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테옹에서 느낀 프랑스 정신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아픔을 뒤로 한 채 맞이한 파리에서의 오후 시간. 애초에 파리에 온 이유가 순례길을 최종 준비하는 것이기에 딱히 계획한 일정이 없었다. 따라서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말처럼 정처 없이 우선 시테섬을 걸어 다녔는데 센 강을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프랑스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즐겁게 했다.
또한 지난번 왔을 때를 회상하다 보니 혼자라서 쓸쓸하거나 외롭기보다 오히려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나의 발길을 사로잡은 파리 시청 앞에서 펼쳐지는 댄스 버스킹. 파리에서 울려 퍼지는 싸이의 젠틀맨 노래와 함께 펼쳐진 댄스 공연을 즐기면서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데, 한국에서도 잘 안 보던 거리 공연을 파리에서 보다니. 역시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와 함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준다.
공연이 끝나고 남은 시간 사진이나 찍을 겸 무작정 향한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은 여전히 아름답고 사람이 많았다. 루브르 박물관에 온다면 꼭 찍어야 한다는 피라미드 인증샷을 만족스럽게 건지고, 이후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길래 확인해보니 오늘은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인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매달 첫 번째 토요일은 무료입장을 할 수 있는 날) 좋은 정보를 알게 된 이상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왕 온 거 들어 갔다 오자는 마음으로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 입성한 루브르 박물관.
파리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루브르 박물관은 규모가 워낙 크고 넓다. 그래서 처음 왔을 당시 길 잃고 헤맸었는데, 우연히 진행하고 있던 한국인 투어를 만나 투어를 따라다니며 핵심 작품들을 다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 덕에 비너스상, 함무라비 법전 등 핵심 작품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는데, 모나리자 앞에는 여전히 사람이 매우 많았다.
뭐든지 일단 유명해지고 봐야 한다는 사실을 모나리자를 통해 느낄 수 있었는데, 시간 관계상 모나리자는 빠르게 지나친 다음 필자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제일 좋아하는 최고의 작품을 만나러 갔다. 그 작품은 바로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 바로 좀 전에 보고 온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펼쳐진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의 위엄이 느껴지는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Le Sacre de Napoléon)은 정말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고 우러러보게 되는 작품이다. 계속해서 멍하니 바라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루브르 박물관을 빠져나온 다음 잠시 센 강변을 걸으며 머리를 식히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런데 돌아간 한인 민박에선 예기치 못한 삼겹살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파리에서 삼겹살을 먹다니! 엄청난 감동과 기쁨으로 가득한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는데, 밥을 먹던 도중 화이트 에펠탑 이야기가 나왔다. 하얀 별로만 반짝 빛나는, 새벽 한 시에 단 5분 동안만 볼 수 있다는 화이트 에펠.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오늘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즉흥적으로 나왔다. 새벽 한 시. 보러 가는 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막상 혼자서는 돌아가기 쉽지 않은 늦은 시간.
하지만 여행 인연의 신비함이랄까? 우연히 민박집 남자 도미토리에서 정말 잘 맞는 인연을 만난 덕에 이들과 함께 화이트 에펠을 보러 갈 수 있었다. 그 소중한 인연의 주인공은 바로 건휘형, 준석이, 성빈·성현 형제. 제일 먼저 민박집 도착한 첫날부터 함께한 우수한 엘리트이자 형이라는 놀라웠던 최강 동안 건휘형. 그리고 루마니아에서 교환 학생을 하다 합류한 건휘형의 군대 후임이면서 성격이 참 좋은 친구 준석이. 군대를 막 전역한 기념으로 함께 유럽 여행 온 형제, 처음엔 사리지만 본인 중심으로 판을 만들면 좌중을 압도하는 입담을 가진, 정말 재밌는 친구 성빈, 그리고 형과 반대로 진중하고 예의 바른 성현. 그리고 카스타드처럼 부드럽고 스윗한 필자(도훈). 어떻게 이렇게 모일뿐더러 신기할 정도로 잘 맞고 조화가 잘 이루어진 다섯 명이 뭉쳐 결성된 파리 5형제.
몽생미셸 투어를 떠나 에펠탑으로 바로 합류하기로 한 성현이를 제외한 사형제는 급히 화이트 에펠을 보러 갈 준비를 마친 후 밤 열 시에 에펠탑으로 향했다. 그런데 서로 완전히 친해지고 가까워지자 성빈이의 입이 완전히 풀리기 시작한 탓일까? 지하철을 타고 에펠탑을 가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웃음이 많은 필자는 하나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데, 입담은 물론 오죽하면 에펠탑 앞에서 쪼그려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만으로 큰 웃음을 선사한 성빈이 덕분에 정말 배가 아플 정도였다.
오형제가 뭉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한 시가 되었고 정각에 펼쳐진 화이트 에펠은 정말 황홀했다. 기다린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5분이자 파리의 낭만을 온전히 만끽한 순간이었다.
짧은 화이트 에펠을 뒤로한 채 불 꺼진 에펠탑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파리 오형제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가는 데 지하철은 끊기고 타려던 우버가 잡히지 않아 거리에서 30분 배회하는 등 정말 마지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함께였기에 끝내 혼자선 절대 탈 수 없었을 악명높은 파리 심야버스도 타고 숙소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는데, 돌아오는 순간까지 파리 오형제들과 함께여서 정말 즐겁고 재미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하루이자 엄청나게 많이 웃었던 하루. 예기치 못한 인연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2월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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