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32) 쪼잔해지지 말자!
산티아고 순례길 14일 차(2020. 2. 14), 부르고스(Burgos) - 온타나스(Hontanas) 대략 31km 여정.
김도훈
승인
2021.08.10 11:25 | 최종 수정 2021.08.13 10:02
의견
0
산티아고 순례길 오늘의 핵심 키워드 두 가지를 뽑자면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쪼잔해지지 말자는 점이다. 특히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듯이 사소한 것이 정말 중요한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오늘은 어젯밤 불길했던 빨래 스트레스의 여파가 이어진 하루였다. 어찌 보면 정말 사소한 사건이지만 옷도 덜 마르고 여기서 파생된 자잘한 것들에 심기가 거슬리고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기분이 상하였는데 이럴 땐 혼자 있는 게 상책!
홀로 아침 시간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피자집에서 주문한 피자를 걸으면서 먹었는데 먹을 게 들어가니 기분도 좋아지면서 다시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동안 사소한 부분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지는 필자의 감정을 돌아보면서 사람의 마음이란 게 마치 갈대처럼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180도 변한다는 사실, 사소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와 행동, 편지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고 역으로 별거 아닌 행동이 어떻게 사람의 정을 떨어뜨리는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필자는 무심코 했던 사소한 행동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상처를 준 게 많았을까? 기쁨을 준 적이 많았을까? 알 수는 없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고 혹여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용서를 빌며 앞으로는 조금 더 사소한 부분,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까지만 해도 대자연 앞에서, 대자연을 걸으면서 호연지기를 키우고 큰 포부와 다짐을 해나갈 줄 알았는데 실상은 사소한 인간관계에 얽매이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쪼잔해지지 말자, 계산적인 사람이 되지 말자, 반면교사를 하며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자! 같은 것을 다짐하는 필자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 허망하기도 했는데 이런 게 인생인가? 이런 게 인생이다. 사소한 게 인생이구나!
사소한 게 모여서 인생이 되는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며 이를 필자의 산티아고 순례길 선배, 예전에 버섯 핀초를 알려준 주은이와 카톡으로 이야기 나눴는데 본인도 그랬었다면서 많은 공감을 해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웃기지 않아?”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는데 거기에 더해 주은이가 해준 마지막 말 한마디는 상당히 큰 힘이 되었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마음껏 직면하도록 해!"
딱 마침 태양도 적절히 따뜻하고 하늘도 높고 구름도 예뻤기에 마음도 갈수록 편안해졌기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말처럼 작은 것,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해나갈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세상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사람이 옹졸한(찌질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끝없는 대립과 갈등은 자신의 생각만 옳다는 옹졸한 생각의 결과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관점인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님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 책상에 올라서서 이런 말을 해준다.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달리 보이는가?
다른 관점을 수용하거나 다른 관점을 보는 훈련을 통해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볼 줄 아는, 관점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 물론 필자에게도 찌질하고 옹졸한 면이 있지만 안 되려고 애는 쓰려고 하는데 앞으로도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 지성인, 옹졸한 사람이 안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나가야겠다. 결국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학문을 하는 이유도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옹졸한(찌질한) 사람이 안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러한 생각 끝에 오늘의 목적지인 온타나스(Hontanas)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침구류 위생 상태는 물론 샤워 시설도 안 좋아 샤워를 포기할 정도로 여러모로 심각한 알베르게였다. 저녁으로 나온 빠에야에도 해물은 없고 데이터도 안 터지는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을 보내야 했지만 오랜만에 David와 이야기를 나누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지난번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처럼 온타나스 역시도 앞으로 잊지 못할 지명이 될 거 같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