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6) “타인은 지옥이다.”
진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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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18:50 | 최종 수정 2021.06.3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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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샤르트르가 한 말입니다. 남의 시선에 좌우되는 삶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남의 기대와 희망 절망에 맞춰 삶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없는 갇힌 삶입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이 말이 틀렸다고 수정합니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도 결국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고 합니다. 난 여기서 샤르트르의 이 두 가지 시선이 모두 맞고 또 모두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시선으로 생명을 쳐다 볼 때는 맞고, 인식을 넓히면 모두 틀린 것이 됩니다.
각자가 살면서 가지는 인식은 분명 그 때 그 때마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다 보면 조금씩 넓어지고, 간혹 무릎을 치면서 새로운 사유를 통찰할 때도 있습니다. 이 무릎치기가 많아질수록 인식의 폭은 넓어집니다. 더구나 한계는 없습니다. 무한히 넓어집니다. 그리고 넓어진다는 것은 ‘변화’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무한하다’와 ‘변화’는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일 뿐입니다. 바로 신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생명’도 변화 그 자체입니다. 변화의 방향성은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소위 나를 만들고 진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DNA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분자생물학자인 브루스 립턴 박사가 쓴 책입니다. 원서는 『The Biology of Belief』로 ‘믿음 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휴가인 어제 하루 샤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를 곱씹다가 갑자기 몇 년 전 산 이 책을 끄집어냈습니다. 브루스 박사는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을 발견합니다. 그것도 핵이 아니라 세포막에서 발견합니다. 그때까지는 세포핵 안에 들어있는 DNA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소위 ’센트럴 도그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머리가 사람 몸을 지배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핵과 DNA에서 모든 결정을 지닌, 소위 운명론이 과학계를 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브루스 박사는 이와는 전혀 다른 현상을 세포막에서 발견합니다.
각 세포막은 외부를 차단시키는 닫힌 세계가 아니라 외부환경을 끊임없이 받아들입니다. 세포막 바깥에 있는 어떤 안테나가 자신과 짝을 이루는 외부의 환경신호를 다운받아 계속 변화한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다운받은 이 신호는 70억 인구마다 전부 다릅니다. 제각각입니다. 브루스는 세포막에 있는 이 안테나를 ’자아수용기‘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인식을 한 번 더 확장합니다. 안테나인 자아수용기가 부서지고 세포인 TV가 부서져 방송이 나오지 않더라고 전파는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전파는 TV인 세포가 부서지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다른 수용기와 TV를 통해 방송을 재개합니다. TV인 몸이 죽어도 외부환경신호는 불멸합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외부환경신호는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영혼이 자신에게 맞는 TV수상기가 있고 자신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환생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영혼이야기로 들어와서 실망하셨나요? 그럴 필요 전혀 없습니다. 장기이식과 관련한 독특한 현상이 있습니다. 심장을 이식을 받은 중년의 여자가 햄버거를 즐겨 먹고 맥주를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게 됩니다. 자신의 몸의 변화가 이상해서 알아보니 심장을 준 공여자가 햄버거와 맥주 오토바이를 즐겨 타던 20대 청년이었습니다. 장기를 이식받은 한 소녀는 자신이 살해당하는 악몽을 너무도 생생히 꾸다가 결국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게 됩니다. 장기를 준 사람이 바로 그 범인에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이를 ‘세포기억’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너무 좁게 해석한 것입니다. 세포는 기억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세포막에 있는 ‘자아수용기’가 정확히 그 사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좀 넓게 해석해보면 이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이 방송전파는 70억 인구만큼 최소 70억 개의 전파가 날아다닙니다. TV안테나와 TV가 부서졌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 몸이 죽어 없어졌다고 해서 전파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전파는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전파를 받아들일 TV 즉 몸이 생기면 다시 TV를 켭니다. 브루스 박사는 이를 불멸의 영혼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자가 그것도 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입에서 나오기는 좀 당황스런 예기죠? 하지만 그는 이를 과학적으로 정확히 설명해 낸 것입니다. 태어난 아가의 몸 속에는 불멸의 전파가 스며들었고, 그 전파는 그 전생에 환경과의 교류 과정에서 쌓인 소위 업장(業障)이 됩니다. 카르마(Karma)라고도 하지요.
과학자가 세포 속에서 ‘神’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은 70억 개의 전파로 쪼개져 살고 있습니다.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요. 인구가 더 늘어난다면... 이를 두고 “우리 각자는 신의 파편이다.”라고 합니다. 브루스의 발견과 영혼을 두고 이렇게 연결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우리 인간 각자는 모두 전체의 작은 부분이며 즉 신의 작은 부분이 됩니다. 그러면서 길을 잃은 신이 되는 것입니다.
수학에서 출발한 영혼 이야기 가운데 프랙탈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고사리의 모양은 가장 작은 부분을 확대 해봐도 고사리의 모양이 나옵니다. 아주 작은 것도 거대한 것의 모양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수학적으로 풀어냈습니다. 그러면서 프랙탈을 ‘신의 지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모습이 바로 우주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주의 지문이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은 어떻습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고 이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았던 부패한 종교와의 고리를 끊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학 그 자체가 소위 영혼없는 종교가 됐습니다. 과학에서 영혼을 분리를 시킨 뒤에 ‘과학적 방법’으로 아예 영혼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과학은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모든 기술은 자연을 바꾸기 시작했고 자연을 ‘부자연’으로 만들었고, 만들고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방향도 잡지 못한 채 절벽 위로 눈을 가린 채 걷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적자생존의 진화론입니다. 모든 것을 생존을 위해 착취와 폭력까지 정당화됐습니다.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현대 세계는 물질의 축적을 위한 전쟁 쪽으로 이미 한참이나 옮겨가고 있습니다. 장난감을 가장 많이 가진 쪽이 승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장난감일 뿐입니다. 그곳에 신은 없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환경에 들어맞도록 설계됐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내는 환경에 맞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다.” 브루스 립톤 박사의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큰 우주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인은 지옥도 천국도 아닙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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