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24)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있을 뿐

산티아고 순례길 6일 차(2020. 02. 10)

김도훈 승인 2021.07.04 14:11 | 최종 수정 2021.07.06 08:09 의견 0
순례길 풍경

오늘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 에스테라(Estella) 약 21km 구간

필자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순례길을 혼자 걷는 것에 대한 불안이 컸기에 같이 걸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팜플로나에서 슬기누님이 점프 안 하시고 며칠 더 같이 걸어줘서 참 고마운 마음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는데, 본래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후의 마음이 다르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오늘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간사한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다. 나랑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필자가 되게 좋아하는 말인데, 지금껏 같이 걸었던 슬기누님과는 아쉽게도 애초부터 약간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우선 걷는 속도의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천천히 여유롭게 걸어가면 되었기에 별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먹는 부분이 맞지 않았다. 필자는 먹는 것을 매우 상당히 중요시하고 많이 먹는 것에 반해 누님은 채식주의자면서 소식을 하는 사람이라 (물론 필자는 당연히 채식주의를 존중합니다) 먹는 건 각자 먹으면 되기에 큰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같이 먹거나 할 때 어찌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이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순례길 걷는 중간 찍은 필자의 셀카

그 외에도 같이 지내며 걷다 보니 맞지 않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보이고 누적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게다가 어찌 보면 정말 잔잔하고 사소한 부분에서 약간 마음을 상하기까지 하면서 그냥 혼자 걷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는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티키타카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뭔가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자 이제는 어제 친해진 철현·동연행님과 외국인 친구들도 있겠다, 혼자 걸어도 충분히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얻게 된 인간관계에 대한 또 다른 깨달음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늘 갈대처럼 변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처럼 정말 사소한 부분, 작은 디테일이 인간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항상 상대에 대한 배려심을 바탕으로 서로가 배려하면서 맞춰나가야 하고 디테일을 신경 써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변화하는 필자의 심리를 관찰하면서 얻게 된 나름의 결론이다.

순례길 풍경

물론 개개인의 성향 차이도 있고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기에 이를 본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필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게 하면 할수록 더욱 어렵기만 한데, 이번 기회에 스스로 삶을 한 번 되돌아보면서 반문해본다. 그동안 필자는 사소한 부분을 잘 신경 썼는가? 인간관계에 대한 노력. 너무 나의 이야기만 하거나 자기중심적이지는 않았는지? 그동안 받기만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진 않았는지?

다만 안개가 가득하여 추웠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씨가 상당히 좋았다. 날씨만 보면 지금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행복할 정도로 따스한 햇살과 풍경을 누릴 수 있었는데, 따뜻한 태양 아래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순례길 풍경을 바라보며 걸으니 자연스레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서 문득 따뜻한 태양 아래 일광욕과 함께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실행에 옮겨 배낭을 베개 삼아 털썩 드러누웠는데, 천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확실히 기분은 날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은데, 푹 자진 않았지만 약간의 가수면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고 몸이 개운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 호연지기를 느끼는 필자

그리고 몸이 개운해지자 갑자기 순례길 오기 전 한국에서 들었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기 전 필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바로 자아를 한국에서 걸으며 찾으면 되지 뭐 한다고 굳이 돈과 시간을 써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찾으려고 하는가? 와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한국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경쟁이 도사리고 있고, 삶의 획일적인 루트와 경직된 분위기 또한 여전히 만연하다. 그러다 보니 조그마한 여유조차 곧 뒤처진다는 불안감으로 변하고, 마치 경주마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게 된다.

순례길에서 만끽하는 낮잠 시간. 날이 따스하이 참 좋다.

이러한 환경에선 본인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가 쉽지 않은데, 멀리 스페인에선 한국에서 쉽사리 느낄 수 없는 여유를 통해 한국에서와 같은 걱정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며 필자의 자아와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되자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지금 돈과 시간을 써서 산티아고 순례길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못 찾게 되더라도 순례길을 완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되지 않겠는가? 정말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길 잘했다는 확신이 든 순간이었다.

그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무념무상기를 벗어나 사람 마음과 인간관계의 본질을 생각해보며 좋은 날씨와 풍경 속에서 걸었던 순례길 6일 차 하루였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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