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5) 짧은 걸음, 긴 휴식
산티아고 순레길 28일 차(2020. 03. 03)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사리아(Sarria) 구간 18km
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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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15:06 | 최종 수정 2021.10.2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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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한바탕 눈 축제를 뒤로한 채 새롭게 시작된 오늘은 드디어 사리아(Sarria)에 가는 날이다. 사리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약 100km 정도 남겨둔 마을로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마지막 도시라 할 수 있다. (산티아고 직전 도보의 경우 100km, 자전거의 경우 200km 이상부터 스탬프를 필히 받아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즉, 여기서부터만 걸어도 산티아고 순례길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기에 시간이나 체력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사리아에서 까미노를 많이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처음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언제 도착하나 싶던 도시를 드디어 간다!
오늘 슬기 누님은 몸 상태가 안 좋아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 소위 말해 점프를 하기로 하여 철현, 동연 행님과 필자 셋이서 걷는 날인데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서 사리아(Sarria)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 경로가 있었다. 하나는 전통 까미노 길로 거리가 짧은 대신 산길을 오르내리며 걸어야 하는 18km 산길 코스, 또 다른 길은 5km 더 빙 둘러 가지만 길이 험하지 않고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베네딕트 수도원을 볼 수 있는 24.6km의 사모스 코스. 베네딕트 수도원을 보고 싶을 만큼 딱히 수도원과 친하지 않기도 하고, 그럴 바에는 오히려 20km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완전 스퍼트를 내서 걸어 12시 전에 사리아에 도착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두 코스 중에서 우리는 짧고 굵게 산길 코스를 걷기로 했다.
아침 비도 조금 내리고 바람이 부는 흐린 날씨긴 했지만 어떤 날씨도 우리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고 이제 철현, 동연행님 그리고 필자 모두 체력이 확실히 늘었기에 12시 전 도착하는 걸 목표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남자 세 명이서 산다람쥐마냥 빠르게 산을 오르내리며 별생각 없이 그냥 냅다 무한 질주하듯이 걸어갔다. 경주마마냥 전력 질주하면서 앞사람들을 한 명씩 추월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세 시간가량 앞만 바라보고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저 멀리서 사리아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음을 알 수 있었기에 쉬지 않고 남은 길을 계속 걸어 끝내 11시30분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8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4시간 열심히 걸어 12시도 채 안 된 시간에 순례길 역사상 중에서 가장 빨리, 최단 시간 마을에 도착한 하루였다.
약간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제일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갈리시아 지방은 특히 ‘뽈뽀’라 부르는 문어 요리가 상당히 유명하기에 문어 요리와 함께 송아지 스테이크로 배를 든든히 채운 다음 오늘의 숙소 오아시스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지금부터는 주어진 자유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만끽하면 되었다.
모처럼 찾아온 엄청난 여유 시간. 무엇을 하며 쉴까 고민하다 딱 마침 알베르게에 잔디 깔린 야외 정원과 누울 수 있는 의자도 준비되어 있길래 우선 책을 읽기로 했다. 오늘 읽을 책은 바로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킨 선구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어느 알베르게에서 획득한 후 배낭에 짊어만 지고 다니다 드디어 읽게 되었는데, 책 내용 중에서 특히 '저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고 한 대목과 운명에 관한 부분과 인간에 대한 통찰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고 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한 시간가량 독서와 함께 상당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선 또다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다. 돈을 아끼지 말자는 테마로 뽈뽀(문어) 요리에 햄버거, 마지막으로 맥주와 샌드위치까지 끊임없이 먹으며 남은 자유시간을 만끽하였는데,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음식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벌써 사리아라니. 믿기지 않은데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에선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 순례길의 마지막에서 끝내 영적인 기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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