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유럽 순례' - (16) 파리지앵의 문화 탐방기

김도훈 승인 2021.05.30 01:04 | 최종 수정 2021.05.30 01:29 의견 0
바스티유 광장과 7월 혁명 기념탑 [사진 = 김도훈]

평생 잊을 수 없을, 화이트 에펠로 기억될 2020년 2월의 첫날을 보내고 새롭게 시작된 파리에서의 둘째 날. 오늘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유럽에 와서 첫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런던 여행 당시 로열 알버트 홀에서 클래식을 듣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 줄 공연이자, 파리 샹젤리제 극장(THEATRE DES CHAMPS-ELYSEES)에서 펼쳐지는 오늘의 클래식 공연은 바로 요하네스 브람스 1번 교향곡과 베토벤 삼중 협주곡이다.

필자는 브람스 1번 교향곡을 상당히 좋아한다. "거인이 내 뒤로 뚜벅뚜벅 쫓아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게.”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브람스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베토벤이라는 거인을 넘어서기 위해 브람스가 교향곡을 작곡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21년. 끝내 거인을 극복하고 암흑에서 광명으로, 승리로 나아가는 음악은 나에게 큰 위로와 쾌감을 주기 때문인데, 프랑스 파리에서 브람스와 베토벤 두 독일 거장의 음악을 듣다니! 상당한 설렘을 안고 샹젤리제 극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후 표도 무사히 받고 입장한 내부는 고정석이 아닌 자유석 제도라 좋은 자리는 이미 누군가가 다 차지한 상황. 간신히 1층 구석에 자리를 잡고, 옆에 분께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드린 다음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다른 사람이 앉아있고, 맡아주기로 한 분은 그냥 미안하다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무슨. 황당하기도 하고 자리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2층 중앙에 비어있는 한 좌석을 발견하여, 혼자였기에 의외의 명당에 앉아 들을 수 있었던 공연.

공연 전 THEATRE DES CHAMPS-ELYSEES 극장의 모습

그런데 어제 새벽 화이트 에펠의 여파와 좀 전의 당황, 땀이 식으면서 피곤이 확 몰려오기 시작한 탓에 음악에 빠진다는 것이 그만 잠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브람스 베토벤 두 곡 다 피날레는 잘 들었음에도 불구 중간중간 조는 바람에 제대로 된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조금 슬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프랑스에서 내 인생 첫 유럽 클래식 공연을 무사히 관람하고 나올 수 있어서 상당히 만족스럽고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 첫 유럽 클래식 관람을 마치고 나의 웃음 전도사 성빈이를 만나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는 길. 프랑스 대혁명의 출발을 알린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이자 7월 혁명 기념탑이 있는 바스티유 광장도 둘러보면서 도착한 식당은 이미 파리를 세 번째 방문하여 파리를 잘 아는 성빈이가 추천한 맛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많고 스테이크 또한 비주얼부터가 대박이었는데 맛 또한 상당히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에 재미는 덤. 시작된 입담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끊임없이 웃으며 점심을 먹을 수 있었는데, 후식으로 먹으러 간 파르페 역시도 한국을 상당히 좋아하시는 사장님 덕분에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타벅스에 가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성빈이와의 식도락을 마무리하였는데, 파리 시내, 커피 한 잔, 여유로운 시간을 통해 잠시나마 파리지앵의 삶과 기분을 한껏 느끼며 파리지앵이 되어볼 수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마신 스타벅스. 파리지앵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젠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파리지앵 성빈이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던 차, 어제 루브르 박물관 무료입장에 이어 오늘은 미술관이 무료입장하는 날(매달 첫 번째 일요일)이라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소소한 행복을 즐기기 위해 우선 카페 근처에 있던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는데 개그 코드는 맞았지만, 문화 코드는 안 맞았던 성빈. 미술관을 상당히 힘들어했다. 작품을 경보하듯 스르륵 둘러보더니 금방 가야 한다며 나가려는 성빈을 보면서 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떠나는 순간까지도 웃음을 선사하고 떠난 성빈을 보면서 정말 코드가 맞는 게 무섭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피카소 미술관 관람을 마무리하고 이어 필자 혼자 넘어간 퐁피두 센터.

20세기 초반 이후의 현대미술을 볼 수 있는 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 많은 작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감상하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작품은 딱 봤을 때 바로 알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스스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나만의 해석을 하게 만드는 난해한 작품, 특히 제목이 없는 untitled 작품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어제 루브르 박물관의 『나폴레옹 대관식』 작품에 이어 오늘 퐁피두 센터에서 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필자를 사로잡은 작품은 바로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추상표현주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보면 정말 별거 아닌 두 단색으로 칠해진 작품에 불과한데 빨려든다고 해야 하나 그냥 계속 바라보고 있게 된다.

형용할 수 없는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Mark Rothko’의 작품

작년(2019) 삼성 리움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처음 봤을 당시에도 이 작품의 알 수 없는 끌림에 쉽게 발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아픈 와중에도 돌고 돌아 다시 마크 로스코 작품 앞에 서 있는 필자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고 말하는 마크 로스코 작품의 본질을 말해주는 일화 하나. 하루는 한 방문객이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 방문객이 작품들을 다 둘러보자 로스코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내 작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요?” 그러자 방문객은 “슬프군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로스코는 “당신이야말로 내 작품의 진정한 감상자입니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파리 여행이 너무 기쁘고 들떴기 때문일까? 슬픈 감정이 들진 않았는데, 훗날 마크 로스코 전시에 가서 펑펑 울고 싶어진 하루이자 클래식 공연에 이어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 센터 관람까지 문화 예술 생활을 맘껏 할 수 있었던 하루.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위대한 천재들과 공감하려 노력했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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