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38) 불확실한 미래, 너무 고민하는 건 무의미한 짓!

산티아고 순례길 20, 21일 차(2020. 2. 24, 25)
레온에서의 2탄, 레온(Leon) - 산 마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25km 구간

김도훈 승인 2021.09.08 10:12 | 최종 수정 2021.09.12 12:54 의견 0
순례길에서 먹은 최고의 만찬

어제는 알베르게에서 묵었지만, 오늘은 한국인끼리 호스텔을 잡아 편안하게 보내기로 하였기에 각자 시간을 보내고(필자는 수영을 끝으로) 호스텔로 모여들었다. 이후 다 같이 중국 마켓에 들러 각종 재료를 산 다음 라면과 떡볶이, 만두를 요리해서 먹었는데 대박! 물놀이도 했겠다, 순례길 역사상 가장 맛있는 저녁이었다. 최고의 만찬에 역대급으로 많이 먹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맛있는 걸 먹는 순간인 것 같다.

배를 매우 든든하게 채우고 나서는 산책 겸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eon)을 구경하러 갔다. 레온 대성당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성당 건축물로서 2011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는데 겉에서 봐도 참 크고 웅장했다. 내부에도 한 번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먼저 들어갔다 온 형님들이 성당 입장료 6유로를 태웠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웃겼는데, 은은하게 비치는 조명이 성당의 멋과 기품을 한결 더해주었기에 안 들어가고 겉에서만 구경해도 기분이 좋았다. 거기다 정각 때마다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기에 세상 밝은 표정으로 대성당 앞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8-2) 웅장한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eon) 앞에서
웅장한 레온 대성당(Catedral de Leon) 앞에서

그러던 도중 알게 된 또 하나의 꿀팁! 레온 지역에서는 펍에서 맥주를 시키면 타파스를 랜덤으로 그냥 준다고 한다. 저녁을 많이 먹어 배부르긴 해도 이 소식을 알게 된 이상 한 잔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다들 배불러서 못 먹겠다기에 하는 수없이 홀로 바에 가서 맥주와 나온 하몽 타파스를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다만 먹기 전까지는 딱 기분 좋은 배부름이었는데 기분 나쁜 배부름으로 변하여 약간 힘들기도 했지만, 후회 없이 실컷 쉬고 즐기고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 꿀잠을 자는 것으로 순례길에서의 첫 휴식일이 마무리되었다.

 불굴의 의지로 기어코 산 츄러스

새로운 태양과 함께 밝아온 25일 아침. 어제 너무 많이 먹었기에 과연 아침밥을 또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어제 남은 떡볶이, 만두에 밥을 섞어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이게 또 들어가네! 놀람과 함께 너무나 맛있게,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였는데 뭐든 한국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다.

다만 오늘 가야 할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필자의 의지, 집념을 자극한 한 가지, 츄러스를 먹기 위해서였다. 사연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어제 레온의 츄러스 맛집을 알게 되었지만, 장사를 12시까지만 하여 먹지를 못하였다. 가게 위치는 가야 할 길과 정반대였지만 이를 알게 된 이상 내일 아침에 무조건 들러 먹고 싶었다. 이제 30분 더 걷는 것은 식은 죽 먹기만큼이나 쉬운 일이기 때문에, 불굴의 한국인. 끝내 츄러스를 사서 먹으면서 오늘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열심히 걷다 중간에 들린 바에선 숟가락 때문에 커피를 쏟아 1유로에 커피 대신 기쁨과 추억을 사기도 했는데 이와 함께 열띤 회의가 펼쳐졌다. 회의 주제는 바로 오늘의 목적지 마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에서 숙소를 어디로 갈 건지였다. 사설 알베르게를 갈 것인가 공립 알베르게를 갈 것인가? 막 고민한 끝에 한 군데를 정한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에서 열심히 한 회의는 정말 의미가 없는, 아무짝에서 쓸모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민했던 숙소는 다 문이 닫혔고 열려 있는 숙소는 단 한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고민 걱정을 하는 게 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찌 될 줄 모르는 게 인생이기에 미래에 대해 지금 막 생각하고 해 봐야 끝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áramo) 지역을 지날 때 발견한 이정표. 300km도 깨졌다!

바람이 많이 불기는 했지만 구름도 참 많고 하늘이 참 예뻐 아름다운 기억과 함께 오늘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4인 실에 2층 침대가 두 개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는 어김없이 가위바위보를 통해 1층과 2층을 정하였다. 필자는 졌기에 2층으로 올라갔는데 설거지와 침대를 두고 늘 하는 가위바위보를 통해서도 인생을 배우는 것 같다. 이것도 인생이구나! 앞으로 이길 때도 질 때도 있겠지만 이겨도 자만하지 말고 계속 지더라도 덤덤하고 태연하게,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계속해나가야겠다. 어찌 보면 운 테스트이기도 한데 짜잘하게는 계속 지더라도 이왕이면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꼭 이기기를 소망해본다!

창밖을 내다보는 알베르게 마스코트 고양이

마지막으로 오늘 알베르게의 마스코트(?) 고양이가 너무 귀여웠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는데 이름 모를 고양이 덕분에 고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동물들은 다 순하고 귀여운데 앞으로도 좋은 동물들을 많이 만나는 순례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 본지 편집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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