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29) - 바람만이 아는 대답

나의 교단일기 /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이미선 승인 2022.01.05 18:25 | 최종 수정 2022.01.07 23:22 의견 0
2022년 새해가 밝았다.
2022년 새해가 부산 해운대 바다에 솟아 오른다. [사진 = 이미선]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는 ‘테스형’ 가사처럼 누군가는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더라도 매일 해가 뜨고 진다. 검은 호랑이의 해도 어김없이 떠 올랐다.

새해 인사 중에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서 달려보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그 힘찬 기운으로 임인년 새해를 맞고 싶다. 도종환님의 시(詩)처럼 “.....절망하게 하는 것들도 두려워하지만은 않기로, 꼼짝 않는 저 절벽에 강한 웃음 하나는 던져두기로, 산맥 앞에서도 바람 앞에서도 끝내 멈추지 않기로.”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출발은 했지만, 자신은 없다. 세상 몰랐던 젊은 날에는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가상한 용기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을 보면 참견도 해가며 살았다. 참 주제넘는 일이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삶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 역시 많다는 것, 있는 힘을 다해도 결과는 그에 이르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말하자면 주제와 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고 포기나 체념도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빨라지고 있다.

“아니면 말고.^^” 이런 깨달음은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하다.

턱없는 자신감으로 충천했던 젊은 날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Blowing In The Wind'를 부르는 밥 딜런. 1963년 3월. [밥 딜런 유튜브]

2022년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밥 딜런’의 노래처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일 수 있다.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수인 ‘밥 딜런’으로 발표가 났을 때, 가수인 그가 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는지 궁금해 그의 삶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는 가수 그 이상이었고 노벨상을 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의 노래는 시대정신이었고, 불의에 항거한 살아있는 아티스트이자 저항 시인이었다. 록의 40년 역사에서는 ‘전설의 빅4’ 중 한 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틀스는 록의 예술적 지반을 확대했고, 스톤즈는 록에 헌신하며 형식미를 완성했고, 엘비스는 록의 정체성을 부여했다고들 한다. 딜런의 차별화는 외양이 아니라 바로 ‘내면’이다. 그의 노랫말은 시대에 대한 메시지다. 'Blowing in the wind'가 대표적이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널리 불린 반전평화(反戰平和)의 노래이며, 세계적인 음악가로 추앙받게 한 메시지임을 알게 되어 요며칠 매일 차에서 들으며 출근한다.

딜런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외양이 아니라 내면으로 다가서고 싶었고, 시대를 읽고 실천하는 교사, 전문직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얼마나 긴 길을 걸어야 인간이 인간으로 불려질 수 있나.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야 하얀 비둘기는 모래밭에서 잠들 수 있나.
얼마나 많은 전쟁터를 날아야 포탄은 영원히 없어지나.
얼마나 많이 올려다 봐야 인간이 하늘을 볼 수 있나.
얼마나 많이 더 죽어야 인간이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나.
그 대답은, 친구여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마스크는 벗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밤늦도록 어깨동무하며 노래 부르고 침 튀겨가며 토론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아이들과 얼굴 맞대고 수업하고 뛰어놀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몇백명이 빽빽하게 앉아 연수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사람과 다른 생명체가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딜런의 노래처럼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지도......

2021년 12월 31일의 해와 2022년 1월 1일의 해가 무엇이 크게 다를까? 그날이 그날이고 그해(太陽)가 그해이건만, 제야의 종을 울리고 해돋이를 보러 가고 소원을 빈다고 괜한 유난을 떤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물론 매일 동(東)에서 해가 뜨고 서(西)로 해가 진다. 슬픔이 큰 날이나 웃을 일이 많은 날이나 똑같이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한편 다행이고 위로도 된다. 정확한 답은 바람만이 알 수 있을지라도 최소한 아무 의미 없는 날은 안되도록 살아야겠다고 새해를 맞아 다시 다짐해 본다.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지

전혜린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이야기한다.

“이루어짐 같은 게 무슨 상관있으리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의 선물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 본다.”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거, 꿈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음이 우리가 가진 ‘아름다운 특권’이다.

우리 아이들은 꿈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교사는 이제 지식을 가르치는 teaching보다 아이들 개개인이 타고난 적성과 능력을 찾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삶을 고칭(coaching)해주는 코디네이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능력을 키워주기에 앞서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는 철학이 우선임은 물론이다. 

여전히 아이들이 우리의 꿈이고 희망이고 내일이다. 교단에서 내가 만난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함께 웃고 울고 고민하며 이 길을 걸어온 우리 선배님들, 멘토님, 동료들, 후배님들께도 감사 인사 올리며 겸허한 마음으로 축복의 임인년을 살아가고 싶다.

답을 알고 있는 바람에게 귀 기울이며.

 

◇ 이미선 원장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현 부산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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