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35) 별빛이 내린다 샤랄랄라라라~☆

산티아고 순례길 17일 차(2020. 02. 21)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Carion de los Condes) - 모라티노스(Moratinos) 30km 구간

김도훈 승인 2021.08.24 12:26 | 최종 수정 2021.08.26 16:03 의견 0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Carion de los Condes)를 갓 출발한 후 바라본 순례길 풍광

사람도 그렇고 뭐든 겉모습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해서는 안 되는데 이번 알베르게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봤을 땐 전원 1층 침대에다 따뜻하여 마냥 좋은 줄 알았지만, 실상은 새벽에 라디에이터가 꺼져 추웠던 데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숙소였다. 예상치 못했던 복병은 바로 코골이였는데 오죽하면 코리안 탱크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새로 만난 한국인의 코골이가 너무 시끄러웠다. 심지어 규칙적이지도 않아 더욱 신경이 쓰였기에 비몽사몽, 피곤한 채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철현행님이 출제한 하나의 퀴즈가 큰 화제가 된 하루였다. 걸어가는 동안 심심하지 말라고 형이 낸 문제는 바로 ‘강 건너기 게임’인데 룰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A 섬에 총 8명의 사람(아빠, 아들, 아들, 엄마, 딸, 딸, 경찰, 죄수)이 있다. 이들 모두를 나룻배를 통해 B 섬으로 안전하게 보내야 하는데 나룻배는 최대 2명까지 탈 수 있고 엄마 아빠 경찰만 운전이 가능한 상황이다. 거기다 경찰관이 없으면 죄수는 가족을 아무나 해치고 아빠가 없으면 엄마가 아들을 때리고 반대로 엄마가 없으면 아빠가 딸들을 때리는 막장(?) 조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8명 전체를 B 섬으로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강 건너기 문제를 풀고 뿌듯해하는 필자

필자는 이 문제를 듣자마자 꼭 혼자 힘으로 풀고 싶었기에 종이에 열심히 풀면서 걸어갔다. 초반 17km 길도 큰길을 따라 쭉 가야 하는 매우 지루한 구간이었기에 더욱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생각보다 쉽게 풀려서 아싸! 하고 매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I’m Genius?). 문제를 풀었을 때의 짜릿함, 쾌감이 좋았는데 독자님들도 한 번 시간 나실 때 풀어보시길 권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17km를 걸어 중간 지점 바에 도착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마치 만남의 광장처럼 하나둘 여기로 모여 다 같이 휴식을 취하였는데 빵, 젤리, 빠에야 등 음식도 나눠 먹고 카푸치노에 Erin이 준 파프리카를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었다. 평소 파프리카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순례길에서 먹는 파프리카는 수분도 있으면서 달달한 게 참 맛있었다. 앞으로 파프리카는 아주 맛있게 먹을 것 같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날씨도 정말 끝내줬다. 태양도 따뜻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평야를 뛰노는 순간은 낙원에서 뛰노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죽하면 갤럭시 워치로 현재 스트레스를 한 번 측정해본 결과 스트레스 지수가 아주 낮게 나올 정도로 세상 행복하고 좋은 순간이었는데 너무나 여유롭고 평온한 당시 이 기분을 머라 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다시 출발하기가 싫을 정도로 좋았기에 한 시간 이상을 그냥 푹 쉬었다.

스페인 평원에서 행복함을 만끽하는 필자

그리고 난 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남은 길을 걸어가는데, 오늘의 목적지 모라티노스(Moratinos)로 다와갈 때쯤 필자의 장갑 한 짝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아마 걷던 도중 흘린 거 같은데 어디에 떨어뜨렸을까? 그냥 버릴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끝내 역주행을 하기로 결정! 20분가량 걸어가 끝내 떨어진 장갑 한 짝을 찾고 돌아와 오늘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는데 모라티노스(Moratinos)는 유일하게 알베르게 하나 외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정말 작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이때는 몰랐다. 얼마나 좋은 게 기다리고 있을지.

라갈토스(Lagartos) 지역에서 발견한 이정표지석. 400km도 깼다!

우선은 알베르게에서 씻고 쉬다가 식당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놀았는데 9시에 식당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식당을 나왔다가 깜짝 놀라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와.!! 별이 쏟아져 내릴 거 같다는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진짜 하늘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이 온통 다 별로 둘러싸여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별이 많은 광경은 26년 인생 처음 겪는 일이라 바로 숙소 옥상에 올라가 다 같이 그 자리에서 별을 관람하였는데 David의 날 것 그대로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fucking amazing한 순간이었다. 이를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너무 황홀했는데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던 게 아쉽지만, 무수히 많은 별들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별빛 아래 상당히 해맑은 필자와 뒤에 보이는 큰 별 하나

다만 10시가 되자마자 나가지 말라고 하고 알베르게 문을 닫는 바람에 별을 더 보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언제 또 이렇게 많은 별을 마주할 수 있을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여러모로 정말 평온하고 행복하고 따뜻하며 모든 것이 좋았던 하루였는데 매일이 오늘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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