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21) 부엔까미노 (Buen Camino)!

2020.02.07. 산티아고 순례길 3일 차

김도훈 승인 2021.06.22 11:25 | 최종 수정 2021.06.25 17:01 의견 0
앞으로 목적지까지 790km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 앞에서

어제 고된 피레네산맥을 넘는다고 많이 고생한 탓일까?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일어나기가 조금 힘들었다. 몸도 약간 뻐근하였지만, 순례길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 뿐이기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출발한 오늘의 여정. 오늘은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수비리(Zubiri)까지 약 21.7km 구간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슬기누님과 어제 숙소에서 새롭게 만난 정연이와 함께 7시50분쯤 출발하였는데 동이 틀 무렵이어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상당히 상쾌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상쾌한 공기인지! 거기다 일용할 양식(도넛, 물, 과자)도 슈퍼에서 구비할 수 있었기에 덩달아 좋아진 기분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발견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790km 남았다는 표지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였는데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2000리(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걸어서 완주해볼 생각이다. 800km를 걸어 완주하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다행히 오늘은 피레네산맥을 내려가는 완만한 코스라 걷기가 편했다. 그래서 한참을 빠르게 걸어가다 작은 카페를 발견. 정연, 슬기누님과 카페에서 주문한 에스프레소와 함께 챙겨온 스낵과 견과류를 먹으며 단돈 1.2유로(약 1600원)의 행복을 누리기도 했다. 또한 카페를 나와 지나가던 마을 곳곳에 풀어놓은 큰 개들이 많았는데, 한국과 달리 무섭기는커녕 덩치만 클 뿐 친근한 개들이랑 교감을 나누기도 하고 새롭게 마주한 그네를 타면서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슬기누님 정연이와 함께 카페에서
동네 개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필자.

걷기 시작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어느 정도 순례길 생활 적응과 함께 한결 여유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근심·걱정 없이 계속 걸어가다 보니 첫날 같이 카드놀이를 했던 삼총사 (슬로베니아에서 온 David 독일에서 온 Kevin 미국에서 온 Erin)도 만나고 대만에서 온 우첸옌과 조도 만나게 되었다.

이미 벌써 3일 동안 얼굴을 보고 지내서 그런지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는데, 순례길 특징 중 하나가 서로 만나서 길을 같이 걷기도 하고 헤어져서 걷기도 하지만 헤어졌다가도 조금 지나고 나면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순례길을 걷다가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면 순례자들끼리 나누는 인사말이 있다. 인사말은 바로 부엔까미노 (Buen Camino)! ‘부엔까미노 (Buen Camino)’는 “좋은 길 되세요”라는 뜻으로 순례자들이 만나고 헤어질 때 좋은 여행을 빌어주는 말인 동시에 힘내며 끝까지 걸어가자는 일종의 덕담인데 이들과 계속 마주칠 때마다 부엔까미노를 서로에게 외치고 또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다 보니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 만나 메이트들과 함께

거기다 같이 찍었던 부엔까미노! 영상에 대한 반응이 다들 좋아서 뿌듯하기도 하였는데, 무엇보다 필자와 같이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다들 인상도 좋고 좋은 사람들이라 안도감이 들었다.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어도 혼자 걷거나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는데 필자가 이렇게 느꼈던 게 단순노출효과(자주 노출된 자극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현상) 때문은 아닐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괜스레 감사한 마음으로 홀로 그리고 함께 걸어간 끝에 2시50분쯤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 수비리 마을. 아담하지만 상당히 예쁜 마을이었는데 수비리 마을에 오픈한 알베르게가 하나뿐이라 하나둘씩 숙소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서양인 삼총사는 지치지도 않는지 숙소 옆에 흐르는 강이 보인다고 바로 수영을 하러 간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재미난 구경거리에 바로 보러 갔는데 입수했다가 추워서 바로 나오는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자유롭게 삶을 즐기는 모습이 뭔가 되게 부러웠다. 필자는 저렇게 하지 못하는데... 직접 눈으로 바라보면서 부러움과 함께 필자도 그런 여유를 가지고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숙소에서 술과 카드놀이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시간

그리고 찾아온 저녁 시간. 우리는 조리장 출신 정연이가 있었기에 정연이의 지휘 아래 한식(라면과 밥, 제육볶음)을 하기로 하고 서양인들은 스파게티와 빵과 치즈, 스파게티를 요리한 다음 같이 나눠 먹었다. 푸짐한 메뉴에 더해 숙소에 있던 불닭 소스에 도전하는 삼총사를 보며 웃기도 하면서 즐거운 저녁 만찬을 즐기고 난 후 어김없이 찾아온 카드놀이 시간. 오늘도 여전히 룰을 알 수 없는 카드 게임과 새로운 아메리칸 스타일 카드 게임을 하였는데 룰은 잘 몰라도 다 같이 술도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오늘의 고생과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색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너무나 뜻깊었던 하루. 그중에서도 오늘 필자를 가장 기쁘게 했던 말 한마디. “웃을 때 권상우 닮았어요”

필자의 해맑은 미소 연습과 함께 순례길에서의 셋째 날이 깊어져 갔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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