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4) “이 무한한 공간의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진재운 승인 2021.06.22 10:36 | 최종 수정 2021.06.25 20:53 의견 0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철학자인 파스칼 유고집 『팡세』에 나오는 말입니다. 끝 간 데 없는 우주에서 파스칼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무한은 두렵습니다. 당연히 이 무한의 두려운 우주를 그대로 남겨 둘 수가 없습니다. 토막토막 잘게 부숴야 합니다.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 들이기 위함입니다. 

이 무한을 잘게 부수는 것이 바로 학문입니다. 잘게 부수면 두렵지 않습니다. 원래 무한은 규정된 것도 구분도 없고 분별도 없습니다. 이에 반해 학문은 규정이고 구분이며 분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불리는 ‘피타고라스’입니다. 수학시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피타고라스 정리'의 그 피타고라스 맞습니다. ‘직삼각형에서 두변의 길이를 제곱한 것을 합하면 빗변 길이의 제곱과 같다.’ 3²(9)+4²(16)=5²(25) 맞습니다. 여기에 어떤 정수를 더해도 맞아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무한의 우주를 정수로 토막 내 풀어 헤친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주를 처음으로 코스모스(Cosmos)라 부릅니다. 혼란을 의미하는 카오스(Chaos)에서 우주를 이해가 가능한 질서있는 우주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의 제자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정수인 1²+1²을 제곱하면 정수 2가 나오지 않고 루트2(√2)가 나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루트2는 어떻습니까? 지금도 열 몇 자리까지 외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41421356....뭐 이렇게 끝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계속됩니다. ‘수’로 우주를 지배했다고 생각했던 피타고라스 정리의 결함이 발견된 것입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피타고라스는 이 제자를 바다에 빠트려 죽입니다. 그러면서 루트2(√2)를 ‘신이 실수로 만든 수’라고 말하며 절대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합니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사건입니다. 루트2(√2)가 애써 만들어 놓은 자신의 우주를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루트2는 모두가 알게 되고 이후 ‘무리수’라 불리게 됩니다. 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시 피타고라스는 망했지만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우리의 수학 시간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스 사모스 섬의 피타고라스 동상. 그가 증명한 불멸의 '피타고라스 정리'를 형상화한 직각삼각형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서 있다. [samos-beaches.com]

이를 정리하면 우주는 수학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인간중심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피타고라스가 주장처럼 질서정연한 정수로 떨어지는 질서 정연한 우주가 아닌 것입니다. 고전해설가이자 변호사인 차경남 씨는 『인문학으로 만나는 마음공부』라는 책에서 ‘피타고라스적인 정수의 우주는 정적인 우주며, 죽은 우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주의 본질은 ‘변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무한을 잘 개 쪼개는 것, 그 쪼갠 것을 맘껏 주무르고 싶어 하는 것이 학(學)이고, 무한을 무한 그대로로 받아들이는 것을 도(道)라고 했습니다. 무한을 유한으로 잘게 쪼개는 ‘학’으로서는 ‘도’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멋진 말들입니다. 

그러면서 피타고라스를 통해 학교 때 배웠던 수학을 떠올려 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학 포기자(수포자)’에 가까웠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감선생님이 “넌 다 잘하는데 산수 실력이 좀 떨어지네” 이 말에 “아 나는 산수를 잘 못하는 구나”로 스스로를 재단해버렸습니다. 이후 수학은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외우는 과목처럼 변했습니다. 몇 가지 패턴만 익히면 풀어내는 것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중2때까지 수학은 아주 쉬운 과목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중3 이후부터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외워서는 풀 수 있는 과목이 아니었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가 무한한 우주를 잘게 쪼개기 위한 갈망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어도 외우는 수학을 하지 않았을 듯합니다. 그렇게 후회를 해봅니다.ㅎㅎ

어제부터 EBS방송과 경향신문 공동으로 <대한민국 헌법31조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CP 2명에다 기자 2명, PD 2명 작가 2명씩 모두 8명이 뭉쳤습니다. 그러면서 첫 15세 즉 중3의 수학흥미도를 통해 솔직하게 기술합니다. 하지만 이 기획은 지금의 수학은 어쨌든 해야 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왜 해야 하는지는 일단 없습니다. 

지금 나이에 하는 말이지만, 이런 수학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교육받을 권리 때문에 수학을 집어넣었을까요? 수학이라는 과목을 빼면 어찌 될까요? 그러면 삶은? 행복은? 아니 최소한 금리와 주식 자본 등에 영특해 질까요? 저를 기준으로 삼아봤을 때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의 수학은 오로지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변별력이 전부에 가깝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차이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차이를 만들고도 있습니다. 헌법적 가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차라리 아이들에게 파스칼의 우주와 신의 이야기, 그리고 피타고라스 정리에 숨은 진실을 먼저 알려 주면 어떨까요? 

문제는 의문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의무적으로 주어진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숙제일 뿐입니다. 의문은 본능에서부터 풀기 시작합니다.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풀어내는 것은 공식이 아니라 상상력입니다. 무한한 우주를 무한 그대로 먼저 흡수하고, 잘 개 쪼개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지금은 그냥 숫자만 날아다닙니다. 거기에 우주는 없습니다. 오늘은 길~어 졌습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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