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2) 2월의 마지막 날 축제를 만끽하다

순례길 25일 차(2020. 02. 29)
폰페라다(Ponferrada)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24km 구간

김도훈 승인 2021.10.08 10:22 | 최종 수정 2021.10.09 11:53 의견 0
42-1) 필자가 지금까지 걸어온 순례길 거리뷰.
필자가 지금까지 걸어온 순례길 거리뷰. [구글맵]

4년마다 한 번 찾아온다는 2월 29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눈 뜨자마자 4년 전 오늘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궁금했다가 군대에 있었단 사실을 깨닫고 바로 단념하였는데 뜻깊은 순례길을 걸으며 맞이하는 2월의 마지막 날, 오늘은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

시작은 좋지 못했다. 아침으로 참치 비빔밥을 먹을 생각에 상당히 설렜던 것과 달리 알베르게 부엌에 전자렌지도 없고 가스 불도 사용을 막아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쌀은 버리고 간단히 사과만 먹었는데 아침을 든든하게 먹지 못해 상당히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래도 출발하기에 앞서 구글맵을 확인해 본 결과 지난 2월 5일부터 걷기 시작하여 그동안 상당히 많이 걸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는데 출발한 지 얼마 안 가 앞에 벚꽃이 펴있는 예쁜 성당을 발견했다.  구도가 너무 예뻐 바로 인생 사진을 하나 남기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아침을 먹을 바를 찾기 위해 철현 행님과 선두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42-2) 이름 모를 성당 앞에서 올해 첫 벚꽃과 함께
 이름 모를 성당 앞에서 올해 첫 벚꽃과 함께

산뜻한 마음으로 1시간가량 열심히 걸어간 끝에 문을 연 바를 발견. 빵과 오믈렛, 커피로 연료를 주입하였는데 문득 몸이 힘들면 음식이 안 들어 간다는 필자로선 이해하기 힘든 소식가 슬기누님, 동연누님과 달리 철현행님과 먹는 것을 비롯하여 많은 코드가 맞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드 맞는 사람과 같이 걸을 수 있어서 큰 안도감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이후로 와인 테이스티 바에 들러 와인을 맛보기도 하고 문어 타파스에 맥주를 가벼이 곁들어 먹기도 하면서 오늘의 여정을 걸어갔다.

식도락처럼 먹고 마시며 걷다 보니 어느덧 벌써 200km도 깨졌음을 이정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막 700km 이상 남아 이걸 언제 다 걷나 생각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많이 걸어온 건지 놀라웠다. 이제 200km도 안 남았다니... 끝이 다가오는 게 한편으론 좋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아쉬운 감정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42-3) 카카벨로스(Cacabelos) 지역에서 발견한 표지석. 200km도 깨졌다!
 카카벨로스(Cacabelos) 지역에서 발견한 표지석. 200km도 깨졌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와 막판 연료 부족에 따른 대위기가 잠시 찾아오긴 했지만, 남은 길 어찌어찌 걷고 걸어 오늘의 목적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에 도착하였는데 이 지역에 숨겨진 재밌는 이야기 하나. 예전 2019년 3월~ 5월까지 방영한 tvN의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나영석 PD와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하숙집(알베르게)를 운영한 곳이 바로 이곳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라고 한다.

필자는 ‘스페인 하숙’을 보지 않았기에 전혀 모르고 있다 전해 들어 알게 되었는데 급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혹시 지금도 문이 열려 있나 알아봤는데 아쉽게도 그 알베르게는 겨울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꿩 대신 닭이라고 나름 좋아 보이는 곳으로 가서 씻고 빨래 및 휴식을 취하였다. 이후 새로운 한국인도 만나 다 같이 식당가서 밥을 먹고 마트 가서 장을 보았는데 조금씩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42-4) 오늘 축제(Carnaval) 포스터!
피냐타 축제(Carnaval) 포스터!

그래서 뭔가 해서 살펴보니 마을 파티(Carnaval) 축제가 오늘 저녁에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축제를 경험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축제(Carnaval) 소식에 마음이 들뜨고 신나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쉬며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8시경 드디어 2월의 마지막 날을 불태울 축제를 체험하러 갔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각종 퍼레이드가 펼쳐졌는데 다양한 변장과 함께 아마도 마을 사람들 전체가 참여하는 축제인 것 같았다. Erin은 나갈 때부터 막 달리고 춤추고 즐기기 시작했다. 필자는 바로 저렇게 하지 못하기에 밝은 텐션이 부러웠는데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자도 분위기에 취해 내려놓고 개방적이고 활발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확실히 20여 일 이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필자도 많은 영향을 받아 훨씬 개방적이고 활발해졌음을 알 수 있었는데 다 같이 맥주와 함께 퍼레이드를 직접 참여하기도 하면서 진짜 완전 즐겁게 춤추며 축제에 빠져든 시간이었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지역의 피냐타 축제의 한 장면. 표정이 모두 밝다.

다양한 변장을 보는 재미도 있고 맥주와 함께 즐기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는데 무엇보다 직접 연주하는 음악 소리가 너무 신나서 좋았다. 이게 스페인이구나! 괜히 정열과 낭만의 나라 스페인이 아니구나를 몸소 느끼며 l love Espana를 실감할 수 있었던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진으로는 당시 밝고 유쾌한 흥과 분위기를 담지 못해 아쉬운데 모두가 밝은 표정과 미소를 지으며 먹고 놀았던, 한없이 행복했던 스페인에서의 2월 29일. 오늘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2024년 2월 29일이 되어 그때 다시 4년 전을 돌아본다면 오늘과 달리 미소가 번지지 않을까?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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