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37) 순례길 첫 휴일(DAY OFF)
산티아고 순례길 19, 20일 차((2020. 02. 23 - 02. 24)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 레온(Leon) 37km 구간
김도훈
승인
2021.09.03 14:25 | 최종 수정 2021.09.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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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순례길 3주 차에 접어들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나날이 눈도 잘 안 떠지고 개운하기보단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데 체력이 느는 것과는 별개로 아침 기상은 늘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래도 어제 일찍 잤기에 한결 괜찮게 일어나 시작된 오늘은 팜플로나(Pamplona) 부르고스(Burgos)에 이어 3대 대도시이자 프랑스길 2/3 지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도착 전 마지막 대도시인 레온(Leon)에 가는 날이다. 원래라면 내일 도착할 도시지만 볼 것도 많고, 있을 거 다 있는 큰 도시 레온(Leon)에서 내일 하루를 온전히 자유시간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는 오늘 37km, 이틀 걸을 상당히 긴 거리를 한 번에 다 걸어가기로 했다. 따라서 걷기에만 집중하여 걸어간 하루였는데 긴 거리 초반에 거리를 쫙 빼자, 초반에 확 달리자는 마인드로 시작부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가다 잠시 이모와 통화를 하였는데 이모가 순례길에서 자아를 꼭 찾고 돌아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말이 되게 큰 울림을 주었는데 왜냐하면 필자가 산티아고를 오기 전 가장 알고 싶고 원한 것, 걷는 첫 번째 이유가 자아를 찾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혹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을 잃지는 않았을까? 지난 순례길 여정을 한 번 되돌아보았다.
다행히 지금까지 유럽 여행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여러 일, 사건을 겪으면서 대략적으로나마 필자가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이고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싫을 때는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늘 했던 행동과 반응이었겠지만 평상시나 일상 속에선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그냥 넘겼던 사실들을 순례길에서는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관찰할 수 있었다. 덕분에 조금 더 명확하게 나에 대한 이해와 스스로 인정의 폭이 넓어졌다고 자부하는데 앞으로 남은 기간도 지금처럼 자아를 찾고 자아를 형성하며 필자가 누구인지를 계속해서 알아나가야겠다.
그 외에는 정말 열심히 걸어간 기억밖에 없다. 다만 이베리아반도 태양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늘에 있으면 확 선선해지지만 걷는 길엔 그늘도 잘 없어 태양 아래 무더워 지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때 마신 코카콜라가 참 맛있고 큰 힘이 되었다. 인생 코카콜라였는데 탄산의 힘으로 덥고 지루한 길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오후 5시30분쯤 레온에 도착하였다.
레온에 도착해서는 알베르게에서 그간 못한 빨래를 돌리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었는데 너무 많이 걸었던 탓일까? 잠깐 누워있다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눈 뜨니 다음 날, 일찍 잠들고 일어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오늘(24일)은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안 걷고 온전히 휴식을 취하는 날이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휴식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유러피언 라이프도 즐기고 그간 생각 정리도 할 겸 홀로 빵집으로 향했다. 커피와 빵과 함께 지금껏 쓴 일기도 다시 읽어보고 지난 알베르게에서 발견하여 지금껏 배낭에 늘 들고 다녔지만 안 읽고 있던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을 읽으며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만끽하였다.
모처럼 느끼는 독서의 여유에 한껏 좋아진 기분으로 1063년 성인 이시도로의 유골이 옮겨져 안장되었다고 알려진 산 이시도로 바실리카(Basilica de San Isidoro) 성당과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구엘 공원을 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으로 알려진 까사 보티네스(Casa Botines) 저택을 구경했다. 건축에 대해 잘 몰라 그냥 겉으로 구경만 하였는데 보티네스 저택은 한 자산가가 가우디에게 의뢰해 지은 건물로 지금은 스페인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서양 삼총사가 강을 찾았다고 같이 입수하러 가자는 초대를 해왔다. 전에 같이 입수하겠다는 약속도 했고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추억을 쌓아보겠냐는 생각에 합류하여 강물에 들어갔는데 물이 완전 차가워 정신이 번쩍 든 순간이었다. 다만 물이 더럽고 슬리퍼가 진흙에 빠져 약간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물에서 나왔을 때 상쾌한 기분이 짜릿했다. 20초가량 짧은 시간이었지만 먼 이국땅에 와서 강물 입수도 해보고 소중한 추억을 만든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레온에서 남은 시간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 본지 편집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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