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
처음엔 단지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만 할 작정으로 들어왔던 파리. 하지만 우연하게도 같은 민박, 남자 도미토리에서 만나 결성된 파리 5형제 덕분에 지난 이틀 동안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는데, 어느덧 우리 파리 5형제에게도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만남과 웃음, 짧았지만 강렬했던 추억을 뒤로한 채 이젠 각자의 자리로 떠나야 할 시간. 제일 먼저 우리의 정신적 지주 건휘행님이 오로라를 보러 아이슬란드로 떠나갔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에 홀로 인사 없이 떠나서 너무 아쉬웠는데,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꼭 보고 돌아오시길!
또한 몇 시간이 흘러 찾아온 아침. 성빈, 성현 형제 역시도 한국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같이 마지막 아침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하는데 오죽하면 성현이도 하루 이틀만 더 있다가 귀국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며 계속 아쉬워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아쉬움이 컸는데 끝내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만 하는 성빈·성현이와 숙소 앞에서 눈물의 이별을 하였다.
파리 5형제 중 절반 이상인 3명을 떠나보내고 남은 준석이와 돌아온 숙소.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진짜 어느 누가 파리의 어느 민박집에서 서로 이렇게 잘 맞는 형, 동생을 만나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별로 아쉽지 않았는데, 특히나 정말 아무런 기대가 없던 상태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특별한 인연을 만났기 때문인지 5형제의 이별은 예기치 못했던 만남과 기쁨만큼이나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이 있는 법. 이번 여행을 돌이켜보면 감사하게도 참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리버풀에서 만난 지훈이형과 대규형, 그리고 이역만리 떨어진 아일랜드에서 다시 만난 고등학교 친구 은우와 포르투갈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혜원, 마지막으로 이번 파리 5형제까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을 만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는데, 이는 참으로 기쁘면서도 뿌듯한 감정을 필자에게 주었다. 왜냐하면 사실 필자의 지난 첫 유럽 여행(2016.12.09~2017.01.06) 당시엔 이러한 인연조차 없어 거의 늘 혼자서 여행을 다녔기 때문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만 있었을 뿐 여행 중 이렇게 끈끈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번엔 어떻게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지난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확연한 변화를 느꼈듯이 <지난 4화 비긴어게인편 참조>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필자가 느리지만 천천히 꾸준히 더 나은 사람, 예전보다 여러모로 훨씬 괜찮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는 스스로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주었는데, 다만 유일한 흠?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거의 좋은 형, 남동생만 많이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필자는 남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것 같다. 신기하게 어딜 가든 좋은 남자 인연만 너무 많이 생겨 약간 아쉬움이 들면서도 지금처럼 꾸준히 필자 스스로 더욱 괜찮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번 여행 때 만난 인연들처럼 계속해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과 확신을 얻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파리 5형제에 이어 점심에 또 한 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요즘 제주도를 비롯 어느 지역에서 한 달 살기 하는 게 유행인데, 딱 마침 파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어 우연히 만나게 된 주인공은 바로 예전 부산에서 스피치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동생 승욱이다. 파리에서 지낸 지 3주째 지내는 중이라 프랑스어도 나름 능숙하고 파리를 잘 아는 승욱이가 추천한 Le Jeroboam 식당에서 프랑스식 코스요리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파리 거리를 걷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했는데, 앞으로 계속 볼지 안 볼진 모르지만 이렇게 파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파리지앵의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덤.
승욱이와 파리에서 짧지만 뜻깊은 만남을 뒤로한 채 5형제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준석이를 다시 만나 성빈·성현 형제가 마지막으로 주고 간 선물. 센강 유람선을 같이 타러 갔다. 처음엔 바토뮤슈 티켓인 줄 알고 갔다가 아니라 다시 유람선 타는 곳으로 가서 탄 파리 유람선. 센강을 따라 둘러보는 파리는 정말 너무나 낭만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언제봐도 예쁜 에펠탑과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 이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준석이는 따로 북역쪽에 숙소를 예약했기에, 유람선을 끝으로 파리 5형제는 공식적으로 모두 해산되었는데, 준석이가 따로 보내온 카톡 내용. “형 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런 류의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시면 북역 쪽에 숙소 잡으세요” 혹여나 파리 여행 가실 분들이 있다면 북역 근처의 숙소는 꼭 피하시기를 당부드린다.
이제 모두 다 떠나자 찾아온 허전함과 썰렁함. 헤어짐은 늘 언제나 쉽지 않고 쉽게 적응되지도 않는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 세상일의 덧없음을 필자는 언제쯤 터득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처럼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인연 중 상당수는 정말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순례길 다 걷고 돌아간 한국에서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약해본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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