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7) "말은 입으로 듣는다."
진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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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8 13:54 | 최종 수정 2021.07.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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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입으로 듣는다고 합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내 식대로 해석하지 말고, 말한 것이 맞는지를 입으로 확인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뒤에 칭찬이든, 격려든, 위로든, 충고든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청입니다.
사람은 시각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소리에 더 민감하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야생동물은 먼 곳의 소리에 민감하지만 우리도 소리를 구분하는 데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확인이 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무려 1조 가지의 소리를 구분한다고 합니다. 감정이 배인 섬세한 소리까지 구분이 가능합니다. 색의 구분이 1백만 가지인 것과 비교해도 사람의 ‘소리의 동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런데도 소리 구분이 어려운 것은 다양한 이유들로 그 능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남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진심을 몰라준다고 아쉬워하고 원망합니다. 말이, 소리가 오해를 부르고 원수를 낳습니다.
얼마 전 한 의사가 칼럼을 통해 청진기 이야기를 꺼내들었습니다. 한때 병원에서 청진기는 의사를 상징하는 필수품이었습니다. 청진기는 자기 앞에 와 있는 한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위장이나 심장이 내는 소리를 듣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청진기보다는 고가의 소위 첨단 진단 장비를 사용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환자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는 의사들이 허다해졌습니다. 오로지 숫자나 수치로 표현되는 데이터로 그 환자를 판단하고 처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아날로그로 진화해 온 동물입니다. 생각과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이 몸의 치유력을 좌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플라시보효과’가 그걸 증명하는 것이고 반대의 ‘노시보효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병원은 이 환자의 소리에 귀를 닫고 치료를 하겠다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병원을 찾는 ‘환자가 아니라 고객’이 됐습니다. 고객은 병원의 많은 상품을 소비해줘야 하는, 상품을 팔아주는 존재일 뿐입니다. 대우받지 못하는 소비자, 소위 ‘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몸의 치유는 고사하고 치료되기도 난망 할 수 있습니다. 병원이 본질을 잘못 짚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에 뭍어 나오는 미묘한 떨림들까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소리들을 구분 하는 능력이 사라졌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귀는 달고 살지만 상대방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경청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듣는 연습을 입으로 해봐야 합니다. 그냥 아침에 주저리 드는 생각입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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