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16) - 돌아와라, 돌아와라!

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이미선 승인 2021.08.05 15:34 | 최종 수정 2021.08.06 09:57 의견 0

“당신이 잘 계신다면......나는 잘 지냅니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Si vales bene est, ego valeo).”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에 나오는 이 문구에서 조용히 책을 덮는다. 책을 읽다 보면 한동안 눈을 감고 오래오래 되새기고 싶은 문구가 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 보면 당신의 모습은 이 사람이었다가 저 사람으로, 저 사람에서 그들로 자유롭게 옮겨 다닌다. 그들 중에 떠오른 얼굴, 첫 제자 호성이와 그의 아내 정실이.

여인 같은 호성와 정실이 부부

많은 학급에 수업을 들어가다 보면 유난히 호흡이 잘 맞는 반이 있는가 하면 뭔가 삐거덕거리는 반이 있다. 이유는 당연히 아이들의 반응 때문이다. 어떤 한 아이 때문에 전체 아이들에게 미안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몇몇 아이 때문에 기분이 상해 전체 수업 흐름을 놓치거나 맥이 흐트러질 때도 있다. 반면 아이들이 수업에 몰입하고, 재미있어 하며 반응이 좋으면 신이 나 더 열심히 수업하게 되고 하나라도 더 말해주게 된다. 호성이가 속한 2학년 7반은 내 서툰 수업에도 불구하고 수업하기 좋은 분위기를 가진 반이었다. 덩치 큰 아이들이 나와 호흡이 잘 맞아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중에 대표적인 아이가 그 반에서 제일 크고 잘생긴 부반장 호성이었다.

그 당시는 임용이 아니라 국립 사범대학만 졸업하면 교사가 되는 제도여서 그 시절에는 지금 임용을 준비하는 세대보다 교단에 서고 싶다는 치열함이나 간절함이 덜했던 거 같다. 사범대학을 졸업했지만, 대학에서 배운 이론은 현장과는 괴리가 컸으므로 별 준비 없이 교단에 첫발을 딛게 되었을 때 난감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피아제와 듀이는 배웠으나 실제 한국의 중학교 남학생들에 대한 이해도는 낮았고, 실제 현장경험은 부족하다 보니 수업 기술, 학생 상담 기법 등 많은 부분이 서툴렀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3년이나 야학 경험이 있어 별문제 없으리라 생각한 나는,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교단에 서면서 바로 알게 되었다. 야학할 때의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열망으로 찾아온 아이들이었지만, 일반 중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학교를 별 생각 없이 당연히 다니거나 그냥 어쩔 수 없이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 그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전투를 하듯이 그해 봄을 지나고 있었다. 때로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고 교실에서 나온 자신 때문에 자책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기발한 생각을 하면 엄청 감동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말이나 이야기 때문에 한바탕 큰 소리로 웃기도 하면서 나도 아이들도 서로에게 적응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교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가장 설레지만 힘들기도 한 3월은 참 더디게 간다. 3월만 가고 나면 그다음 달부터는 이상하리만치 빨리 흐른다. 첫해, 기~인 3월이 가고 4월 중간고사를 치고 나면, 4월 말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첫 부임 학교는 그 당시만 해도 신규교사에게는 담임을 주지 않아 나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고 잔류 학생을 맡게 되었다. 수학여행 기간에는 수업도 없고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 요즘 같으면 신나는 일인데 그때의 나는 겨우 나흘간 아이들을 보지 못하는 것도 서운해했다.

중1 호성이

“돌아와라, 돌아와라! 주문이 먹힌 듯.”

수학여행 출발 전날, 운동장에 2학년 전체 학생이 모여 발대식을 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훈화를 즐겨하시던 분이셨는데, 무슨 전쟁터나 나가는 결전의 용사들인양 아이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사뭇 장엄한(?) 출정식이 끝나자 구름 떼 같은(그때는 2학년 학생 수만 해도 800명 정도 되었음) 아이들은 수학여행의 들뜬 기분 때문인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빠르게 운동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교무실 창밖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요놈들 봐라.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네. 며칠이나 못 보는 데 너무 하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돌아와라, 돌아와라!’를 속으로 외쳤다. 그 순간, 마치 내 말이 전해진 듯 아이들 대여섯명이 등을 돌려 교무실로 오고 있었다. 호성이를 비롯한 2학년 7반 덩치 큰 녀석들이었다. 내 자리로 뛰어 들어와 “선생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며칠간 우리 못 본다고 울지 마세요. 선물 사 올게요.” 이러는 거였다. 어찌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이 일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물론 우연일 수 있지만, 왠지 내 주술(?)이 통한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호성이는 중학교 시절, 내가 너무 좋아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어 공부를 열심히 했단다. 난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는데, 그 당시 너무 힘든 집안 형편 때문에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아 나와 상담하게 되었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전교 1등도 하겠다. 한 번 도전해 봐.” 라고 한 내 말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공부해 전교 1등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크게 작용할 수도 있구나 싶다. 그리고 대학 시절에는 등록금이 없어 나에게 와서 돈 50만 원을 빌려가 학업을 계속한 일, 그 덕분에 지금처럼 꿈도 이루고 좋은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내 정실이는 마치 내 제자처럼 나를 따르고 좋아한다. 부부가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아직도 연인처럼 지내는 호성이와 정실이를 보고 있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도 넉넉해진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이 마음으로 안부를 묻고, 덥고 힘든 올해 여름 고개도 잘 넘어가 보자.

이미선 소장

◇ 이미선 소장 :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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