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31) 넌 결코 혼자 걷지 않을거야 You’ll Never Walk Alone

산티아고 순례길 13일 차(2020. 02. 17) 아헤스(Agés) - 부르고스(Burgos) 약 23km 구간.

김도훈 승인 2021.08.05 16:14 | 최종 수정 2021.08.06 13:57 의견 0
 카르데뉴엘라 리오피코(cardenuela riopico) 지역의 한 민간 건물벽 그림. 너무 공감된다.

벌써 17일이라니. 순례길에서의 시간이 엄청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오늘은 순례길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출발한 날이다. 걷는 거리도 23km로 나름 짧은 데다 점심 때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비도 피할 겸 빠르게 걸어 점심때쯤 대도시 부르고스에 도착한 후 긴 자유시간을 즐기기로 하였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5시30분에 기상하여 6시 조금 넘은 시간 커피 한 잔과 함께 출발하였는데 정말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데카트론에서 산 5유로 랜턴을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걸었지만, 만약 혼자 걸으라고 했으면 못 걸었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나마 형, 누나와 같이 걸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다 같이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도중 갑자기 귀신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는 무서운 이야기나 스릴러 같은 거 정말 안 좋아하는데, 혼자 걷는 건 더 무서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고야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귀신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후회했다.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지만, 한 번 꽂히면 쉽게 못 벗어나기에 마음이 굉장히 찜찜했는데 다행히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옴에 따라 찜찜한 기분도 사라지고 기분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인생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던 필자에게 생소한 레옹 등의 영화들이 오르내렸는데 그렇담 필자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 많은 감동과 눈물을 안겨준 신과 함께 죄와 벌, 국가대표 등의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 여러 고민 끝에 『레미제라블』을 인생 영화로 정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필자를 유럽으로 인도한 영화이자 런던에서 뮤지컬을 보기도 할 만큼 깊은 인상을 준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대작 레미제라블 책도 완독해볼 예정인데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들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비를 뚫고 부르고스에 도착한 필자

어느덧 부르고스 도시 입구에 다다르자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랜턴과 마찬가지로 첫 선을 보이는 우의를 걸쳐 입고 걸어가는데 어젠 강한 바람, 오늘은 가랑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Walk on through the wind 바람을 헤치고 걸어라
Walk on through the rain 빗속을 지나서 걸어라
Though your dreams be tossed and blown 비록 너의 꿈이 상처받고 흔들려도
Walk on, walk on 걸어라, 계속 걸어라
With hope in your heart 너의 가슴속에 희망을 품고
And you'll never walk alone 그러면 넌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You'll never walk alone 넌 결코 혼자 걷지 않을거야

바로 필자가 좋아하는 명문 축구클럽 리버풀의 현재 슬로건이자 응원가인 "You'll Never Walk Alone"이다. 특히 작년 6월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우승한 후 팬 선수가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다가 소름이 돋기도 했는데 한 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링크 주소 : https://www.youtube.com/watch?v=weec_jzudc8).

웅장한 부르고스 대성당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모진 난관과 풍파를 뚫고 산티아고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 상황이 노래 가사와 맞물려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문득 지난 1월 리버풀 vs 맨유 경기를 보지 못했던 아픔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는데 이 노래 가사처럼 남은 순례길 여정, 그리고 남은 인생 여정에 있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부르고스에 도착해서는 바로 중국 뷔페 wok으로 직행하여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 쉬었는데 예약했던 숙소와 연락이 안 돼 30분가량 야외에서 헤매는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서인지 더욱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거기다 마치 스페인 현지인 아버지와 같은 포스를 풍기는 철현이 행님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르고스 대성당도 구경하고 상그리아를 곁들인 저녁 만찬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요즘 사소한 스트레스와 짜증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욱 소소한 행복, 즐거운 일이 많아서 감사한 나날인데 하루를 마무리하며 느낀 점은 한 번뿐인 인생 즐겁게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레미제라블과 리버풀, YNWA 노래와 클래식 음악 등등이 바로 필자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재료들인데 이처럼 필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계속해서 찾고 이를 바탕으로 남은 순례길과 인생을 즐겁게 살아나가야겠다!

카를로스? 숙소에서 마치 현지인 같은 포스를 풍기는 철현 행님

그런데 하늘은 나에게 호락호락하게 즐거움만 주진 않았다. 다 좋고 즐겁다가 마지막으로 빨래를 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서 스트레스가 극심해졌는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일은 다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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