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가 되어 만난 제자
공립학교 교사들은 통상 4년마다 정기전보를 한다. 이렇게 이동이 잦은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이들을 마음 속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학교에 애정을 갖고 일하기에는 시간이 짧고, 출근 거리가 먼 교사의 사정을 배려하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교사들이 어울려 교육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순환근무를 하는 것도 좋은 점은 있다. 이렇게 자주 이동을 하다보면 새로운 환경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처음 한 달 정도는 교사도 아이들도 낯설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40대 초반 새로 옮겨간 학교에서 3월이 시작된 첫날, 일과가 끝나고 창밖을 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체육 선생님인 듯 추리닝을 입은 젊고 발랄한 여선생님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음...... 글쎄,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후후 네, 온천중 다닐 때 제자 이현주라고 합니다. 학창 시절에 저는 조용하고 특별하게 드러난 아이가 아니라서 선생님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선생님은 하나도 안 변해서 금방 알아봤어요.^^”
“정말? 그럼 교사가 된거야? 정식으로?”
“네,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첫 발령 받아 왔어요. 여기서 선생님을 만나다니 꿈만 같아요. 선생님은 인기가 워낙 많아 다른 애들도 다 그랬지만 저도 선생님 엄청 좋아했어요. 존경하던 은사님을 교단에서 만나다니 너무 놀랍고 감격스러워요.
제가 진짜 운이 좋나 봐요. 하하하”
현주 말대로 조용한 아이여서였던지 첫눈에 못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더듬어 보아도 기억도 잘 나지 않아 미안했다. 그래도 반갑게 찾아와 인사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다행히 나는 육당처럼 살지는 않았나 보다. 어려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교사가 되어 찾아오니 더욱 고맙고, 같은 학교에서 동료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리도 바로 근처에 앉게 되어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본 옆 선생님이 나에게 살짝 “교사로 같이 근무하게 되니 불편하지 않아요? 나는 제자가 같은 학교 교사로 근무하면 왠지 어색하고 불편할 거 같아요.”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현주와 나는 의기투합해 신나게 아이들 이야기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며 동지가 되었다. 현주의 솔직하고 밝은 성격과 개방적인 내 성격이 잘 맞은 덕분이리라.
* 훌륭한 교사로 성장하는 현주를 지켜보는 즐거움
현주랑 나랑은 생각과 철학도 비슷해 자율연수도 같이 신청해 참여하게 되었다. 부산교육연구소가 주관하는 ‘삶의 철학과 교육’ 이란 내용의 연수였는데, 강사는 인도철학을 하는 이거룡 교수님이었다. 8주간 주말마다 삶의 철학을 공부하며 우리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 연수에 참여한 사람 중 뜻이 모아진 교사들끼리 방학 때 10일간 인도여행을 갔었는데 현주랑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현주는 마치 전생에 인도여인이었던 듯 인도에서도 훨훨 날아다녔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지치지 않고 무엇이든 배우려 노력하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서 실행하는 현주.
앞으로 참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내가 그랬듯 첫 발령지에서 현주는 사춘기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했다.
현주는 “제가 학생 때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교사가 된 지금도 여전히 샘은 참 존경스러워요. 내 앞에서는 그렇게 반항적인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만 오면 순한 양 같아요. 선생님 앞에 서 있는 저 아이가 정말 내가 아는 그 애가 맞나, 전혀 다른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 거예요? 좀 가르쳐 주세요. 하기야 가르쳐 주신다고 그대로 되지도 않겠지만요. ㅠㅠ”
이러는 현주에게 “그래, 참 힘들지” 공감도 해주면서, 원래 철없는 남자아이들은 젊은 초임 선생님이 그저 좋아서 짓궂게 장난치고 괜히 그러는 거라며 선배 교사로서의 경험도 들려주며 다독여주기도 하며 우리는 함께 성장해 나갔다.
현주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어느새 아이를 셋이나 낳아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현재, 남편도 현주도 둘 다 부산의 혁신학교인 ‘부산다행복학교’에서 리더교사가 되어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동료들과 같이 배우고 성장하며 열정적으로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둘 다 훌륭한 이 땅의 교사로 살고 있어 참으로 대견하고 보기 좋다.
얼마 전 보내온 현주의 문자로 이 가을을 연다.
“선생님, 제 폰에 선생님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적혀 있어요. 교직생활을 하면서 막막하거나 힘겨울 때 ‘우리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요.
교사로서 제 삶의 시작이 선생님입니다. 교사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선생님이 걸어가신 길을 보면서 제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오늘의 교사 이현주가 있게 하신 선생님은, 늘 저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이고 비빌 수 있는 언덕이고 기댈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존재이십니다.”
그래, 기댈 수 있는 넉넉한 느티나무 좋다. 그렇게 살아가 보자.
◇ 이미선 원장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현 부산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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