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24) - 「친구」 장동건 배우 아역 희룡이의 성장

나의 교단일기 / 부산광역시교육연수원 원장

이미선 승인 2021.10.01 15:54 | 최종 수정 2021.10.01 16:12 의견 0
영화 「친구」 촬영 후 배우 장동건의 얘기를 듣는 희룡

“선생님, 영화 한 번 찍어볼게요.”

1999년 담임 배정을 받고 교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환한 표정과 뚜렷한 이목구비로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 희룡. 말수가 적고 겸손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넉넉한 마음을 가진 아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해서 더 눈여겨보게 된 아이였다. 존경하는 이유를 물으니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전문성이 뛰어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아이라면 어떤 고난을 만나더라도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희룡이가 교무실에 찾아와서는

“선생님, 저 영화 한 번 찍어볼게요.”

말도 별로 없는 데다 평소 표현도 잘하지 않는 희룡이였기에 좀 의외였다.

“으응? 영화를? 니가? 무슨 영환데?”

“친구라는 영화입니다.”

“친구? 감독은 누구야?”

“곽경택 감독님입니다.”

“아, 그래? 근데 그 영화에서 맡게 되는 역할은?”

“장동건 배우의 아역 동수라는 역할입니다.”

“할 수 있겠어? 아니 그보다 꼭 하고 싶은 일이야?”

“네, 사실은 동생 오디션 보는 데 따라갔다가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망설여졌지만, 꼭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해도 될까요?”

“그래, 그렇다면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킬 자신이 있으면 가라. 영화를 찍는 동안은 ‘희룡’이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동수’로만 살아야 한다. 대신 영화를 다 찍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는 ‘동수’라는 그림자를 들고 오면 안 된다. 반드시 ‘정희룡’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럴 자신이 있으면 허락할게.”

“네, 선생님 말씀 명심할게요. ‘동수’로 열심히 살다가 반드시 ‘희룡’이로 돌아오겠습니다.”

희룡이는 약속을 지켰다. 그런 희룡이가 참 대견하고 믿음이 갔다.

“선생님 덕분에 정체성을 가졌고, 역사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희룡
희룡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희룡이는 미국 뉴욕대로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 한국에 올 때면 잊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그때 들려준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 대학에 중국, 일본 문화 동아리는 있는데 한국 문화 동아리는 없더란다. 희룡이는 지도교수를 찾고 평소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모아 ‘한국 문화 동아리’를 만들어 우리 역사와 민족, 문화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고 토론하며 한국 문화와 정신을 알렸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대견한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모두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에게 우리 민족과 통일, 역사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며 저는 자긍심과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과서에는 다 표현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와 숨은 뜻도 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낯설고 거대한 나라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은근히 차별도 받고 때로 억울함도 당했지만 저는 굴하지 않았고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 현실과 교감하는 교육은 이렇게 살아있는 거구나’ 싶었다.

“나날이 성숙해가는 희룡이의 삶을 응원하며.”

희룡이는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돌아와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점도 참 고맙다.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을 낳아 행복해하고 있어 나도 덩달아 흐뭇하다. 얼마 전 통화하면서 딸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하율’이라고 한다. 이름 이쁘다 누가 지었냐고 물으니 자신이 지었단다. 하율이가 자랑스러운 하룡이 삼촌처럼 공부 잘해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룡이의 ‘하’와 자신의 이름 끝 글자 ‘룡’을 뒤집은 ‘율’ 해서 ‘하율’로 지었단다. ^^

그 말을 듣고 나는 “희룡아, 하룡이가 훌륭한 것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고, 하버드 로스쿨을 모범상까지 받으며 졸업한 그 대단한 경력으로 얼마든지 안주하며 편하게 살 수도 있는데, 캄보디아에 가서 아동 인권을 위해 봉사하는 게 정말 훌륭한 거 아닐까?” 그랬더니

“맞아요, 선생님. 부모님 곁에는 제가 있으면 되니, 동생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게 지지해 주려구요. 그런 동생이 저는 참 자랑스럽습니다.”

희룡이는 내 교단 일기를 읽고 나면 답 문자들을 보내온다.

내게 힘을 주는 대표적인 문자 몇 개만 소개하자면,

‘선생님으로 인해 스스로 제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의 가치관, 정체성 형성해 주신 점 다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제자들도 청포도처럼 익어서 사회 각층에서 좋은 세상을 위한 일원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선생님 가르침대로 저도 같이 일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대화하며 길을 제시해주고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선생님과의 인연 덕분에 바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

“희룡아, 내가 더 감사하다. 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이렇게 고마워하고 오래도록 가슴에 새기고 산다니, 교사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거야. 고마워, 사랑해.”

이미선 원장

◇ 이미선 원장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현 부산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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