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홀로 지내고 맞이한 첫 아침. 빠르게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 하루였다. 형님, 누님을 따라잡기 위해 오늘 필자는 7km를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인데 걱정과 달리 춥지도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기에 홀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 가장 높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감에도 불구 오늘따라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고 거기다 반경 5km 이내 주변에 정말 아무도 보이지 않아 노래방에 온 것처럼 마음 놓고 고함도 크게 지르면서 걸을 수 있었다. 모처럼 허공에 대고 속에 있던 응어리나 주저함을 털어내듯이 소리를 내지르다 보니 그동안 필자를 막고 있는 듯한 그러한 벽을 깨는 느낌이 들어서 개운하면서 기분이 매우 상쾌해졌다. 무엇보다 속이 엄청 시원해졌는데 이러한 경험은 평소 주변 눈치를 많이 보던 필자에게 새로운 일깨움을 주었다.
사진 찍을 때도 그렇고 다른 사람의 눈, 시선 의식을 하면 힘이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 부자연스러워지는데 한국 사회는 특히나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고 사회의 정해진 루트에 대한 암묵적인 압박이 심하다. 즉, 사회적 분위기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변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서 튀는 개성을 가지기보단 눈치와 함께 유행에, 집단에 소속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했으면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한민족은 원체 부화뇌동(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함)을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이처럼 욕망을 표출하기보단 눈치를 보면서 본의 아니게 억눌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탁 트인 스페인 고지 한복판을 걸으며 주변 눈치, 신경에서 좀 벗어나 편하게, 그리고 나답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것, 스스로 기준에 따라 힘을 집중하고 나아가자 그리하여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이 문구처럼 남들이 한다고 하는 게 아닌 내가 원하는 길, 하고 싶은 나만의 길을 향해 나아가겠노라고 확연히 다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긍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항상 본인 스스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자! 그리고 관점을 바꾸는 연습을 통해 부정적→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였는데 필자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바로 필자의 참스승 권용립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천천히 변해야 확실히 변한다.’인데 여전히 인상 깊은 이 말처럼 순례길을 걸으며 시나브로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느리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꾸준히 긍정적으로 변화시켜나가야겠다.
다만 이러한 생각과 함께 홀로 경주마처럼 빠르게 걸어가느라 가는 길에 나오는 순례길의 또 하나의 유명한 철의 십자가를 그냥 지나치고야 말았다. 다들 그곳에서 본인을 내려놓고 돌이나 편지를 놓고 소원을 빌고 온다고 하던데 눈으로 보기는 하고 지나친 건지 아니면 못 보고 그냥 지나쳤는지 사진도 없고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 아쉬운데 다음번엔 꼭 소원을 빌고 와야겠다.
그래도 별생각 없이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다 보니 앞에 엄청 빠르게 형, 누나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같이 걸어 오늘의 목적지 폰페라다에 도착해서는 바로 구글맵에서 발견한 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는데 이후 행님이 양말 사러 간다기에 따라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필자의 마음에 쏙 드는 3유로 황금색 선글라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히 만족스러워 바로 구매하였는데 뭐든 자기만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기분 좋은 상태로 돈도 뽑고 마트를 돌아다니며 휴식 시간을 보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다 같이 마을 구경 및 성을 구경하러 갔다. 로마 시대의 도시 폰페라다는 '철로 만들어진 다리'라는 뜻으로 11세기 아스토르가 주교가 순례자들이 실 강과 보에사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건설하면서부터 발전한 곳이라고 한다. 또한 페르난도 2세가 순례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 도시를 템플 기사단에게 맡겼고 템플 기사단의 성이 세워진 곳인데 찾아보니 템플기사단은 중세 십자군 전쟁 때 성지 순례자 보호를 목적으로 1118년경 설립된 기사 수도회로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주한 폰페라다의 템플기사단의 성(Castillo de los Templarios). 비록 시간이 늦어 내부에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겉에만 있어도 마치 중세시대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오늘은 클래식 음악이 아닌 K-POP 그중에서도 KNOCK KNOCK, TT, CHEER UP, SIGNAL What is Love? 등 트와이스 노래 메들리를 들으며 도시와 성을 걸어 다녔는데 날도 선선하고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정말 행복했던 저녁 시간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아무 근심 걱정 잡념이 없는 게 참 행복한 일인데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oeksgksep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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