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26) - 내 인생 노다지였던 시절에 만난 성균이

나의 교단일기 /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장

이미선 승인 2021.12.10 15:35 | 최종 수정 2022.01.05 19:06 의견 0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중략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중에서 -

프랑스 칼레 해변
프랑스 에트레타 해변

맞다. 그 일, 그 사람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알아보지 못하고 놓친 노다지도 있겠지만, 다행히 알아채고 귀하게 간직한 노다지가 더 많다. 내 직업인 교단이 나의 노다지였고 사랑하는 가족이, 삶의 모델이 된 멘토와 친구, 이제는 생애 동지가 된 제자들이 바로 내게는 노다지였다. 1998년은 큰 광을 발견하고 어느 해보다 노다지를 많이 캐낸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내가 놓치지 않고 알아본 노다지 성균이.

“포도밭에서 일하더라도......”

언제든 만나도 즐거움이 되는 사람, 잠시 통화만 해도 웃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성균이가 그렇다. 타고난 유머 감각, 솔직하지만 결코 도를 넘지 않는 표현, 다르게 생각하는 기발함, 넉넉하게 봐주는 여유, 어려운 상황도 부드럽게 풀어내는 재치 때문일 거다.

고 3 시절, 성균이는 진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불어가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싶다고. 그런데 선생님들이나 주위 분들이 다들 불어 전공해서 뭘 먹고 살아갈 거냐며 우려를 표한다며 내 의견을 물었다.

“불어를 왜 전공하고 싶어? 얼마나 좋은데? 취업을 못 한다 해도?” 이렇게 질문했다. 그랬더니 성균이는,

“저는 불어로 말하는 게 너무 좋아요. 설혹 취업이 쉽지 않다고 해도 공부하고 싶어요. 뭐 정 어려우면 프랑스 포도밭에 가서 일하면 되지요.”

“그러면 답은 나왔네. 뭘 망설여? 하면 되지. 그렇게나 좋아하고 그 정도 각오라면 해도 되겠다. 나는 찬성. 응원할게.”

“오~~역쉬! 선생님, 감사합니다.”

성균이는 희망대로 대학으로 진학하여 불어를 전공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일기도 불어로 쓰고, 통화할 때도 불어로 이야기하고, 학기 중에는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살다시피 하고, 방학만 되면 배낭을 메고 불어를 사용하는 나라면 어디든지 여행하며 경험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갔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 나라에서 겪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듣는 것도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꿈을 이루었어요.”

이후 대학원으로 진학해서 공부를 계속하며 부지런히 역량을 키우더니 어느 날,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취직했어요.”

“어머, 그래? 정말 잘했다. 어디에 취직을 한 거야?”

“외교부에요.”

“정말? 어떻게?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외교부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3등 서기관입니다. 특채로 뽑혔어요. 선생님 응원에 힘입어 제가 좋아하는 불어를 전공하고 불어를 사용하는 나라마다 다니며 경험을 쌓다 보니 이렇게 좋은 결과로 나타난 거 같아요. 진짜 감사한 일입니다. 외교부에서 일하게 되면 제가 좋아하는 불어권 나라에 마음껏 다니며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아 행복합니다.”

성균이와 함께 찾은 벨기에의 어느 숲
성균이와 함께 찾은 벨기에의 어느 숲

예상한 대로 성균이는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며 신명나게 일을 하고 있다. 성균이가 ‘벨기에’에서 근무하던 때 나는 방학을 맞아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우리 가족은 성균이가 있는 벨기에를 잠시 들러 이웃에 위치한 네널란드, 독일, 프랑스를 다녀올 계획이었다. 브뤼셀 국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외교부 직원인 성균이가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와 국빈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당시는 성균이가 결혼 전이라 혼자 살고 있었는데 집이 꽤 넓어서 우리 가족도 마음 편히 여장을 풀었다. 저녁에는 삼겹살에 와인으로 피로를 풀고 아침에는 모닝빵을 사와서 커피와 함께 현지식으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균이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휴가를 특별히 내었다며 우리와 함께 프랑스 여행에 동행했다. 성균이는 유창한 불어 실력과 경험으로 외국 여행객들이 거의 없는 프랑스다운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어서 계획보다 오래 머물며 충분히 즐기고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그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되었고 지금도 늘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성균이와 아빠를 꼭 빼닮은 딸 아인이
성균이와 아빠를 꼭 빼닮은 딸 아인이

벨기에 근무를 끝내고는 열악한 콩고 민주공화국에 가서 근무하고, 스위스 근무를 거쳐, 지금은 그렇게나 좋아하고 가고 싶어하던 프랑스에 가서 2년간 연수 중이다. 지금도 간혹 전화를 해서는 어제 만난 듯 일상을 이야기한다. 성균이와의 통화는 언제나 즐겁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지혜로워 애정을 담은 충고도 한다. 이런 성장이 나는 참 좋다.

이미 놓친 노다지에는 미련을 버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과 시간이 나의 노다지이고 내 인생의 꽃봉오리라 생각하며 산다.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일지라도 그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노다지를 발견할 수가 없을 것이고, 발견하더라도 내가 열심히 땀 흘리지 않으면 나의 노다지가 될 수는 없으니.

내 생애를 통해 다가온 노다지였던 순간들, 사람들......을 떠 올리니 이 한 해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미선 원장
이미선 원장

◇ 이미선 원장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현 부산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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