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몸짱! 도전해 보려 합니다.”
성환이는 후배들에게 ‘국제고 4대 천황’으로 꼽히기도 했다. 공부는 기본이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운동이면 운동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성격까지 좋은 소위 만능이었다. 이런 경우를 만나면 아이들은 “선생님, 세상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요?” 라며 투덜댄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글쎄, 현재만 보면 그렇게도 보이지만 늘 좋은 인생도 평생 안 좋은 인생도 없다고 봐. 크게 보면 인생은 오십보, 백보라는 생각을 하게 돼. 오래 살다보면 누구나 고통, 슬픔, 분노 등을 다 지고 사는 거 같아. 단지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오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뿐.”
성환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은행 업무를 3년 정도 하다가 고향인 부산이 좋아 부산 지점으로 이동해 와서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는 제자 중 한 명이다. 커피보다 차(茶)를 좋아하고 책 읽기, 음악 감상 등을 좋아해 나랑 이야기가 잘 통하는 아이다. 자주 소통하던 제자들이 서울로 가거나 외국으로 나간 경우가 많아 아쉬웠는데 성환이는 지역인재로 다시 돌아와 참 좋다. 부산에 같이 있고 이야기가 잘 통하다 보니 자주 만나게 되었다.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거리 응원에 나섰을 때 부산대에 가서 응원에 동참했던 일, 성환이 절친 병수 결혼식 날 서울까지 운전해서 다녀오면서 즐겁게 이야기했던 일, 내가 근무처를 이동했을 때 모자 쓴 선인장 화분을 안고 와서 축하해 주었던 일, 결혼할 여친을 데리고 와서 인사하던 일, 성환이 결혼식에 주례를 본 일 등은 생생한 기억이다.
성환이가 가진 강점은 평소에도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고민하는 등 자기관리도 무척 잘하지만, 무엇보다 현재에 안주하거나 머물지 않고, 미래를 구상하며 직접 도전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커다란 도전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바로 서른이 넘은 나이에 ‘몸짱 대회’(정확한 대회 이름은 아니고 이름을 내가 붙이자면)에 도전한 일이다. 대회 후에 사진을 톡으로 보내왔는데 깜짝 놀랐다. 방송이나 잡지에서나 보던 몸짱의 모습이었다. 사진을 보고 전화해서 물었더니 오래 전부터 몸을 잘 만들어 대회에 나가는 게 자신의 ‘꿈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직장 생활로 늘 바쁘고 몸을 만들 시간이 없어 미루고 미루다 서른이 넘으니 더 늦게 전에 ‘꿈리스트’에 있던 일을 더 미루지 않고 실행해야겠다고 생각해 용기를 갖고 도전한 거라고 했다. 바쁜 일상이지만 술도 안 마시고 먹고 싶은 음식도 절제하고 철저히 식이요법하고 더 강도 높은 운동을 해 도전해 보았는데 힘들긴 했지만 스스로에게 약속을 지키고 선물이 된 일이라 기쁘다고 한다. 운동에 소질도 없고 음식 조절하며 몸 만들기에는 더욱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공부해서 고시를 치는 일 이상으로 어렵고 대단한 일로 보였다. 그의 도전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내 폰 앨범에 그 사진들을 저장해 두었다.
“늘 꿈꾸었던 내 사업,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지만 성환이도 직장생활하면서 속상한 일, 답답한 일들이 많았다. 담배를 사무실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피워대는 상사,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동료, 앞뒤 위아래 가리지 않는 후배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지만, 그보다 직장의 경직된 규제와 사고방식을 답답해했다. 그런 고충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 주면서 난 고(故)김대중 대통령의 ‘김대중의 옥중 서한’ 내용을 소개해 주었다. 꿈꾸던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무척 힘들어했던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답장 내용이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고민해서 힘들게 선택한 일이었다면, 적어도 10년은 최선을 다해 본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용이 초임 교사 시절, 힘들었던 나에게도 참 와닿았었다. ‘그래, 일단 10년은 해보자. 있는 힘을 다해.’ 이런 마음을 갖게 했었다. 성환이에게도 도움이 되었는지 성환이는 10년간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직장 생활을 했다.
10년이 지난 작년, 성환이는 그동안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공은 보장되지 않았고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의 경험과 전문성이 충분히 기반이 되는 일임에도 새 사업은 만만치 않아 여러 어려움도 겪고 고비도 몇 번 넘기고 파도를 넘고 넘어 이제 좀 자리를 잡는 모양이다. 그렇지, 현실은 만만치 않지. 나 역시 대학 때 배웠던 교육이론이 실제 아이들을 만났을 때 바로 적용되는 건 많지 않았으니까. 야전에서 실제 경험을 쌓아가고 좌절하고 쓰러지면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직접 경험하고 뒹굴어야 마음의 근육도 커지는 법이고 마음에도 내진 설계가 필요하다.
성환이가 가장 사랑하는 딸 이름이 ‘이룸’이다. 이름을 ‘이룸’으로 지어서인지 성환이는 가정도 사업도 잘 이루어가고 있는 거 같다. 잘 자리매김해서 예전의 ‘4대 천황’의 면모를 보여줄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의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응원하며 박수를 보낸다. 너무 바빠 요즘은 만날 시간도 잘 나지 없지만, 성환이라면 해낼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 나에게 보여준 그의 모습이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오프라 윈프리 말처럼 실패는 없다. 단지 경험일 뿐이다.
◇ 이미선 원장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현 부산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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