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32) - “선생님” 부르고는 울던 재영이 

나의 교단일기 /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이미선 승인 2022.02.08 23:24 | 최종 수정 2022.02.10 11:18 의견 0

새해가 또 한 번 찾아와 온 누리를 고루고루 비추었다. 음력 새해를 민족의 큰 명절로 맞이하는 우리는 새해를 또 한 번 맞는 행운이 있다. 미처 못 털어낸 일들 다시 덜어내고 반성할 기회를 또 받는 행운. ^^

명절에는 평소 찾아뵙지 못한 고마운 분들께 인사를 드린다. 코로나를 핑계 삼으며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가볍게 문자를 보내는 게 대부분이지만, 여든이 넘은 고령의 두 분 은사님께는 찾아뵙거나 과일이라도 꼭 챙겨드리려 노력한다. 한때 세상을 빛나게 하셨던 분들이지만, 이제 세월 앞에 기력도 약해지고 세상적으로 별 힘도 없으시지만, 그분들 가르침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일을 하다 짜증이 나거나 속이 상할 때면 은사님께 전화를 드리거나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그분들은 나의 말에 충분히 공감부터 해 주시고는 차분하게 당신의 생각을 전해 주신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스스로 깨닫는다. ‘내 욕심이 앞섰구나, 그래서 판단이 흐려졌구나.’ 이런 소중한 만남을 통해 나는 성장해왔다. 

재영이네 가족

나에게도 명절이면 잊지 않고 안부를 묻고 찾아오는 고마운 제자들이 있다. 지지난 명절에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고 가슴이 먹먹한 일이 있었다.

“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그래, 철호야 명절이라 부산 왔구나.”
“네 선생님, 어제 왔습니다. 잠시만요, 선생님 보고 싶어 하는 놈 전화 바꿔 드릴게요.”
“선생님, 저...... 재영입니다. 부곡중학교 때 2학년 9반 했던 재영이요. 기억나십니까?” 
“아, 재영아 정말 오랫만이네. 내가 우리 재영이를 잊을 리가 있나, 당연히 기억하지.”

“아, 선생님~~~ ”

하고는 말을 못 잇고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선생님 너무 죄송합니다. 10년 넘게 소식도 못드리고..... 용서하십시오.”
“무슨 소리, 지금이라도 소식 들으니 반갑고 고맙다. 그래, 잘 지냈지?”
“선생님, 핑계지만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고, 거기다 중국 가서 3년 근무하고 그러다보니.... 연락이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고마움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
“아 그랬구나, 대단하다. 아이를 셋이나 두었어? 축하해, 애국자네 정말.”
“선생님, 저도 마흔이 훌쩍 넘었고 회사 가면 모두가 ‘부장님, 이거 이러면 되겠습니까? 이건 어떻게 결정할까요?’ 하면서 제 의견에 따라 업무가 진행되는 꽤나 영향력 있고 잘나가는 대기업 임원인데......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니 중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리고 왜 이리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납니까?”
“그렇구나. 영광이네. 어디에 근무하는데?”
“0 0 기업에요. 거기서 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우와, 정말? 거기 임원이면 최고의 자리인데 역시 재영이네. 그보다 세 아이의 아빠라는 게 더 대단하다.”
“선생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인사드릴게요.”
“명절 피곤이 다 날아가네. 잘 살아주어 고맙고 잊지 않고 연락해줘서 행복하다.”

재영이의 사랑스런 세 아이

전화를 끊고 한동안 감동에 젖어 있었다. 교사의 자리..... 참으로 복된 영광의 자리, 감사의 자리. 이후로는 코로나로 만나지는 못해도 문자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선생님, 우리 아이들 사진 보내드립니다. 양쪽 끝 둘째 셋째가 쌍둥이입니다. 장남은 초등 2학년이고, 쌍둥이는 6살입니다. 선생님이 저희를 가르치신 것처럼 저도 아이들 잘 키우겠습니다.” 
“훌륭하다. 아빠를 닮아 똑똑하고 인간성 좋은 아이들로 자랄거야. 응원할게.”

택배 아저씨에게 보내는 재영이 자녀들의 그림. 착한 인성이 묻어난다 

인저리타임에 싣고 있는 이 교단일기는 중요한 소통의 매개가 되고 있다. 인저리타임도 참 고맙다.

이번 연휴처럼 모처럼 혼자만의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면 나는 읽고 싶었던 책을 펴거나, 보고 싶었던 영상을 찾아보며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이런 시간이 나는 그렇게 좋다. 6년째 해오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읽고 같이 토론했던 ‘포르투칼의 높은 산’ 책을 다시 펴서는 줄 그어두었던 부분을 음미해 본다. 

“나는 낮은 자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들, 
인간은 잊었지만 신은 잊지 않은 영혼들을 섬기고 싶다.
고통에 시달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지만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뭔가를 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이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도 뭔가를 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생각해 왔던 일 미적거리지 말고 지금 바로 실행하자.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도 하고 감사하다는 문자라도 보내자. 그리웠던 사람들 찾아가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손잡아보자. 오늘 내 앞의 사람에게 정성을 쏟아보자.

이런 작은 실천이 이어지면 어느 순간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는 사람이 될 터이니.

 

이미선 원장
이미선 원장

◇ 이미선 원장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현 부산시교육연수원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