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28) 순례길에서 얻고 갈 두 가지

산티아고 순례길 10일 차(2020. 02. 14)

김도훈 승인 2021.07.22 15:09 | 최종 수정 2021.07.24 09:12 의견 0
시루에냐(Ciruena) 순례길의 풍광

새벽 4시와 6시, 침낭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한기에 잠을 깰 만큼 어제 묵은 나헤라 알베르게는 좋았던 시설과 달리 지금까지 묵었던 곳 중에서 제일 추웠던 알베르게였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몹시 피곤한 상태로 시작된 오늘의 여정은 나헤라(Nájera) -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약 21km 구간이다. 다행히 걷는 거리가 짧았기에 힘을 내 출발할 수 있었는데 어느덧 산티아고 순례길에 온 지도 벌써 10일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낯선 사람, 생활에서 오는 여러 불안과 혼란이 있었지만 나름 잘 헤쳐나가며 걸어 온 지난 10일을 총평해보자면 재미있었으면서도 순례길이라는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였다. 또한 몸이 힘들었기에 생각을 비우는 단계기도 했는데 이제 육체적으로 적응을 완료하게 됨에 따라 다음 단계 즉, 앞으로의 미래와 순례길 의미를 생각하면서 걷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나헤라 마을을 벗어나자 발견한 표지판. 이제 581km 남았다!

사실 지난 무념무상기에도 조금씩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지만, 어제 David와 꿈 이야기를 나눈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순례길을 걷고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곧 대학도 졸업하는데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선 어제 말했던 강사든, 말을 하려면 나만의 고유한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데 나의 콘텐츠는 무엇인가? 아직 마땅한 게 없었기에 강사에 대한 꿈이 계속 막연한 상태로 머물러있었는데 지금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하나의 훌륭한 주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지금 걷고 있는 이 소중한 경험을 한 번 일기와 함께 잘 준비해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강사에 대해서 더욱 구체화해볼 수 있었다.

또한 지금 걷고 있는 순례길과 관련하여 그냥 걷는 것도 좋지만 돈과 시간을 써서 멀리 스페인에 온 만큼 작은 하나라도 변화하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지금 실컷 힘들게 걷고 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여행 무용론자가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순례길을 걸음으로써 무엇을 얻고 돌아갈 것인가?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은가? 그러자 ‘스스로에 대한 극복’과 ‘기운 바꾸기’가 떠올랐다. 이것이 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거구나! 는 확신과 함께 이 두 가지를 순례길에서 얻고 돌아가야겠다 정할 수 있었다. 

그간 필자는 두려운 것이 많았다. 머뭇머뭇 망설이다 얼마나 많은 기회를 날려버렸던가? 그러다 보니 무력감과 불안감, 두려움에 더욱 움츠리게 되고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있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서 완주하는 것도 하나의 큰 도전이자 극복이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이러한 굴레를 깨고 새롭게 나아가고 싶었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명문장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처럼 순례길을 기점으로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계속해서 극복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시루에냐(Ciruena) 쉼터에서 낮잠을 자는 필자

그리고 이러한 투쟁과 극복을 통해 무엇보다 필자의 기운/아우라를 바꾸고 싶었다. 용서의 언덕을 걸으면서도 생각했듯이 필자는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기운이나 풍기는 아우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지금의 필자는 어떤 분위기가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가? 지금껏 삶을 돌아보며 냉철하게 자기분석을 해보았다. 그 결과 아쉽게도 딱히 별 볼품없는 기운, 약간은 찌질하고 ‘쭈구리’에 가까운 기운/아우라를 풍기고 있다는 상당히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프지만 냉정한 현실 직시를 통해 필자의 기운과 아우라를 더욱 밝고 긍정적으로 변화시켜나가야겠다고 각성할 수 있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투쟁을 통해 지금껏 묻어있던 찌질한 아우라, 아쉬운 기운을 털어내고 기운/아우라를 변화시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의 두 가지를 공식 선언과 같은 느낌으로 정하자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다. 더욱 밝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걷자 낮잠을 잘 수 있는 아주 멋진 장소 또한 만날 수 있었다. 벌써 절반 이상 걸어왔기에 한 시간 정도 편하게 누워 낮잠과 함께 휴식을 취하였는데 날씨도 따사롭고 참 좋아 피로회복과 함께 좋은 기운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저 앞에 오늘의 목적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마을이 보인다.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통해 행복감을 만끽하고 마저 걸어가는 길.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지인과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오늘 하루 많이 밝아진 덕분일까? 지인이 하는 말이 예쁜 주변 풍경과 함께 필자의 얼굴이 너무 좋아 보인다고 했다. 여유가 느껴진다고, 근심 걱정이 안 느껴지는 얼굴이라고 말해줘서 뿌듯하였는데 여러 사소한 우여곡절이 있지만, 현재까진 나름 잘 걸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밝고 긍정적으로 걸어감으로써 필자의 기운/아우라를 확실히 변화시켜나가야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있는 성모광장 성당의 미사

오늘의 목적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먹고 쉬다가 운 좋게 저녁 미사 중인 성당을 발견하여 가톨릭 체험도 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에 대한 극복’과 ‘기운 바꾸기’ 순례길 두 가지 목표 설정과 더불어 한없이 밝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던 순례길 10일 차 하루였다. 앞으로도 필자의 본인 극복 및 기운 바꾸기 순례길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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