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6) 순례길의 끝이 다가오다

산티아고 순례길 29일차(2020. 03. 04)
사리아(Sarria) -포르토마린(Portomarin) 23km 구간

김도훈 기자 승인 2021.10.26 22:05 | 최종 수정 2021.10.28 10:03 의견 0
굿바이 사리아(Sarria). 떠나면서 찍은 사리아(Sarria) 풍경

사리아에서 맞이하는 순례길 29일차 아침이 밝아왔다. 오늘은 아침밥으로 모처럼 한식(참치, 고추장, 밥, 라면)을 먹었는데, 확실히 전성기 시절에 비해선 많이 먹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순례길 중반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플 정도로 한창 위가 위대했던 때가 있었는데, 순례길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몸이 많이 적응해서인지 확실히 위도 조금씩은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도 상당히 든든하게 먹고 오늘의 여정을 출발하였는데, 문득 순례길에서 지금까지 먹은 음식 중에서 지난 레온(Leon)에서 먹은 만두+고추장+밥이 단연 1등, 최고의 아침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비록 레온에서 먹은 아침을 능가하진 못했지만 맛있게 먹고 걸어가는 길, 다만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사리아를 빠져나가는 초반 걷는 게 조금 힘들었다. 각종 오르막과 마주한 천국의 계단(?)에서 고생하기도 하다가 가까스로 안정 구간에 접어들어 힘차게 걸어갔다.

산티아고까지 100km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표지석과 스탬프

확실히 처음 보는, 새로 유입된 순례자들이 많이 보이기도 했는데, 얼마 안 가 산티아고까지 딱 100km 남았다는 표지석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껏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대략 800km의 여정 중에서 7/8을 걸어왔고 이제 딱 1/8만 남았구나. 곧이어 100km를 기념하는 스탬프를 찍으니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제는 표지석을 만날 때마다 남아있는 거리가 확확 줄어든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기에, 남은 100km는 순례길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따라서 모처럼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와 베토벤 7번 교향곡 등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음악과 함께 중간중간 과자와 당근을 먹으며 쉬기도 하고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순례길이 주는 여운을 마음껏 만끽하였는데 며칠(3-4일) 후면 대망의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설렘을 주기도 했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는 중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tvN 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 ‘삼국지’ 편이 보이길래 이를 재미있게 들으면서 갔다. 오랜만에 삼국지를 들으니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읽고 싶어지기도 했는데, 영상 중에서 특히 조조에 관한 이야기가 참으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자기 외모에 자신감이 없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 조조. 흉노족 사신이 자신을 찾아오자 최염이라는 부하에게 자기 대역을 맡게 하고 조조 자신은 옆에서 호위 무사인 척 칼을 들고 옆에 서 있었다. 이후 돌아간 사신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위왕(최염)은 인재다. 허나 그 옆에 있었던 칼을 든 호위 무사(조조)가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었소”

포르토마린(Portomarin)에 도착하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에 도착하다!

필자가 순례길을 걸으며 얻고자 했던 두 가지 목표 중 하나였던 기운/아우라 바꾸기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비록 필자가 조조와 같은 왕이 될 상은 아니더라도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기운, 선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아우라, 무엇보다 나만의 독특하면서도 고유한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와 포부를 품고 지난 4주가량 순례길을 걸어왔는데 순례길을 걷기 전인 2월 초와 비교해서 지금 필자의 기운/아우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밝고 긍정적으로 변했을까? 알게 모르게 조금이라도 좋게 변했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순례길을 통해 부디 더 나은 기운/아우라를 가진 더 나은 사람으로 진화했기를!!

이런 생각과 함께 걷다 보니 어느덧 포르토마린(Portomarin) 도시에 다다랐다. 도시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큰 다리를 건너는 게 조금 겁나기도 했지만, 무사히 잘 건너 숙소에 도착했는데 오늘의 숙소가 상당히 깔끔하고 좋아 만족스러웠다. 편하게 푹 쉬다 저녁으로 갈리시아 지방의 또 다른 명물, 우리나라 시래기국과 비슷한 갈리시아 수프를 먹고 뒤이어 필자가 꽂힌 또 하나의 음식을 먹으러 갔다. 그건 바로 초코+츄러스 인데 달콤한 츄러스를 따뜻한 초콜릿에 찍어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싹 풀 수 있었다.

필자가 좋아하는 초코+츄러스

그리고 밤에 다 같이 모여 남은 순례길 일정 및 각자 다음 행선지, 언제 헤어질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걸까? 이제 슬슬 순례길 다음 일정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할 때가 찾아왔다. 필자도 향후 어떻게 움직일지 대략적인 계획을 짜보았는데 이제 진짜 순례길의 끝이 오긴 오는구나. 미우나 고우나 함께한 정과 아쉬움이 느껴지는 밤, 순례길을 함께 해줘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별이 다가옴을 알 수 있는 시간이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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