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9) “그 추억마저 춤추게 하고 떠나보내면, 진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진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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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8 10:37 | 최종 수정 2021.07.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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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마저 춤추게 하고 떠나보내면, 진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얼마 전 ‘영화의 전당’에서 「노매드랜드 Nomadland」를 보면서 여주인공에게 제가 해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암으로 먼저 떠난 남편을 떠올리며 ‘펀’역을 맡은 여주인공은 이런 말을 합니다. “고아였던 그이를 나마저 추억하지 않는다면 그이가 이 세상에 왔던 존재마저 무의미해지잖아요.” 그러면서 지붕 있는 집에서 함께 살자는 제의를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유랑자가 됩니다.
철학자 스티븐 케이브는 『불멸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사람들의 죽음 인식을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첫째가 불사의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지 않는 불로초를 찾아다니고, 첨단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등의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영혼을 만들어서 죽어도 죽지 않고, 심지어 죽지만 육신이 부활한다고 합니다. 소위 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뭔가 기념될 수 있는 유물이나 이야기를 남깁니다. 이 모든 것은 소멸이라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공포가 죽음을 쫓아낸 것입니다.
떠나보내는 사람과 떠난 이들의 관계도 이 범주 안에 있습니다. 소멸될 육신이 끝나는 순간이 너무나 공포스러워 뭔가를 붙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참된 죽음이 외면당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진정한 자유를 찾는 길을 놓치는게 아닐까요?
우리는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는 말로 뭔가를 남기려 합니다. 하지만 남기려는 그 욕구가 또 다른 욕심이 되고, 여기에 남의 시선에 휘둘리는 삶을 삽니다. 떠나보내는 이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장례를 치릅니다. 심지어 곧 떠날 망자조차도 남의 시선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한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우라고 듣지만 비울 방법을 몰라 늘 채우고 삽니다. 기억의, 추억의 자락을 끝까지 잡고 놓지 않으려합니다. 집에 방에 가득 찬 물건들처럼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오로지 관객 동원에만 열을 올리는 상업영화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노매드랜드 Nomadland」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삶의 무게에서 깨치게 하려는 엄청난 영화로 다가왔습니다. 한번 보실 것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관점을 하나 더 보태자면 ‘먹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유랑자’들인 이들이 끊임없이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도 대부분 야외에서 소세지나 고기를 굽고, 치킨과 햄버거를 먹거나, 감자를 튀깁니다. 그러면서 병으로 암으로 떠난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제 식대로 말하자면, 가짜 음식을 먹는 것이 신체와 영혼의 자유에 족쇄를 채운 것처럼 보입니다. 먹는 것들이 그러니 자유로운 몸과 마음이 병들고 고통 받습니다. 당장 그 먹을 것만이라도 고쳐보라고 예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끝난 뒤 함께 간 영화전문가에게 이런 예기를 했더니 자기는 먹는 장면 기억은 크게 없다고 하네요. ㅎㅎ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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