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39) 육체적 고통, 정신적 갈등을 넘어 영적 기쁨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22일 차(2020. 2. 26)
산 마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 아스트로가(Astorga) 약 23km 여정
김도훈
승인
2021.09.15 10:05 | 최종 수정 2021.09.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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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배낭을 메고 500km 이상을 걸어왔기에 허벅지가 확연히 단단해졌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는데, 오늘은 법륜스님 강의를 시작으로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다양한 강연과 함께 걸었던 하루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묘하게 연결되는 알고리즘의 원리가 참 신기했는데 들었던 강연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행복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또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욕심이다. 내 욕망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걸 알아차리라는 것. 인생사 새옹지마이니라~’ 또한 ‘선택에 대해서 뭘 하든 내 선택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김창옥 교수의 ‘두려워하면서 해라! 두려움을 피하거나 이기려 하지 말고 두려워하면서 하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이번 유럽 여행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 필자에겐 바로 두려워하면서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군대에 있었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지난 첫 유럽 여행 때와는 달리 이번 유럽 & 순례 기행은 거의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계획하고 준비해서 왔다. 돌이켜보면 준비 과정부터 시작하여 홀로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고 나아가는 도중에 마주한 여러 걱정과 두려움, 거기다 여러 다사다난한 사건 사고(티켓 문제로 고대하던 리버풀 경기를 못 본 일, 런던에서 백팩을 소매치기당하는 등)를 겪으며 무섭고 주저앉고 싶은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여러 우여곡절과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기에 무사히 지금까지 잘 헤쳐온 것 같다. 김창옥 교수의 말처럼 필자도 두려웠지만 두려워하면서도 나아갔기에 두려움을 서서히 걷어내고 더욱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는데, 좋은 강연과 함께 너무나 편안하고 여유로운 순례길이었다.
특히 오르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고풍스러운 다리를 지나가는 길이 너무나 예뻤다. 멋진 마을과 다리, 그리고 기가 막힌 하늘과 구름이 너무 조화롭고 멋있어 계속 감탄을 할 정도였는데 쉬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아직 읽어보지 못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과 장 자크 루소의 『에밀』 책을 한국에 돌아가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걷는 내내 너무나 좋은 풍경이 계속해서 펼쳐졌기에 상당히 기분 좋게 걸은 하루였다.
자연을 걸음으로써 여유도 많이 생기고 두려워하면서도 걸어 온 과정을 통해 필자 안에 있지만, 미처 끌어내지 못했던 용기도 많이 키워진 것 같다. 또한 강연과 이런저런 생각, 성찰, 숙고를 통해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숙할 수 있었는데 필자의 산티아고 순례길 스승 주은이에게 들은 유명한 순례길 말(격언)이 있다.
‘순례길의 첫 3분의 1 동안은 육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그다음 3분의 1 동안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지만, 3분의 2 과정을 포기 안 한 사람들은 마지막 3분의 1구간에서 영적인 기쁨을 느낀다.’
지금까지 필자의 순례길 여정도 격언대로 흘러온 것 같다. 가끔 배가 고파 육체적 고통 다시 육체적 어려움을 겪는 역행을 하기도 하지만 육체적 어려움을 지나 정신적 성숙도 많이 이뤘다고 자부하는데 무엇보다 스스로 긍정하는 마음과 긍정적으로 보려는 모습이 많이 형성된 게 큰 수확이다. 이번 유럽 여행 &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자에게 준 교훈이자 선물이라 생각하는데 현재 사진이나 영상에서 볼 수 있는 필자 모습처럼, 순례길의 끝에서 더 좋은 기운과 여유와 자신감이 가득한 김도훈이 되어있기를! 이를 바탕으로 곧 찾아올, 순례길 마지막 1/3 영적인 기쁨을 맞이하고 싶다.
이와 함께 도착한 아스토르가(Astorga)는 유럽 초콜릿의 발상지이자 초콜릿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초콜릿 박물관도 있길래 바로 가서 구경 및 초콜릿을 맛보고 저녁과 함께 도시 구경을 하였는데 아쉽게 오늘 알베르게는 통금 시간이 있었다. 21:30분에 문을 닫는다길래 하는 수없이 일찍 숙소로 돌아가 방 안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금이라도 떠들면 무서운 주인 할머니께서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러 오시고 계속 돌아다니시면서 순례자들이 자나 안 자나 감시(?)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일찍 잔 하루였다. 오늘 못 쓴 일기는 내일 써야지.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 본지 편집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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