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 (26)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산티아고 순례길 8일 차(2020. 2. 12)

김도훈 승인 2021.07.14 14:39 | 최종 수정 2021.07.16 13:19 의견 0
26-1) 순례길 부스토(Busto) 지역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다 찍은 셀카.
 순례길 부스토(Busto) 지역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다 찍은 셀카.

오늘은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 로그로뇨(Logrono) 대략 28km 구간을 걷는 날이다. 지난날보다 조금 긴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조금 일찍 일어나 늘 그렇듯이 침낭을 개고 아침을 먹으며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일주일을 걸으며 다리 근육이 많이 생겼는지 몸과 다리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따라서 워밍업 이후 홀로 빠르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는데 한 시간가량 완전 생생하게, 빠르게 걸어 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행님, 누님은 물론 어떠한 순례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완전히 혼자 남겨진 상태로 순례길을 걷게 되었는데, 사실 혼자 걷고 싶은 날이기도 했고 요즘 혼자 사색에 잠기거나, 이어폰을 꽂은 상태로 음악을 듣거나 전화를 하면서 걷는 순례길의 매력에 빠진 상태이기에 크게 허전하거나 하진 않았다. 따라서 음악과 함께 주변 풍경도 바라보고 친구들이랑 통화를 나누면서 나름 여유롭게 15km 정도 거리를 혼자서 열심히 걸어 나갔는데 약간의 땀 배출과 상쾌한 바람이 걸어가는 내내 기분을 상쾌하고 좋게 해주었다.

그런데 혼자 덩그러니 놓이게 되자 문득 지금 필자의 현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 3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오,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 GOD – 길.

바르고타(Bargota) 지역을 걷던 도중 먹고 있던 도리토스와 한 컷.

지금 상황과 맞물려 가사가 너무나 와닿는 노래였다. 필자는 왜 순례길을 걷고 있는가? 순례길을 다 걷고 나면 꿈이 이루어질까?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왜 이 노래가 한국인들이 순례길을 걸을 때 듣는 필수 곡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노래를 들을수록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면서 잠시 이런저런 사색에 빠진 순간이기도 했다. 필자의 길(운명)은 무엇일까? 필자 앞에 놓여있는 불안한 미래와 불확실한 인생, 하지만 지금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작은 밀알이 되어 훗날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외치며 걸어가는 필자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다만 여유롭게 혼자서 노래 듣고 쉬며 걷는 것도 잠시 3, 4시간가량 혼자 걸어가다 보니 남은 길이 더욱 멀게만 느껴지면서 지치기 시작했다. 거리가 긴 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도 약간 지루해져 갔는데 딱 마침 영국에서 온 알리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남은 여정을 알리와 브렉시트 관련 이야기 및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걸어갈 수 있었는데 나눈 대화를 100% 다 이해하진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감을 무기 삼아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또한 보낼 수 있었다.

런던에서 온 알리와 함께

막바지 가장 힘든 구간을 같이 걸은 덕분에 오늘의 목적지 로그로뇨에 무사히 도착하였는데, 오늘의 숙소는 성당(Iglesia de Santiago el Real) 옆에 위치한 공립 알베르게 였다. 사립 알베르게와 달리 공립 알베르게는 돈을 선불로 내는 게 아니라 저녁과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순례객들은 떠나기 전 양심에 따라 돈을 내는 기부 형식으로 운영되는 장소인데 우선 숙소에 간단히 짐을 풀고 이어 도착한 철현, 동연행님과 함께 타파스(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소량의 음식을 통칭하는 말)를 먹으러 갔다.

간단하게 맥주와 타파스를 먹으며 요기를 했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순례길을 먼저 다녀온 동생 주은이가 로그로뇨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해준 버섯핀초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중에 따로 버섯핀초를 먹으러 가기로 하고 다음 숙소로 돌아와 제공해주는 저녁을 먹었는데 첫 음식 샐러드는 맛있었지만 메인으로 나온 콩요리(콩스프?)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든든히 배를 채우고 저녁 미사를 드리러 다 같이 성당으로 넘어가 정성을 다해 미사를 드리고 왔는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미사를 드린 산티아고 레알 성당 내부. 웅장한 기품이 느껴진다.

꽂히면 하고 말아야 하는 집념의 사나이 필자는 오늘이 가기 전 꼭 버섯핀초를 먹어야 하는데 미사를 드리고 숙소에 돌아오니 시간이 2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숙소가 22시에 문을 잠근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통의 경우라면 포기하는 게 상책이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꼭 먹어야 했기에 인자한 신부님께 문을 조금만 늦게 닫아달라 간절히 부탁드린 다음 끝내 21시 51분에 버섯 핀초 찾아 삼만리를 떠났다.

집념으로 끝내 맛본 버섯핀초와 맥주 한 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버섯 핀초 파는 가게를 찾아 약간 짭쪼롬 했지만 맛있었던 버섯 핀초와 맥주 한 잔을 빠르게 맛보고 10시 5분쯤 숙소로 돌아왔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집념과 열정을 확인하고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던 로그로뇨에서의 밤이 이렇게 깊어져 갔다.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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