게 피어 있었다. 높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보다 여유가 없어 그동안은 내 눈에 띄지 않았던 매화. 그런데 한 남학생이 매화나무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들 그냥 지나치는 매화나무를 유심히 보고 사진을 찍는 그 남학생이 궁금해 말을 걸어 보았다.
“매화 참 이쁘지?”
“네, 너무 아름다워요.”
“몇 학년?”
“아, 네 저는 고3입니다.”
“으잉? 고3이라고? 이야, 고3이 이런 여유를 가지고 산다는 건 대단한데? 이름이 뭐예요?”
“저는 신용욱입니다.”
“그렇구나. 반가웠어, 용욱아.”
그렇게 용욱이와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간혹 복도에서 마주치면 용욱이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용욱이예요.”하며 온몸으로 인사를 했다. 만날 때마다 기분이 유쾌해졌다.
입시가 가까운 어느 날, 용욱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저 원서 넣었어요. 내일 면접 보러 가요.”
“그래? 어느 대학에 원서를 쓴 거야? 전공은 뭘 하려고?”
“제가 원하는 대학 세 군데 넣었어요. 시각디자인 전공하려구요. 행운을 빌어주세요.”
“그래 기도할게. 잘 다녀와라. 시각디자인이라니 나는 잘 모르긴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동영상 파일 몇 개 메일로 보내줄테니 서울 가는 기차에서 심심하면 찾아봐. 혹 면접 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는 며칠 후 다시 찾아왔다.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어머 합격했구나. 축하해”
“아니요, 저 그때 면접 본 첫 번째 학교는 아쉽지만 떨어졌어요.”
“그래? 아이쿠! 난 표정이 좋아서 합격한 줄 알았네, 미안.”
“아니에요. 제가 세 군데 넣었는데 한 군데 정도는 저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요?”
“당연하지. 용욱이를 못 알아보면 그 대학이 손해지. 잘 될 거야. 화이팅!”
입시가 끝나도 용욱이는 분주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인데 입시 준비로 미루어 두었던 나눔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줌바댄스 동아리들과 나눔 행사를 기획해 아프리카 돕기 기금을 조성하는 행사였다. 원어민 선생님에게 줌바댄스를 배워 용욱이는 줌바댄스 강사를 할 정도의 실력도 갖추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용욱이가 생일 초대 카드를 들고 왔다.
“선생님, 제 생일에 초대합니다. 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도움을 주고 제 생애 영향을 미친 서른 명만 초대합니다. 오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용욱이가 만든 생일 카드를 받고는
‘‘용욱이는 정말 창의적 인재구나.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어. 대단해.”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용욱이는 원하던 홍익대 미대로 진학했는데, 그는 대학 생활도 다양하고 신나게 했다. 줌바댄스 강사를 하며 번 돈으로 방학이면 호주, 일본, 스페인, 프랑스 등지로 여행을 하며 체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했다. 여행하면서도 그 나라의 사람들과 거리에서 줌바댄스 공연을 하는 등 낯선 나라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쉽게 관계를 맺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삶의 지평을 넓혀갔다.
용욱이는 주체성이 강하다. 호기심과 열정도 넘친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도 용기 있게 도전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 있다. 소위 미래역량을 고루 갖춘 인재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그는 스튜디오 운영, 요가 및 줌바 강사 등 이런저런 사업 아이템으로 돈도 벌고 새롭게 도전하고 실험하고 있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졸업 후 서울을 떠나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지역의 인재로 터전을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창의성과 열정, 용기와 도전, 귀향에 큰 박수를 보낸다.
꽃이 핀다,
하나둘씩.
가지를 만져보니 꿈틀꿈틀.
나무에 귀 기울여보니
호흡이 가쁘다.
온 힘을 다해 꽃송이를 만들어낸다.
참 고맙다.
- 김양수 화백의 〈매화〉 -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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