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19) - 소신과 철학

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이미선 승인 2021.08.28 09:46 | 최종 수정 2021.08.28 10:25 의견 0
오스트리아 비엔나 인근 포도원 [픽사베이]
오스트리아 비엔나 인근 포도원 [픽사베이]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얻으십시오.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 오래 고독하게 살아........”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

가을바람이 볼에 닿으면 왜 이리 기분이 좋아질까. 저절로 시(詩)도 떠오르고 노래도 흥얼거리게 된다. 가을이 오면 저절로 읊게 되는 시(詩)는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이다.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이 시(詩)가 너무 좋아 그때 외운 싯구를 기억하고 있는데, 이후 찾아보니 해석이 사람마다 다르다. 아무튼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다. 코로나가 4단계까지 이어지면서 더욱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자연(自然)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하듯 입추, 말복이 지나면서 아침, 저녁 바람은 가을이 문 앞까지 와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낮 햇살도 여름의 쨍쨍한 빛은 확연히 꺾였다. 가는 여름에게는 왠지 미안한 느낌이 든다. 가을이 이렇게나 기다려지니.^^

여름 강렬한 햇살은 뫼르소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생각도 분산시키는지 무얼 해도 집중이 잘되지 않고 의욕도 쉽게 일어나질 않는다. 한여름을 지나다 보면 열대지역 사람들 삶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차가운 커피, 물, 얼음을 연거푸 찾는 나를 보면서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이리 오래 감염병이 끝나지 않으며, 이상 기후 변화가 생겼는지 알면서도 잠시의 더위도 참지 못해 에어컨을 켜고 불편함이 싫어 짧은 거리도 자동차를 타며 1회용 컵과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횟수도 증가하는 일상. 이러면서 내 속의 모순을 발견한다. 편안함에 자리를 내어주며 타협하거나 쉽게 흔들리는 나, 생활 속 작은 실천 하나 꾸준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내 소신과 철학의 가벼움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인생 항로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거센 파도를 만나게 된다

우리 삶은 고난의 망망대해를 헤쳐가는 것과 같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이 보면 작고 초라하지만 버릴 수 없는 아주 소중한 돛단배가 있다. 그 작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 중이다. 험한 바다를 헤쳐가는 중에 내 방향과는 다르지만 크고 안전한 배를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로 가면 어떠랴, 그냥 편하게 올라타면 되는 거지, 일단 살고 보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내 작은 돛단배를 버리고 큰 배에 옮겨탈 것인가? 아니면 힘들지만 내 소중한 작은 배와 함께 험한 파도를 헤치고 끝내 내가 꿈꾸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

일제 강점기 육당 최남선이 변절한 후 길거리에서 만해 한용운을 만났을 때, 육당을 외면하는 만해에게 “선생님 저 육당입니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이에 만해는 “내가 알고 있던 육당은 이미 죽었다.”고 침을 뱉으며 돌아섰다고 한다.

과연 내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살았더라면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며 살 수 있었을까? 나 역시 내 안위와 가족을 생각해 작은 배를 버리고 안전하고 큰 배에 옮겨탔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변절을 나무랄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변절도 괜찮다? 그건 아니다. 적어도 부끄러워할 줄은 알아야 하고 참회해야 하며 칭송까지 받는 일은 아니어야 하겠지.

고등학교 시절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단원이 있었다. 국어 선생님께서 그 단원을 수업하시다가 졸고 있는 내 짝을 발견하고 일으켜 세우시며, “자네는 어떻게 살 생각인고?” 이렇게 물으셨다. 졸고 있던 짝은 마치 처음부터 수업에 집중한 듯 놀랍게, “네, 저는 교활한 천재로 사느니 차라리 어리석은 바보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해 우리 모두 “우와!”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말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문득문득 얼굴을 내민다. 그래, 교활한 천재보다 어리석을 바보가 차라리 낫지.

끝나지 않는 코로나 시대, 덥고 지루한 여름을 지나며 힘들고 지치긴 해도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도 되었다. ‘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이라는 책에서 도나휴는 “사막을 지나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마라. 반드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 주어야 한다. 쉬면서 그동안 걸어온 길을 조용히 돌아보고, 잘못 걸어왔다면 지금이라도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전하고 있다.

함께가는 이들이 있어 두렵지 않은 인생길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일이 뜻대로 안되고, 시간과 마음이 급하다 보면 쉬어야 할 지점을 놓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몸도 마음도 망가질 가능성이 크고 어리석음을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잘못 걸어온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어딘데, 내가 이 길을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고 시간을 들였는데... 등의 이유로 잘못된 길인지 알면서도 접지 못하고 계속 그 길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잘못된 걸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거나 수정해야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여름의 막바지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과 일상도 다시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다시 실천하는 것이 좋아하는 가을을 맞는 도리이다. 다행한 일은 내 주위에는 안락하고 큰 배의 유혹을 마다하고 작고 초라하더라도 자신의 배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가을도 그들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미선 소장

◇ 이미선 소장 :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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