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5) “제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다.”

진재운 승인 2021.06.25 20:32 | 최종 수정 2021.06.28 10:00 의견 0

“제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다.”

어제(24일) 부산YMCA에서 열린 ‘가상자산의 미래와 소비자보호...’에 대한 세미나 중 나온 말이다. 주제발표를 맡은 순천향대 권혁준 교수는 질의응답에서 제4차 산업혁명에 속지 말라며 이같이 답했다. 

주제와 다소 다른 이야기였지만 나도 동감하는 말이다. 제3차 다음에 오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은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는 세상을 지향하게 되어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술혁명 즉 ‘GNR혁명’이라고 한다. 그렇게 배운 것 같다. 여기에는 유전자기술(Genetic engineering)과 나노기술(Nano-technology) 그리고 로봇과 인공지능(Robotics & AI)이 있다. 여기서 어느 기술을 뒤져봐도, 머리만 쓰는 일이든 땀을 쏟는 노동이든 멍청하게 앉아 있는 일이든 사람은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제4차 산업이 없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우는 아이에게 줄 사탕하나 없으면서 조만간 설탕이 수입되면 풍선만한 솜사탕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우기는 꼴인가? 물론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실 줄 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세미나 도중 두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하나는 노동이 없어지고 그래서 임금이 필요 없어지면 ‘우리는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제1차 농업과 제2차 산업, 제3차 정보 ‘혁명’을 복기해보면, ‘혁명은 적어도 인간을 배신했다.’ 노동은 더 늘고 임금에 발목이 매이고 스트레스지수는 더 높아졌다. 뼈 빠지게 일하고도 더 힘들게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배신한 혁명이 또 혁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4차 산업혁명이다. 적어도 이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배신으로서의 혁명을 본다면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주기보다는 노동으로부터 ‘소외’, 또 다르게는 기계로부터의 소외가 될지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을 기계에 최적화하면서 인간을 좀 덜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둘째는 대책 없는 수명연장의 공포감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명은 화살처럼 늘고 있다. 여기에 제4차 산업혁명이 본궤도로 오르면 수명은 얼마나 더 연장될까? 이것에 관한 몇 가지 재미있는 실험과 예측이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6배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벌써 5~6년 전 일로 기억한다.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면 무려 500살이 되는 셈이다. 유전자가위가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난리들인데, 일단 10년 이내에 회춘한 실험쥐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의학적으로 방지 가능한 질병 가운데 50%만 막으면 기대수명은 150년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90%를 막으면 250년으로 연장되고, 99%를 막으면 1,000년을 넘길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나노기술 전문가의 전망이다.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의 저자 스티브 오스타드는 ‘의학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모든 사항들이 정리되면 불멸의 평균 수명은 5,775살이 된다’고 주장했다. 평균 수명이니 1만 년도 살 수 있지 않을까? 5천 년, 1만 년을 살 수 있다! 허황된 소리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이것이 미래학자들과 이에 맞춘 공학자들의 공통된 전망들이다.

[픽사베이]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이론을 빌리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IT기술의 급성장으로 의료기술도 10년 뒤에는 1,000배, 20년 뒷면 100만 배 발전하면서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 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시기가 온다고 언급했다. 그래서인가 세계적 물리학자인 미치오 카쿠는 저서 『마음의 미래』에서 수백만 개의 나노 로봇이 암세포를 제거하고 노화과정을 되돌릴 것이라고 자신에 찬 듯 기술해 놨다. 처음 접하다 보면 과장되고 허황되기까지 했지만 계속 들여다보니 이들의 공통된 확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쨌든 수명연장은 사람들에게 잠재된 엄청난 욕구와 욕망에 맞춰 기술과 결합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와 나노기술에 엄청난 예산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수명이 지평선으로 늘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여기에도 재미있는 생각이 있다. 하버드 셸리 케이건 교수가 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300살이 된 나는 100살 시절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500살의 나는 200살 무렵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800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기억과 믿음 욕망 목표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오래 살아도 더 오래 살 수 있고, 오래 살 고 싶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죽음이 무서워서 그런가?

어쨌든 지금 우리는 현재 빚어지고 있는 가상자산의 문제조차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이 없어지고, 임금이 없어지면 가상자산은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인가? 그 전에 가상자산마저 필요 없는 시대가 될 것인가? 

이래저래 생각이 오가지만 중요한 것은 가상자산의 개념조차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래서 미래예측이 힘들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디지털 코인 배우러 왔다가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알아야 된다.’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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